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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 SF, 판타지 | 태그: #우주 #행성탐험 #외계생명체
  • 평점×9 | 분량: 87매
  • 소개: 머나먼 소행성에 홀로 버려진 한 인간 앞에 나타난 은빛의 괴생명체. 그리고 생존을 위해 그를 쫓는 인간의 투쟁기. “그래, 언제나 난 혼자였지. 아득한 우주의 공간이 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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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과 척박함만이 남겨진 세상. 머리를 뒤덮은 칠흑같은 어둠과 발 아래로 펼쳐진 시린 얼음이 전부인 곳. 그곳에 나는 홀로 서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광활한 적막뿐인 하늘과 미지의 공포로 가득 찬 땅이 서로 나를 짓이기려 하는 것을 견디고 서있을 뿐이다. 내 뒤로는 가파르게 깎인 얼음 절벽이 공포스럽게 나를 유혹하며 속삭였다. 한 발짝 뒤로 내딛으렴. 하얀 세계가 너의 지옥을 끝내줄테니. 그 달콤한 속삭임이 발끝을 간지럽혔다. 정말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나를 구원해줄지 모를 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자 칼날 같이 날카롭게 돋아있는 빙벽 위로 떨어져 찢기고 잘려나갈 내 몸뚱이와 순백의 땅을 붉게 물들일 내 피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는 얼른 절벽을 외면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직도 내겐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앞으로 펼쳐진 땅은 얼음 표면이 정체 모를 스모그와 뒤섞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미지의 땅을 내딛는 나의 발걸음은 어쩐지 진공의 공간을 부유하는 듯 무의미하기만 했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달려도 보고 몸부림도 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느낌. 나는 멈춰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그곳을 향해 서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의 손끝이 허공의 어딘가에 다다른 순간 비현실적인 일이 펼쳤다. 얼음 바닥처럼 보였던 곳이 표면을 감싸고 있던 스모그와 함께 어우러지며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그곳에 대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구멍에서 눈부신 섬광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어마어마한 빛의 세기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빛은 사라졌고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그곳에는 더욱 비현실적인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빛의 여인. 피부부터 머리카락, 눈알까지 모두 은으로 뒤덮인 여인이 섬광이 나왔던 구멍 위 허공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완벽한 몸매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육체는 단순히 은빛으로 덮여있는 것이 아닌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 단단한 느낌이 났다. 금속 거푸집에서 갓 찍혀져 나온 것처럼 딱딱한 얼굴은 어떤 표정도 갖고 있지 않았으나 날카롭고도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물을 지배하는 신과 같은 그녀의 아우라는 공포스러우면서도 자애로웠다.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 저 생명체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유일한 이였음으로 그녀에게서 희망을 찾아보고 싶었다. 생명체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괴물이건 로봇이건 지금 나와 공존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 올랐다.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달라고 말해야지. 계속 나만을 노려보던 그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에 굴복하지 않고 나는 입을 떼었다. 그 순간, 단단하게 굳어진 것처럼 보였던 여인의 입이 무섭도록 크게 벌어지며 귀를 찢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세상을 모두 날려버릴 듯 파괴적인 고음의 괴성. 살인 무기에 가까운 그 괴성에 나의 정신은 암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인의 괴성은 암흑까지 날 따라왔고 나는 그것이 내게 날카로운 경고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을 떠나!!!!’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