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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해할 수 없을까. 이번엔 이렇게 시작해봅시다.
“사람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는 떨어져봐야 알 수 있다.”
“어떤 경험은 정말 해 봐야 알 수 있고 실은 해도 소화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가 힘들 수 있다.”
주인공은 자기 경험도 온전히 믿지 못하지만 말하기를 선택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의 공포는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고 언급하며 청자와의 사이에 선을 긋지요. 이렇게까지 경계하면서도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며, 왜 말하려고 하는걸까요. 오늘은 그것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세번째 보고 있는데요, 첫 문단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쓸쓸하고 씁쓸한 서두의 분위기가 무척 인상깊었어요. 주인공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하면 믿음을 사기 위해 경험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 선을 긋는데서 주인공의 묘한 체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말이 전부 맞습니다. 아무리 흔한 이야기여도 겪어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르고, 완전히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그게 같은 형태로 우리에게 자리잡지도 않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고조되는 착실한 긴장감 또한 이 작품의 묘미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는 생각, 이 이후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독자를 견인하거든요. 전반적인 분위기와 내용이 이보다 잘 어우러질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리뷰는 애초에 작품의 내용을 다루는 글이기 때문에, 스포일러 숏코드를 쓰기가 애매한데요. 오늘은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집의 공포는 ‘이해할 수 없음’ 에서 오는게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덤덤한 주인공의 태도와 필력이 긴장감과 두려움을 이끌어내지요. 집이 수상하긴 하지만 주인공의 표현에 의하면 ‘감각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라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 있습니다. 다들 무서워 하는 집 치고는 이상하게 멀쩡해보이고, 괜찮아보이는 집입니다.
마음 속에 화도 많고 기도 세 보이는 게 그 집이랑 잘 맞겠다며 혼자 안심하더라는 것이었다.
제 눈에 띄는 ‘그 집’에 대한 정보는 이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호근은 석달째 잘 살고 있죠. 호근에 한정된 것 이지만요.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나는 봤어” 라고 중얼거리며 2층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정도면 호근도 공포에 질릴 만 한데 태연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오히려 제겐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게 될 사람에게 미리 고지하는 점은 성실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호근의 대략적인 설명은 글의 중반에서 마무리 되며 ‘광주대단지 사건’이 제시됩니다. 아, 이 이야기는 한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저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줄거리를 풀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 글의 구성은 정말 좋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글의 적재적소에 필요한 긴장감과 설명이 풀이되어 줄거리를 따라가야겠네요. 중반부에는 주인공의 솔직한 심정이 드러납니다. 그에 화답하듯, 혹은 그것을 드러내듯 2층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지요. 최악의 장소에서도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에게 더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당연히 죽은 자들을 만났을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들에 조금 관심이 갔습니다. 너무도 먼 곳에 있는 흰 옷을 입은 여자와 그에게 다가가는 주인공, 거기서 만난 아기. 희멀건한 아기는 큰 솥 안에서 삶아지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피 칠갑 된 여자의 입 속에 들어간 후에야 울음을 멈춥니다.
네, 저같아도 기절했을겁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일관된다는 점은 조금 신기합니다. “나는 봤다” 고 주장하니까요. 생략된 목적어는 무엇일까요. 2층의 주민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요. ‘나를 봐달라’는 말은 아니었을까요, 혹시요. 그런 궁금증을 가질 무렵 주인공은 다시 2층으로 가게 될 일이 생깁니다. 연기처럼 시커먼 사람들이 물을 마셨고, 고통에 시달립니다. 쓰레기통에서 시신도 보고, 주인공은 낡고 지쳐만 가죠.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은 갈 곳이 없어 버텨야만 합니다.
여기서 떠오르는게 있지요. 광주대단지 사건이요. 대개 귀신 들린 집은 원혼 하나가 공간을 점유하던데 (제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이 곳은 여러 망자가 공간을 함께 쓰지요. 왜 일까요?
괴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특정인에게 원한같은걸 가진게 아닙니다. (제 입장에선 그렇습니다.) 생전에 있었던 일들을 되풀이 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리고 그게 “하필” 주인공의 2층 이었던 겁니다. 사실 이 작품은 사건들의 어우러짐과 사건들의 배치가 훌륭해서 의문을 가질 틈이 없었습니다. 놀람의 연속이었거든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통해 그 사건을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건, “쫓기고 내몰린 그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주인공의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스크롤을 한참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사람에게 거주지, 터전, 집이란 얼마나 중요한가요. 안전한 공간이란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주인공은 말합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그냥 바닥이 되었다. 나 자신이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이었다.” 주인공의 처지가 ‘집’으로 표현됩니다. 쫓기고 내몰리고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꼈는지 저는 감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겐 안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집이 바로 그것이죠. 나의 공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외부의 자극과 해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입니다. 단순히 부동산이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에요. 삶이고, 자취이며, 미래가 바로 집입니다. 그런 집이 외압에 의해 사라진다는건, 그 자체로 두려운일 일겁니다. 그런 곳에서 쫓겨나 존엄과 안전을 위협받는 일은 상상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후로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호근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 그 집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를 제공헀다는 사실만 알게 되지요. 하지만, 독자로서 한가지는 궁금해 집니다. 광주대단지 사건을 알게 된 주인공은 밤마다 겪는 2층의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공포는 간직하되 다른 감정을 얹게 되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공포는 그 무엇도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감정이니까요. 다만 2층의 주민들이 그들의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독자의 소망을 말하자면 말입니다. 1
주인공은 이 사건을 우리가 알 수 없을 것이라 말하며 수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주인공 사이에 왜 이해라는 선이 그어져 있었을지 생각해봅시다. 그 선은 우리와 주인공 사이에 그어져있고, 주인공과 2층 주민들 사이에도 그어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까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영영 이루지 못할 소망을 좇으며 원혼처럼 이승을 떠돌아야 할까요? 그건 아닐겁니다. 사람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는, 분명 떨어져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떨어져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지도 모르지요.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든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을 연다면 이해의 실마리에는 닿게 될 지 모릅니다.
그게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은 계속 될 것이고, 사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다면, ‘나’ 의 수기와 같은 글을 통해 겪게 된다면 불길하고 흉하게 취급되었던 사람들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저는 그것 만큼은 믿고 싶습니다.
이쯤해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단문 응원에 쓴 내용이 대부분이라 작가님께는 새로운 글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창을 열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다보니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었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