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OOO’작가 작품이다!”라고 떠올릴 수 있는 분들이 몇 명 없다. 다들 소재에 따라 문장이 다르고 특색도 달라지기 떄문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규락작가님의 작품들은 작가님의 특색이 있어서 딱 ‘이규락 작가 작품’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 점이 작가님의 큰 장점이다. 사실 이곳에서 고백하자면 SF 소설을 잘 못 읽는다. 내가 학교에서 과학과목을 가장 어려워했고 최근 들어 SF 소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외계인이 나오거나 키치한 SF 소설을 좋아한다. 이규락 작가님의 소설은 키치한 분위기도 나서 술술 읽힌다.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항상 소설 속 나오는 이름들(회사나 지명 등)이 길고 어려운 데 그것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쓰신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 작가님은 자기 소설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고 쓰려 노력한다고 느낀다. SF라는 것이 자신의 세계관을 정확히 쓰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긴 하지만 작가님의 경우 재미도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신경 쓰실 것이다.
작품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식도에서 나온 음식이 고대로 나온다면? 이것이 소설의 소재다. 배설도 소설의 소재기도 하다. 식인도 자극적인 소재라고 한국 소설계는 치부하는데, 배설을 소재를 쓴 것이 기발하고 도전적이다(좋은 뜻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종일 구토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이 하는 행동은 다르지만, 노동자나 동물원 속 동물들의 과 다를 게 없다. 마지막쯤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밀어보고자 ‘나 좀 도와줘요’라고 쓴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진우의 죽음은 현대인의 죽음 방식과 비슷하다. 나는 한국의 자살률이 많은 이유는 노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빠른 성장으로 인해 기성세대들은 회사에 헌신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젊은 사람들이 힘들다며 그만두는 일을 이해 못 한다. 남들이 힘들다고 하던 직업을 가졌을 때를 떠올리면 나는 이곳의 톱니바퀴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만두면 됐는데 나는 그것을 못했고 가끔 내일이 없어지길 바랐던 시절도 있었다. 진우의 죽음을 보며 그때가 생각이 났다. 진우는 내 일과 다르고 어찌 보면 생산직과 비슷하지만 말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진우처럼 쳇바퀴같은 삶을 살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운운하지만 정작 노동에 대한 실용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좌석 없는 지하철 같은 정책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어렵게 산 적이 없으니 세운 정책들이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그 삶이 어려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