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 (작가: Xx,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월 8일, 조회 87

공포소설은 괴담을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톺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설명되지 않는 모호함 앞에 두려움을 느낀다. 모퉁이 너머에서 들리는 낯선 소리, 어둠 속 희미한 무언가, 정체모를 현상이 그렇다. 이야기가 갖는 무서움이란 이렇듯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강화되는 것이다. 그러니 짤막한 몇 줄의 괴담이 주는 심리적 자극은 무척 강렬하다. 때로 그것을 이룬 문장 수가 적어질수록 이러한 자극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만큼. 앞뒤의 맥락이 소거된 기이한 이야기의 빈자리는 독자의 머릿속 상상을 통해 한없이, 한없이 확장 가능하다. 그곳엔 어떤 괴기스러움도 존재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이런 태생적 불리함을 가지고도 우리가 괴담을 소설로 발전시켜 쓰고 읽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긴 호흡으로 서사 안에서 공포를 힘 있게 다루는 작가들이 있다. Xx(차삼동)작가의 작품도 그렇다. 차삼동 작가의 공포소설은 중편에 가까운 긴 분량이 많다. 작가의 소설 안에서 짤막한 한 문장의 괴담은 풍성한 이야기로 변화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경험하는 만족감은 다름 아닌 문학적 체험이다. 공포소설은 소위 순수 문학 못지않게 깊고 강렬한 정서적 울림이 가능한 매체다. 공포가 소설의 옷을 입을 때 감정의 스펙트럼은 분노, 서글픔, 애잔함, 때로는 유쾌함으로까지 확장된다. 인물과 상황의 맥락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삼동 작가의 <마스크를 쓴 여자>를 읽으며 일상 속 공포를 경험하고, <비공개안건>을 읽으며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비통함과 사랑을 엿보고,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을 읽으며 서늘함 끝에 애달픈 감정을 느낀다.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은 169매의 긴 분량을 ‘나’와 ‘그녀’의 대화로 가득 채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이들이 전체 회식에서 합석하게 되며 주고받는 대화는 서서히 ‘공포’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얼핏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신 묘한 위화감을 풍긴다. 이 불투명한 위화감은 ‘그녀’라는 인물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옆 부서 사람을 쟁취하기 위해 ‘코코 포리고리’라는 의식을 행했다고 말한다. 코코 포리고리는 그가 나온 학교에 떠돌던 괴담으로,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면 짝사랑 대상과 ‘저절로’ 연인이 된다는 미신적 행위다. 밤 열두 시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 배우자가 보인다, 와 같은 흔한 미신. 그런데 작중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이것을 직접, 아주 충실히 행했다는 사실 앞에 독자는 오싹함을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과 애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보편적 마음이나, 모교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이 주술적 행위를 그가 실제로 행하고 성공했다는 사실은 일반적 이해를 슬그머니 넘어선다. 독자는 자신의 한 부분을 닮은 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그런 그가 넘어버린 선 앞에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은 아련함과 쓸쓸함을 담은 공포설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는 소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를 상대에게 보이고, 내가 상대를 읽어내고,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나를 맞추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기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둘 사이에 쌓이는 이 고유한 시간과 노력이다. ‘누구누구가 누구누구를 좋아한대’라는 한 문장과 박수 치기만으로 소망이 이루어질 때, 이 맥락은 소거된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명명되고, 사랑하는 사이에 나눌 법한 대화를 나누고, 애인끼리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진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을까. 소설은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경험한 오싹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학창시절 의문의 친구. 같이 아무리 즐겁게 농구를 했어도 내가 상대를 모르는 순간 그 만남은 괴담이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진실로 좋아하게 되는’ 진짜 소망을 이룰 기회를 영영 잃고 상대 역시 자신을 잃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누구에게나.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이 이야기 안팎을 오가며 켜켜이 쌓아올린 이 다층적 공포와 슬픔은 결말에 이르러 조용히 폭발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한 시간을 공포 소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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