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 여름 공모(감상)

대상작품: 생명의 여름 (작가: H0, 작품정보)
리뷰어: 09book2, 2월 14일, 조회 16

겨울의 끝자락이라고는 하나 2월 중반인 지금, 기온이 17도를 웃도는 이상한 날씨다. 소설 속 끝없는 여름의 반복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님을 증명하듯이.

 

언젠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나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고싶은 것들이 아직 많지만 그때까지 홀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적어도 나의 미래까지는 이 기후 위기가 내 생명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오만이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실감. 마침 이 기묘한 날씨에 읽으니 소설 속 여름의 열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겨울이었을 계절에 이렇게 무너졌는데 여름은 오죽할까.

 

낭만적인 여름밤, 시원한 공기, 아이스크림, 내리쬐는 햇빛, 푸르른 나무.. 반짝이는 이름들로 정의내려지는 ‘여름’이라는 단어가 끝나지 않는 공포로 뒤바뀌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T의 죽음 이후에도 용케 삶을 이어온 수연이 대단해보였다. 수연과 T의 관계가 일반적인 친구 그 이상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해보인다.

 

수연은 입가를 핥을 뿐 물과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굶주림과 갈증에서 비롯된 환영 속 T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T는 죽었으니 대화라 볼 순 없었으나 수연은 거짓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넘어 미래를 함께할 동반자. T는 수연이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기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도록 했다. 공범이 아닌 이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수연은 기존의 제 가치관을 던지고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는 방식을 택할 만큼, T를 그리워했다.

 

공범이 되지 말자. 짊어질 불행을 적어도 조금은 늦출 수 있도록.

 

수연의 두근거리던 심장이 점차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수연이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 T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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