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운명과 황금새장 의뢰(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하그리아 왕국 (작가: 난네코, 작품정보)
리뷰어: cedrus, 23년 11월, 조회 104

* 최신화 (51-4)까지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채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의 리뷰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다소 조심스럽긴 하나,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담았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최신화까지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본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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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고수머리를 흩날리며 춤추는 무희. 붉은 보석과 장미를 손에 쥐고 왕자비가 된 누르자한. 춤은 영혼이자 종교였으나, 누르자한은 기꺼이 춤을 버렸다. 그를 찾아온 행복, 이스카에 비한다면 공들인 제의마저 의미를 잃었다. 2왕자 이스카는 누르자한의 전부가 되었고, 삶이 되었다. 황금잔에 담긴 죽음을 마시기 전까지, 누르자한은 오직 이스카를 위해 살았다.

그리고 아르샨. 선하고 고귀한 첫째 왕자는 왕이 되고자 한다. 그의 유일하고 진실한 사랑이 왕비가 될 수 있도록. 그 자신은 명석한 두뇌도 뛰어난 무예도 갖추지 못했다며 주저하지만, 보관을 쓰고 왕국을 발 아래 두고 싶은 파리사티스를 위해 아르샨은 왕이 될 것이다.

 

<하그리아 왕국>의 인물들은 사랑을 위해, 사랑에 의해 움직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을 안겨주고자 행동한다. 그러나 사랑의 마법이 만인에게 다정하지는 않으니, 일방적인 사랑의 무게는 누군가에겐 원하지 않는 것이기도,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아이라만은 사랑하는 샤흐라자드의 아들, 고귀한 왕자 아르샨을 반드시 왕으로 만들겠다 말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려면, 아르샨의 형제 이스카와 스피타만을 밀어내야 한다. 가장 높은 자리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므로. 아르샨이 아닌 왕자들의 편에 설지 모르는 자들은 쳐내야 한다. 아이라만은 아르샨을 위해, 안전하게 가공된 올바른 세상 속에서만 살아가라 종용한다.

소흐랍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빛나는 스피타만을 위해 왕관을 얻어주겠다 말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도 참혹했으므로, 마침내 찾아온 귀한 아들을 위해서라면 주저할 것이 없다. 무엇이든 하겠다 혹독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이스카와 미르셀라에게도 그에 걸맞는 태도를 요구한다.

소그달리아는 어리고 약한 라지한을 품에 안으며 불행을 곱씹는다. 라지한을 지키기 위해, 아들의 앞날을 위해 왕관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이 사스키아와 루스탐, 죄 없는 모자의 피를 대가로 요구할지라도. 라지한에게 왕관이 주어지려면, 타인에게는 같은 것이 주어질 수 없다.

 

사랑이라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감정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으나, 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가혹하다. 사랑이란 감정마저 변질되고 왜곡되고 만다. 사랑은 행복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이 원래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없는 곳, <하그리아 왕국>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쓸모를 다한 짐승은 주인의 손에 생명을 잃는다. 주인의 필요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이야말로 짐승의 운명이다. 이는 타흐마탄이 저항하고자 했던 운명이며, 아들에게 물려주길 원치 않았던 속박이다.

초원의 양은 고기와 가죽이 된다. 제국의 노예는 스스로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없다. 할리메의 부모는 어린 할리메를 노예로 팔았다. 천한 신분이었던 소흐랍 총독의 어린 시절은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등장하지도, 언급되지도 않는 수많은 평민과 노예들은 초원의 양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을 살았으리라.

신분이 미천한 이들에게만 과연 짐승의 운명이 주어지는 것일까. 소흐랍 총독도 말하지 않았던가.

보통 사람들은 저처럼 살 수 없어요. 백성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긴 했지만, 하층민의 인생은 어딜 가던 고달픕니다. 신께 죄를 지어서 하층민으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저 태어나고 보니 삶이 시궁창인 것이에요. 스피타만 전하, 어마마마께서 살갑게 대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다고요? 전하께선 굶어보신 적 있습니까? (22)

이를 악물고 살아온 이들이 증언하지 않았던가. 궁전 밖 하층민에 비하면 고귀한 이들은 얼마나 풍요롭게 살아가는지. 그러나 왕궁의 높으신 분들께는 그들을 위한 운명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은 다르지 않다.

 

타인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자는 같은 논리로 보다 강한 자에게 착취당한다. 노예를 부리는 주인은 더 높은 관리 앞에서, 관리는 더 높은 귀족과 왕족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세상에서, 우위를 점한 자는 아래에 놓인 자를 비웃는다. 우리 고귀한 존재는 너희 비천한 자들과 태생부터 다르다고. 그러나 착취와 수탈을 기반으로 한, 근본적인 부조리 위에 세워진 사회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주지 않던가. 고위 관료와 왕자, 마침내는 국왕마저도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며 <하그리아 왕국>은 강력히 설파한다. 이 작은 왕국은, 아무리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들, 대의와 명분으로 포장한들 벗어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는 각축장에 불과하다.

