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부 프레지던트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대선(代選) (작가: 존 페리,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23년 12월, 조회 31

예정된 수업의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정치철학 교수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월요일 아침 첫 수업시간답게, 학생들은 교수가 들어오건 말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등, 저마다의 딴짓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을 한번 쭉 훑어 본 교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내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사람에 한해서 오늘 수업을 끝마쳐주도록 하겠습니다.”

교수의 솔깃한 제안에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강의실이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교수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수는 정적의 시간이 이어지자 시간이 간다는 의미로 자신의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검지와 중지로 톡톡 두드렸다. 그제서야 맨 뒤에서 엎드려 자던 학생이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손을 들었다. 교수는 학생을 지목했다.

“맨 뒤 학생, 말해보세요”

그 학생은 살짝 웃음을 띄며,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 강의실의 수강생들 중, 오늘 수업을 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당돌한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뒤이어 강의실의 학생들 역시 하나둘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들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손을 들었을 때 즈음, 학생이 말을 이어갔다.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그 학생은 가방을 챙겨 교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이날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재치 있는 답변을 하고 강의실을 나갔던 학생의 이름은 존 D. 스미스. 훗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정치체계에 영향을 끼친 수정민주주의를 창시하고 정립했다고 알려지는 남자였다…

마지막 문단은 제가 임의로 덧붙인 겁니다. 꽤나 익숙한 문법으로 쓰인 글이라는 느낌이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지식e식 스토리텔링이랄까요?

작품은 차기 대통령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와 상술한 정치철학 강의를 하는 교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해가는 방식으로 쓰여 있는데, 시점이 여러 차례 전환됨에도 서로 다른 문체를 능숙하게 구사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읽는 재미는 충분하나 작품의 결론만은 좀 심심한 느낌이 듭니다. 추천글에도 쓰여 있듯이 이 작품은 “플라톤이 제안한 ‘철인 정치’가 진실로 가능하다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그 철인에게 의결권을 넘길 것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마무리가 납니다만, 주인공이 설령 지금의 결말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더라도 2023년 현시점의 독자에게는 어느 쪽의 선택이건 간에 그다지 유의미한 임팩트가 없기에,

1.의결권을 포기한다-현실에 이미 포기한 사람이 많아서 별로 충격이 없음.

2.의결권을 포기하지 않는다-케케묵은 비이성적 민주주의뽕 고취목적의 선전엔딩.

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어찌어찌 서사를 더 잘 쌓으면 “알고도 당하는” 느낌으로 양쪽 다 재밌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작풍을 바꾼다면 지금의 작풍만이 지닌 미덕을 잃게 됩니다. 딜레마인 만큼 정답이 쉽게 생각나지 않네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술술 결말까지 따라가게 되는 작품이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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