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 역시 타임리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뒤늦게 깨달은 점 한 가지를 말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설정이나 플롯의 논리적인 완결성 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선이라는 거죠.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그 다음에 과연 이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지 따져 볼 기분이 생기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일단 성공했습니다. 설정의 논리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리뷰들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후에나 쓰여질 수 있으니까요.
자 그럼 설정을 봅시다. 스포일러는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으니 주의 바랍니다.
이 글의 핵심 주제는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입니다. 타임리프 소설 중에서, 과거로 시간을 되돌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바뀌지 않는 부류에 속하는 거죠.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까지도요.
문제는 소설에 역사가 바뀌는 장면이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일기의 내용이 바뀌고, 주인공이 가슴 아파하는 그 사건도 바뀌긴 바뀝니다. 다만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뿐이죠. 이 세계관에서는 바뀌지 않는 것과 바뀌는 것이 나뉘어 있습니다. 굵직굵직한 사건, 즉 운명은 바뀌지 않지만 세세한 디테일들은 바뀔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그토록 바꾸고 싶어하는 그 사건은 안타깝게도 바꿀 수 없는 사건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걸 너무 쉽게 인정합니다. 소설에는 그걸 바꾸기 위한 단 한 번의 시도만 나와있죠.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그 사건은 운명이라고 인정하고 포기합니다. 이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절대 아무것도 안 바뀐다면 모를까, 디테일들이 바뀌고 있는데 한 번의 시도로 포기하다뇨. 분량을 늘려서라도 주인공이 수많은 시도를 하는 처절한 과정을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약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차선으로 선택한 대안이 주는 감동이 약해집니다. 자, 운명은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로 바꾸고 싶은 건 운명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정해진 운명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녀를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주인공은 답을 찾아냅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이용해서요. 작가가 야심차게 숨겨 놓았을 이 장면 자체는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는 독자는 아직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시도 밖에 안 한 상태니까요. 어떻게 잘 하면 그 사건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미련이 남게 됩니다. 다른 분이 쓰신 리뷰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의 설정에는 시간을 되돌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소설의 디테일을 통해 그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하고, 독자들에게 핵심적인 그 사건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납득시킨 후에, 준비하신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면 감동이 극대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