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를 세기엔 우리의 숫자가 너무도 적어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숫자도 못 세는 게 (작가: 경희,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월 23일, 조회 30

내가 밟은 땅이 속하는 동네, 동네가 속한 도시, 도시가 속한 나라, 나라가 속한 대륙, 대륙이 속한 지구, 지구가 속한 태양계,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우리은하가 속한 우주. 이렇게 장소를 점점 확장해 나가는 상상을 하다 불현듯 내가 선 이 땅과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도 어렵고 ‘무한’이라는 개념으로만 어렴풋이 이해하는 우주를 통해 우리는 때로 지금의 고민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으며, 개인의 삶 역시 무게감을 조금 덜어 버리고 살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곤 한다. 교과서나 학교, 어른의 말씀이나 스쳐 가는 명언에서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인간은 종종 대비되곤 한다.

우리는 찰나를 산다. 그 찰나는 지금 우리가 아는 숫자를 다 세기에도 부족하다.

잠깐, 지금 우리가 아는 숫자 역시 무한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숫자들은 당연히 정해진 시간이 얼마나 길든 그 안에 세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는 ‘무한’한 숫자가 정말 많은 것일까. 여기서 또 우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겠다. 우리가 아는 숫자가 많을까,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가 많을까. 여기서 우리가 ‘아는’ 숫자란 무엇일까. 우리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있을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걸 알아도 감히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 어디까지가 우리의 ‘지식’ 범위 안에 있는 숫자일까.

우리의 숫자는 늘어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줄어들기도 한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음의 무한대로 한없이 절댓값이 커지는 것. 그리고 어떤 정수와 정수 사이에서 소수점 아래로 무한히 0을 찍어 내려가는 것. 둘 다 분명 값이 ‘작아진다.’ 양수와 음수, 소수점 아래 무한히 이어질 수 있는 소수들을 모두 합치고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를 합쳤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모든 수의 집합이 된다.

‘수’를 밝히는 데에만 일평생을 바친 수학자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의 업적으로 인류는 수에 대한 정의를 거의 다 세운 듯하다.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가 약속을 맺고,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에는 지금의 수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이 수들로 물건을 계산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우주선을 발사한다. 하지만, 지구 밖에서도 과연 이 수 체계가 통할까.

경희 작가의 단편 〈숫자도 못 세는 게〉는 지구와 수 체계가 전혀 다른 외계와의 접촉 및 협상 과정을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그리는 초단편이다. 지구상의 수들은 고사하고 정규 교육과정 내의 수 체계도 졸업과 함께 흔들린 우리가 외계의 수를 다루는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다행히 그 외계인은 이야기에 등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와 다른 수 체계를 가진 외계와의 협정 도중 분노하는 한 언어학 교수가 나온다.

교수는 외계인과의 협상 도중 통역을 중단하고 화를 내며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상황이 종료된 후, 문제를 일으킨 교수와 외교사절단장이 짧게 나눈 대화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단편에는 이상한 숫자를 읊어대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 교수의 태도를 의문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교수’는 그 자리에 단지 통역을 위해 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왜 외계의 수 체계에 분노를 표하는 것일까. 애초에 그는 번역에 필요한 간단한 수 체계만 익히면 되었다. 그리고 그 숫자에 따라 ‘지구의 흙과 바닷물만 좀 퍼주면 광속의 열다섯 배 속력을 내는 워프 엔진 기술’을 얻을 수 있는 협상 자리에서 지구 대표와 레흐놀루벤스키히야 대표의 대화만 원활히 진행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협약을 망친 것도 모자라, 외계의 지구의 문을 당장 걸어 잠그고 그들과의 어떤 협약도 맺지 않을 것을 외교사절단장에게 요구한다.

그는 왜 그렇게 화가 난 걸까. 대체 무엇이 그의 분노를 들끓게 한 걸까.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지구의 수를 열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외계인은 0과 1 사이에 적어도 우리보다 열 개의 정수를 더 가진 존재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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