 

이들의 싸움은 패배로 향하는 길이다. 경쟁자를 밀어내고 지고의 자리에 오른 자,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한다. 모두 죽일 것인가, 죽임당할 것인가. 마르두크와 라지한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살레굽 제국의 여러 황자들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내 손에 쥔 것을 지키려면 내 형제들을 죽여야 하고, 그럼에도 종내 죽어서 내려오는 것이다. 살기 위해 시작했으나 죽지 않고서는 끝낼 수 없는, 패배가 필연적인 싸움이다.

 

작품의 도입부를 이끌어가는 세 왕자의 경쟁, 이는 샤흐라자드로부터 시작되었을까? 훌륭한 군주이나 비정한 어미인 샤라로부터?

폭력으로 권좌에 앉은 왕들, 그들을 추앙하는 궁인들. 이들이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선례는 하그리아 왕궁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왕자들과 왕자비, 재상과 총독은 싸워야 한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온존하고자 발톱을 세운다. 이들에게 진정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오직 왕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은, 하그리아 왕궁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게 샤흐라자드와 세 아들들은, 국왕과 세 왕자라는 역할로 치환된다. 그들 개개인의 꿈은, 감정은, 미래는, 왕국의 미래와 권력의 수호 아래 바스러진다.

영광과 권력을 좇다 끝내 개인이 지워지고 만다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짐승의 운명일 터이다. 정해진 세계에서 올바른 삶을 사는 것. 그리하여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운명이다.

 

왕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자, 샤흐라자드조차 짐승의 운명을 벗지 못했다.

하그리아의 샤흐라자드에겐 이중의 족쇄가 달려있다. 그는 영웅 루스탐의 혈통이자, 불새의 꿈을 꾸는 자다. 전자는 그를 숨돌릴 틈 없는 권력 다툼의 한복판에 밀어 넣었고, 후자는 일생동안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각각의 전쟁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샤흐라자드를 중심으로 한데 묶일 수밖에 없었다.

16살의 샤흐라자드는 전사가 되어 군대를 이끌었다. 사촌과 그의 자손을, 반기를 드는 자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왕좌에 올랐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와 형제자매가 겪어야만 했던 길을 피하기 위해.

정령들은 그의 힘이 되었으나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고, 오로지 즐거움을 얻고자 샤흐라자드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다. 정령들의 예언은 샤흐라자드의 미래를 고정시켰다. 샤흐라자드는 이스카를 사지로 내몰고, 이스카가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죽일 것이다. 이스카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왕좌를 지키고 의무를 다할 것이다. 뜻하는 대로 후계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강력한 군주는 결국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순종할 따름이었으니. 삶과 죽음조차도 그의 손에 온전히 쥐어지지 않았다. 하그리아의 그 누구도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 짐승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면, 원인은 이들을 가둔 세계에 있으리라. 거대하고 아름다우나, 정교하게 운명을 속박하는 하그리아 왕국. 이곳이야말로 황금새장이라 칭할 만하다. 이러한 인식은 작중 인물들에게서도 왕왕 발견된다. 일례로 아르샨의 독백이 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두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한다. 모두가 그림자 연극 속 종이인형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다. 자아가 없으나 실존하고, 개체이지만 하나의 덩어리 속에서 살아간다. 나 또한 종이인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46)

황금새장의 죄수는 죽어서야 문을 나설 수 있다. 황금새장의 배역이 모두 죽어나간 후에야 막이 내릴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운명을 반복하며 새장 속 삶에 만족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운명의 굴레를 끊어야 한다.

 

<하그리아 왕국>에는 누구보다 진취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여럿 있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는 영광은, 그림자 연극 무대 위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다. 상황을 철저히 분석하고 판도를 설계한들 이들의 노력은 정교한 족쇄를 한층 빛나게 만들 뿐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맞서고 좌절하고 물러나고 기다린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좌절하거나 분노하면서.

장기기사 파리사티스가 보기에 왕궁의 인물들은 자아도 없이 휘둘리는 자들이다. 원한다면 언제든 어떻게든 마음대로 쥐고 움직일 수 있다. 파리사티스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 넘치는, 그렇기에 기만적인 인물이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움직여야 할, 그에게 원하는 미래를 가져다 줄 기물에 불과하다.

