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건 지금 당장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단번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 다름 아닌 저승. 나는 ‘저승‘ 소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저승을 소비하는 것보다 변형된 ‘퓨전‘을 좋아한다. 화성도 아니고, 우주 저편도 아니고 저승으로 이주를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고, 꽤 긴 분량인데 흥미롭게 1부를 다 읽었다. 2부는 휴재인 걸로 보이는데 연재가 재개되면 따라 읽어볼 생각이다.
배경은 지구 멸망까지 365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화성 이주 프로젝트마저 실패해서 꼼짝 없이 멸망만 기다려야 하는 절망적 상황의 한국이다. 주인공은 21세의 나이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정부대전청사 문화재청으로 ’첫 출근‘한 윤기린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 1화부터 흥미로운 사건이 던져지면서 “오호~”할 수밖에 없었던 이 소설, 사실 그렇지 않나. 도입부에 냅다 ’이상한 사건‘이 던져지는데 이게 소설 안에서 말만 되면 장땡이다. 꼭 외부적인 것까지 다 따질 필요가 없다. 작품 내에서 설득력만 있고 재미만 있다면야… 좋지, 뭐.
바로 그래서 나는 기린이 출근 첫날에 청장실로 불려가서 김화금 선생님의 신딸이자 서해안 대동굿 전승자, 대한민국 최고의 무속인인 인간문화재 김선정 선생을 만났을 때 주인공 기린과 함께 “???” 하며 머리를 갸웃했고, 그 노파가 기린이 ’현세와 사후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신화 속 동물 기린‘이라고 말했을 때 “오호?” 했으며, 인류의 유일한 대안이 ’사후세계‘라는 이야기를 보았을 땐 실소했고, 문화재청 지하 소강당에서 소수의 인원과 함께 기린을 사후세계로 ’산 채‘로 보내기 위한 지노귀굿이 펼쳐지기 시작했을 땐 “헐?” 하면서 웃었고, 빠르게 2화로 넘어갔다.
1화를 볼 때의 기분이 이렇게 상세하게 쓴 것은 이 리뷰를 읽고 소설을 보게 될 여러분 모두 겪게 될 이야기여서다. <저승 이주 프로젝트>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당혹감,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뜨악함을 작가는 1화에서 빠르게 해소하고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키운다. 특히 작가의 말 코너를 통해 보여주는 사후 세계의 기린과 현실 세계 사이의 소통 메시지는 더 재미있는데 어렸을 적 만화를 볼 때 가끔 나오던 엔딩부 네컷 만화를 떠올리게 해서 더 좋았다. (연식이 나오긴 하는데… 흠, 암튼 나는 윙크나 파티 등의 만화 잡지를 통해 연재되는 만화 보는 걸 좋아했고, 가끔 네컷 만화 나오면 꼭꼭 아껴서 보곤 했다)
2화부터는 사후세계로 넘어가게 된 기린이 사아를 받아내는 산파로 활동하는 호랭이를 만나서 사후 세계에 적응하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일화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설정이나 세계관이 잘 짜여져 있어서 좋았는데 이를 테면 이승에서 사후세계로 넘어가게 되면 ’사낭‘이라는 보자기에 싸인 ’사아‘로 나타나는데 산파가 사낭이 나타날 곳을 잘 포착해서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한, 기린의 오른 손에 핸드폰이 심겨 있어서 별도의 기기 없이도 현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해둔 것 역시 그럴 싸했다.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은 기린과 산파 호랭이, 오래 산 존재인 마고인데 처음에는 기린의 ‘사후세계 탐방기’로 시작해, 점차 사후세계 내의 갈등이나 문제요인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사후세계 생존기’로 바뀌는 흐름이 서사를 흥미롭게 했다. 등장인물이 꽤 많은데 개개의 인물에 적당한 서사를 줌면서도 이야기가 꼬이거나 헷갈리지 않도록 잘 구조화했다는 지점도 이 소설 전체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또한, 저승의 문제와 맞서 싸우던 과정에서 ‘연결된 통로’를 발견하여 이승으로 이동한 1부 엔딩이나 정부의 방침이 저승 이주가 아닌 저승 침공으로 바뀌었다는 2부 시작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린의 보고서 내용에서 사자들은 생전의 기억이 없다“에 집중한 강경파들의 소행이었다. 2부의 내용이 더 이어진다면 리뷰가 더욱 풍성해지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1부 내용만으로 리뷰를 맺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리뷰는 감탄과 흥미롭다는 평으로 가득했다. 실로 그렇다. 읽어보면 필자와 비슷한 평을 하게 될 것인데 발랄한 소재와 설정에 그 나름의 설득력을 획득하고, 설정과 세계관을 구체화하여 1부를 탄탄하게 구현해 낸 것이 1,259매의 꽤나 긴 분량에도 중도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재밌게 읽게 하는 동력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3가지 정도 남았다.
