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글이 아니라 공백으로 공모(감상) 공모채택

대상작품: 숨을 내쉬다 (작가: 조은별, 작품정보)
리뷰어: 기다리는 종이, 1월 31일, 조회 28

매우 짧은 소설입니다. 브릿G 기준, 아슬아슬하게 엽편이 아닌 단편으로 분류될 만큼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글의 분량이 짧고 긴 것은 단순히 분량에 불과함을 잘 드러내 보이는 꽤 좋은 소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구구절절 뭐라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읽으시는 것을 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이 소설은 보여 주는 것보다 보여 주지 않는 것이 더 좋음을 알 수 있는 아주 빼어난 사례 중 하나입니다. 31매밖에 되지 않는 소설이므로, 소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길게 전개할 수도 없고, 배경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조금씩 문장을 살짝살짝 흘려보낼 뿐이죠. 그렇게 흘려보내진 문장은 이야기의 조각을 담고 독자의 마음에 닿아서, 독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깨달아가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육체를 기계로 대체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이 소설이 일종의 SF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나중에 등장하는 ‘소녀’가 겪는 일로 훌륭하게 회수됩니다. 사실은 더 나아가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이냐를 묻는 질문이 될 수도 있고요.

제가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런 부분들이 소설 내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리더와 주인공의 관계나, 그것을 의심한 리더의 남편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것들이 모여서 쓰지 않은 내용이 소설 내에서 독자에게 전해져 옵니다. 쓰여진 글보다, 그 사이의 공백이 더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것이죠.

이는 구성 그 자체에서도 드러납니다. 숨을 내쉬다는 총 23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각각의 문단에는 번호가 붙여져 있고, 문단 내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습니다. 오직 서술과 묘사, 생각과 기억 뿐입니다. 그것은 주인공이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그런 것들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각각의 문단은 개행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단 하나의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를 빼고요.

단 하나의 예외, 음악이 완성되는 시점, ‘평생의 죽음’을 완성하기 전 긴 호흡. 그 시점에서 소설은 문단 내에 유일한 개행을 넣어 둡니다. 소설은 글자로 이루어진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것을 전해 주는 부분은 글자가 아니라 그 공백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평생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흔적을 만들어낸 뒤 가진 마지막 흔적. 그것을 어떻게 독자에게 느끼게 할 것인가?

여러 방법이 있고 여러 표현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가장 짧게 전하고 싶다면, 이 소설이 최고의 정답을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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