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러, 세상을 구할 열쇠의 이름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 (작가: 리체르카,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11월, 조회 36

* 본 리뷰는 진보람(리체르카) 작가의 장편 연재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의 전자책 출간본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후 언급하는 내용 및 인용 중 연재분과 상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파랑’이라고 하는 단어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며, 안정을 가져다주고 꿈을 꾸게 한다.

-미셸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 298쪽

 

‘파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을의 한가운데,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어떤 방해물도 없이 수평선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 청색 계열을 특징적으로 쓰는 간판이나 물건, 애플리케이션 아이콘 등이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 푸른색 이미지를 보면 시원하게 열감이 식는 기분이 든다. 이처럼 색은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디자인의 면에서 빨강은 뜨거움, 파랑은 차가움을 나타내는 가장 직관적인 색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을까.

대부분 개념에는 ‘역사성’이 있다. 언어, 문화, 사상, 철학의 부분 또는 전부가 그러했듯 색 또한 시간에 따라 명백한 기능의 변화를 겪었다. 그중 파랑은 다른 색에 비해 사람들의 눈에 늦게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가장 선호된다. 지금 우리가 아는 파랑은 그 역사의 극히 일부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파란색이 따뜻한 색”이었으며 때로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따뜻한 색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랑의 온도는 17세기부터 내려갔으며 완전히 차가운 색으로 인식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진보람 작가의 장편 연재소설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는 수 세기 동안 역사가 기록해 온 파랑의 이미지 중 ‘신성성’을 극대화해 활용한 작품이다. 실제로 12세기 전반, 청색은 “단독으로 성모 마리아가 입는 상복의 색깔을 차지”할 정도로 신학적 위상이 높았다. 성화(聖畫), 즉 성스러운 그림을 통해 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중세 시대풍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판타지 소설은 익숙하던 길거리에서 갑자기 수상한 소문을 지닌 예술가들의 탑으로 이끌려 들어간 화가 ‘슐러’를 주인공으로 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길거리 생활을 오래 하며 늘 배를 곯았던 탓에 제대로 된 종이에 그림 하나 그려보지 못한 슐러는 가능성 있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니르젠베르크 저택 주인의 눈에 들어 갑자기 상상도 할 수 없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찬바람을 맞으며 다리 밑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익숙했던 그에게 주어진 건 뜻밖의 따듯한 방과 고급 미술 재료들. 대대로 예술가들을 지원해 왔다는 이 저택의 주인은 슐러에게 그저 재능을 키우는 데에만 마음을 쓰라고 넌지시 귀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아침에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슐러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저택에는 수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저택에 들어간 수많은 예술가 중 유독 화가들만 다시 세상의 빛을 보는 일 없이 홀연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해도 평생에 한 번도 저택의 밖에 나갈 수 없도록 사람을 묶어두는 것은 지독한 감금이다. 어째서 모든 예술가에게 관대한 니르젠베르크 저택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는 자취를 감추는 것일까.

 

 

나는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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