강건왕 샤흐라자드는 강력한 권한을 쥐고 왕국의 번영을 바란다.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을 엄격히 통제하며, 왕국의 미래를 대비한다. 흔들림 없는 의지로 왕좌를 수호하며, 자신의 후계자에도 같은 것을 기대한다. 이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이라기보다, 명령을 수행할 충직한 종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3왕자 스피타만은 왕이 되려 한다. 필요하다면 형제들을, 어머니를 제거해서라도.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하그리아의 정세를 흔들어서라도.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며, 북부에서 총독을 보좌하며 그의 자격을 드러내었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기만 한다면, 누구보다 자신에게 어울릴 자리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은 운명의 굴레를 끊어낼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의 꿈은 하그리아의 존속을 전제로 한다. 무너지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이어질 영광을 바라면서 기회를 노린다. 이들의 꿈이 이루어진 미래는, 잠시간 행복을 안겨줄지 모르나 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름처럼 역사의 반복을 초래할 것이다. 운명을 벗어나는 미래는 요원하리라.

 

운명을 끊어낼 자, 예비된 영웅은 따로 있었으니. 새장 바깥을 꿈꾸는 자다.

이스카는 처음부터 왕위를 원하지 않았다. 샤흐라자드가 기꺼이 주고자 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누르자한의 곁에서 노래하는 순간이다.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신 누르자한. 길고 긴 하그리아의 역사 속에서 찰나의 순간 화려하게 빛나다 사라져버린 누르자한. 이스카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누르자한과 함께 살기만을 원했다.

이스카는 그저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그리아의 왕자로 태어났다는 것이, 왕위 계승권을 가졌다는 것이 그를 어떤 위험에 몰아넣었는지. 형제살해의 길고 무자비한 역사를 알았더라도 그 여파가 자신에게 닥쳐올 수 있음은 알지 못했다. 알면서도 외면했는지, 무지의 소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그는 처음부터 황금새장 너머를 원했다.

 

이스카에게 예비된 미래를, 단 한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이스카의 어머니이자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샤흐라자드이다.

샤흐라자드의 속내는 짐작하기 어렵다. 세 왕자를 사랑하는지, 똑같이 사랑하기에 후계자를 정하지 아니하는지. 왕자비의 죽음 이후로 새로이 드러난 사실들도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샤흐라자드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무위로 돌아가며, 가장 가까웠을 타흐마탄조차 샤흐라자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좌절한 자의 돌발적인 행동일까. 샤흐라자드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샤흐라자드의 속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유언장이 공개되는 3권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불새와 정령들이 꿈을 통해 나에게 뜻을 전하고 있도다.

날개가 달린 아름답고 거룩한 천사 정령 ‘이스라필’이 속삭이길, 악령을 무찌르는 영웅은 샤흐라자드의 아들인 ‘이스카’라고 하였다.

이스카가 사랑하는 연인을 이스카의 눈앞에서 죽게 만들어라. (48)

샤흐라자드의 안배는 이스카를 황금새장에 가두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 믿었기에, 훌륭한 후계자이자 영웅이 될 이스카에게도 자신과 같은 길을 강요했다. 고난과 상실이 이스카를 영웅으로 만들기를, 하그리아의 영광을 이어갈 군주로 만들기를 바라며. 박정하다고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샤흐라자드는 누구보다도 높이 올랐으며, 누구보다도 운명의 가혹함을 알았다. 이스카의 꿈이 부질없다 여겼을 것이다. 허황된 바람이 길어질수록 이스카의 고통 또한 길어지리라 확신했을지 모른다. 샤흐라자드는 이렇게 말했으니까.

이스카, 사랑하는 내 아들아, 우리는 절대로 운명에 저항하거나 벗어날 수 없단다. 네가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너는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될 거란다. 우리에게 삶이란 슬픔과 비탄뿐이고, 죽음조차 안식처가 될 수 없단다. 너는 이제 나처럼 생사의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한단다. (47)

그러나 이스카가 진정 영웅이 되려면, 그가 속했던 모든 것을 떠나야 하리라. 그가 걸어갈 미래는 샤흐라자드가 예비했던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터. 영웅은 결코 영광을 선사하는 자가 아닐 것이다. 영웅은 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의 해체를, 황금새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초원에서 시작된 역사는 다시 초원으로 향한다. 초원을 떠난 카락타의 후예는 이제 왕국을 벗어나고자 한다.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글을 읽고 있자면 이들 하나하나의 꿈이, 기대와 애정이 어떻게 비틀리는지를 목격할 수 있다. <하그리아 왕국>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러한 연유로, 연민과 슬픔을 느껴야 했다. 이들에게 다른 미래가 주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스카의 행보가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꿈꾸게 된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여정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기대를 담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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