첫째. 살아 있는 상태로 저승으로 ‘어떻게‘ 이동할지 확인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특이 체질의 기린이 굿을 통하여 이동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1부 마지막에 저승의 백록담으로 뛰어들었더니 현세의 백록담으로 나온 에피소드를 통해 ’의외의 연결구간‘을 발견했지만 기린이라는 ‘특이 체질’이 호랭이(백호)와 함께 이동해서 가능했던 이동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다. 즉, 일반인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후세계로 이동 가능할지, 일반인이 산 채로 저승에서 살 수 있을지는 확인되지 않았단 의미다. 그 상태로 이주도 어려운데 침공이라니… 의문이 많이 남았다.
이주든 침공이든 하려면 꽤 많은 인력이 이동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백록담에 뛰어들 수도, 최고 무속인이 사후세계에 있는 상황에서 굿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 저승으로 갈 수 있을지, 산 자들이 몰아닥치는 걸 막는 ‘저승 내의 구조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지 여부에 대해선 1부 마지막까지 흐릿해서 아쉬웠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명확히 경계지어지는 존재인 만큼, 죽은 자의 세계에는 마땅히 ’산 자의 출입‘을 금하는 장치가 있어야 할 거라 생각한다.
둘째. 호랭이와 기린의 러브라인이 대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나는 필요성이 딱히 보이지 않을 때 러브라인이 등장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경우 호랭이와 기린 사이에는 러브라인 불꽃이 튈 만한 요소도 없었고, 오히려 러브라인을 보여주는 데 사용된 분량을 다른 이야기나 전개에 썼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위험천만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서로를 구해주면서 ’애정‘을 확인한다던가 혹은 두 사람의 로맨스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이 내용이 굳이 필요한가… 거의 그려진 내용이 우정에 가까운데 다소 억지스러운 러브라인 묘사가 끼어들어서 아쉬웠다. 개인적 취향이기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셋째. 저승 이주 프로젝트라는 내용도 큰데 담아내는 서사가 많아서 중요도가 분산되는 느낌이다.
저승에 지구인이 이주 가능할지 확인하는 프로젝트도 큰데, 호랭이와 마고의 과거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사이즈가 큰 편이었고, 저승 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스포를 막기 위해 간단하게만 쓴다)‘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큰 편이었다. 결론적으로 저승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저승 이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먹혀버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저승 내에서 세력 다툼은 왜 벌어지고,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어째서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저승도 결국 현세와 똑같이 알력다툼이 있는 평범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롭게 읽는 것과 별개로 물음표가 남았다. 이 사건들이 2부에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게 탄탄하게 잘 그려지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 같다. 아직 전체적으로 완결난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지만 3가지 아쉬운 점을 남겨 보았다.
발랄한 설정을 탄탄하게 뒷받침하며 끌고 가는 게 참 어렵기 때문에 1부까지 그 어려운 일을 잘 해낸 이야기 <저승 이주 프로젝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 이어지게 될 2부 내용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