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를 위한 변론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미열 [확장본]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조영, 2월 4일, 조회 50

작품의 전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리뷰를 열람하시기 전에 작품을 먼저 일독해주세요.

 

왜 냉각수일까.

작품을 읽고 나면 꼭 한 가지쯤 의문이 듭니다.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제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로운 답을 돌려준 후에, 놀라움을 즐길 때쯤 되면 속도감 있는 전개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쏟아내거든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습니다.

이야기에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재미있다.’ 아닐까요?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감상을 전해야 마땅하겠지요. 멋진 글을 써주신 데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짧게 적어봅니다. 개인적인 감상이며, 집필 의도와 다른 해석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미열

작품의 제목은 ‘미열’입니다. 적사각 작가님은 제목을 신중하게 지으시는 편 같습니다.  작품 소개도 신경 쓰시는 것 같아 확장본이 아닌 원본을 살펴봤는데 이 작품의 소개 글엔 이렇게 적혀있더군요.

[ 냉각수 대란. 냉각수를 구하지 못하면 열에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

설정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인체를 기계로 ‘전환’하면 체온 같은 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컴퓨터에도 쿨링 시스템을 달고 있었죠. 컴퓨터와 작중 인간들에게 차이가 있다면 컴퓨터는 서버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냉각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데 작중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간이니까요. 인간이 체온에 민감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여기서는 꽤 심각하게 작용합니다.

미열이 일으키는 두통을 경고창으로 표현한 점은 절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시야에 우리의 실제 경험을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뜨는 경고창을 거슬려하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테니까요. 전환된 인간이라는 신인류의 불편에 쉽게 공감하고 녹아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묘사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냉각수 온도는 긴장감을 심화시키죠. 차라리 보지 않을 수 있었고, 경고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초조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 같단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미열’은 하디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습니다. 도덕적인물인 하디가 냉각수 수렵을 결심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미열이라는 소재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미열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한 하디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노인과 악마

미열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후로 하디는 세이로 형상화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녹등가에서 있었던 일은 다소 상징적이고 환상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노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노인은 약자이며 냉각수 수렵의 피해자이자 녹등가를 떠나지 못한 빈민입니다. 충격을 받아 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신과 천사, 악마만을 찾으니 말입니다. 대체 노인은 왜 끝도 없이 천사와 악마를 부르짖을까요. 앞서 녹등가 장면을 상징적으로 읽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악마가 있다면 노인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악마는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악한 행동을 하도록 꾀어내는 존재기도 합니다. 모두가 떠난 녹등가에 노인 혼자만 남아 있을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이 적절하게 새 냉각수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됩니까. 이런 면에서 저는 노인을 작품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인물로 이해했습니다. 주인공을 더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시험 같죠.

무엇보다 노인의 세계에는 천사와 악마만 있습니다. 노인에 의해 하디는 순식간에 천사에서 악마로 바뀝니다. 하디는 끝내 부정하다가 자포자기하며 나를 악마로 만든 건 당신이라고 인정하지만 글쎄요. 인간은 천사나 악마, 선 또는 악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습니다. 선해지려다 악해질 수도 있고, 악해지려다가 선해질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선해지기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인간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디는 정말 악마로 불려 마땅한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선자, 그러나.

무엇보다 극한 상황에서의 행동은 인간을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센서를 오작동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열, 무섭게 올라오는 냉각수의 온도와 끊이지 않고 켜지는 경고창. 이 상황에서 무슨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하디는 노인을 발견한 후 수렵을 포기했습니다. 노인이 냉각수의 위치를 알려 줬을 때 그것만 들고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죠.

“악마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처음부터 악마는 당신이었소. 음흉한 결심을 품고 지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말이오.”

이 대사 직후 빈 껍데기만 남은 더플백이 ‘죄인처럼’ 하디의 앞에 널브러집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행한 것과 행동하지 않은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디가 이 상황에서 어째야 했을까요? 불완전하나마 도덕적인 인간인 하디가 위선적으로 굴며 마지막까지 세이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 것이 하디만의 잘못일까요.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을 해친 건 분명 씻을 수 없는 죄지만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놓고, 개인만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든 일의 원인은 미열입니다. 노인도 결국 미열의 연장선이죠. 하디를 몰아붙이던 미열이 노인의 형태가 되었을 뿐이고, 노인 또한 냉각수 수렵에 당한 피해자니 말입니다. 냉각수 수렵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회에 하디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미열의 원인은 냉각수 부족입니다. 수랭식은 열을 많이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입니다. 온도가 잘 올라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 올라간 온도는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냉각수를 AIF-자본으로, 하디를 일반 시민으로 치환해 보면 어떨까요. 기술이 앞장서는 시대에 기업이 발전과 관리를 주도하는 건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관된 이권과 자격은 쉽게 돌아오지 않죠. 전환이 일반화된 시대에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 몇 달이 지나도록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건 문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공권력은 도시 미화나 신경 쓰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 데도요. 이때 하디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었습니까? 기다리거나, 생계를 겨우 유지하거나, 미열에 시달려 타인을 해치며 생존하는 일뿐이지 않습니까. 이게 정말 개인에게 환원되어야 할 문제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냉각수의 온도가 체온을 앞지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저는 이 작품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민영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어떤 문제는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작중 하디는 세이의 도움으로 냉각수를 교체할 기회를 얻지만 글쎄요, 이미 다른 색으로 물들어버린 하디의 냉각수는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작품 <미열>은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SF는 미래를 통해 현재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장르기도 합니다. “냉각수를 구하지 못하면 열에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면 냉각수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디나 세이가 아니니까요.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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