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134340>을 읽기로 결심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소개 글에 적혀 있는 대사 인용구가 마음에 들어서였는데 가볍게 옮겨보겠다. <그래, 언제나 난 혼자였지. 아득한 우주의 공간이 언제나 혼자였던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늑한 둥지처럼 느껴졌다. 홀로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게 가장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라는 대사에서 지독한 고독이 느껴졌다. 동시에 너무도 공감이 갔다.
불과 이틀 전에 화장실에 웅크려 앉아서 생각했던 것과 유사해서였다. 지독하게 고독하다, 라고 생각했고 대체 언제까지 이 생을 영위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딱히 그럴싸한 해결법은 없었다. 그저 날이 바뀌었고, 회사에 출근했고, 그래서 나는 늘 그렇듯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글을 읽고 쓰고 있는 것도 이, 근원적인 ‘허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래서 나는 저 대사를 내뱉은 사람은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까 몹시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결말에 앞서서 잠시 소설의 스토리를 짚어보자면,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주인공은 듀믹호의 선원이었지만, 듀믹호의 엔진 고장과 선체 시스템의 결함, 선원의 죽음 등의 사건을 겪으면서 우주선에서 쫓겨난다. 명목은 왜소행성 카론의 탐사였지만, 실상 차출이었다. 식량은 줄어가고, 한 사람 몫을 줄이는 게 더 필요한 시점에 썩 잘 어울리지 못했던 주인공이 죽음의 길로 내쫓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은 구조될 방법을 매달리지만 표류한지 딱 100일이 되었을 무렵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기묘한 은빛의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 여기까지 봤다면 대충 눈치챘듯이 주인공은 은빛의 여인을 찾아 나서고 결국엔 그 여인에 의해 또 다른 세상에 접어 들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범주 밖에 존재하는 곳, 모두가 4살이 되는 곳이다. 나이가 든 채로 온 자는 어려지고, 아주 어린 자는 나이를 먹으면서 모두가 네 살에 맞춰지는 세상을 바라보던 주인공은 묻는다. “그럼 나도 네 살이 되는 거야?”라는 말에 여인은 답한다. “그럼, 너도 네 살이 되는 거야.” 기묘하게도 나는 이 짧은 대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어느 다큐에서 골든 타임은 3살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3살 때까지 아이들의 자아는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기에 기질적인 단점도 교육으로 고칠 수 있지만, 4살로 넘어가게 되면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즉, 네 살은 자아가 형성되는 첫 번째 나이인 셈이다.
실로 그런 것이 3살 이전의 기억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그 역시 자신이 ‘나’라는 인지를 갖고 살아왔던 게 아니기 때문일 테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주 마주하게 되지만, 특히 일터에서 나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동물인지 많이 마주했다. 살아 남는 자는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능해도 남탓을 해대면서 끝까지 남아있는 자다. 일 잘하는데 오래 살아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마이웨이’를 하는 저력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은 본디 ‘자기 중심적’이며, 밥벌이하는 데 있어서는 사력을 다한다. 나는 이 세상 전체가 지리멸렬하다 느끼는 사람이라 소설 속 짧게 서술된 내용들에서도 많은 걸 읽었다.
그래, 인생은 때론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건지 허망하고 또 허무하다. 사실 인생사에 ‘확실한 것’이란 없으니까. 가장 확실한 건 우리가 언제 어느 순간에 죽는다는 대 명제일 뿐… 우리는 다만 죽기 위해, 죽을 날을 향하여 나날이 걸어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니 오늘의 내게 모두가 네 살이 되는 세상이란, 얼마나 뜻 깊은가. 실은 그저 나부끼는 티끌로 돌아가 아무것도 아닌 ‘무위’의 존재가 되고 싶은 때가 많지만 오늘은 네 살이 되고 싶다. 이 감정을 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기에 뭐가 어째서 마음에 드는 건가 리뷰를 읽으면서도 의아할 수 있겠다. 내 답은 하나다.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빠르게 읽어보도록. 87매 정도 짧은 분량에 문장도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잘 읽힌다. 기나긴 설명 보다 한번 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그 주인공이 도착한 결말, 세계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는 디테일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잘 그려지지 않고, 묘령의 은빛 여인과 주인공 사이의 이야기도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단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움일 뿐. 정서가 잘 전해져서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것은 표류한 와중에도 열심히 임시 기지를 만들고, 구조에 대한 의지가 꺾인 다음에도 매일 탐사 일지를 작성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성실성이었다. 어떠한 순간이 와도 할 일을 하는 자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태도다. 어쨋거나, 인생은 흘러간다. 매일매일 시간은 지나가고, 마음이 어떻건 하루는 또 그대로 잘 흘러간다. 모두가 네 살이 되는 세상은 어떠한 방식으로 굴러갈까, 이 소설 뒤의 이야기도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