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이슈가 있다. 바로 러브돌에 관한 것이다. 러브돌은 실제 여성의 모습을 한 남성용 자위기구로, 이를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걸로 꽤나 다양한 의견이 오르내렸다고 알고 있으며, 현재는 정식으로 러브돌 수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내 팔을 잘랐다’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무척이나 강렬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개인적으로는 마션의 도입부인 ‘나는 좆됐다(I’m pretty much fucked)’라는 문장 다음으로 강렬하게 인식한 도입부였다. 자기 팔을 자르는데 가만히 있는다고? 최소한의 자기 방어는 어디갔지?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글을 읽다가 깨달았다. 아, 팔을 잘린 주인공은 러브돌이구나. 그것도 인공지능을 탑재한. 그렇다면 무덤덤하게 팔이 잘리는 걸 바라보고 있는다든지, 리셋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의 남자친구이자 소유주라 할 수 있는 상대방은 주인공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논다. 내킬 땐 예뻐해주지만 수틀리면 신체를 마음대로 훼손한다. 현실에서 그러면 감옥에 갈 테니 사람에 해당되지 않는 안드로이드 로봇, 섹스봇에 자기의 뒤틀린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남자의 행동은 나에게 메스껍게 다가왔다. 어떻게 자라면 사람이 저렇게 비틀린 이상성욕을 가질 수 있는지 솔직히 이해되질 않았다. 사람에게 가까운 외형을 가진 물체 혹은 생물일수록 함부로 대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인간형 섹스봇에게 저렇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언젠간 그 성향이 사람에게 표출될수도 있지 않을까? 바보도 아니고 현실과 가상(?)은 당연히 구분할 줄 안다고 하는 말도 있긴 있던데,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쌓아온 폭력성이 과연 평생을 숨어있을 수 있을까? 섹스봇을 학대한다는 이야기는 약자에게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에 망설이지 않게 된다는 것인데, 그 폭력성이 평생 섹스봇을 대상으로만 표출된다고 믿기는 좀 어렵다. 물론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섹스봇, 아니, 사람형 안드로이드 로봇을 과연 사람처럼 존중하고 대해야 하는지, 그냥 평범한 로봇처럼 취급하면 되는지, 어디까지를 사람으로 볼 것인지 등 다양하고 무거운 주제에 대해 탐구해봐야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는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필요에 의해 자신을 잔인하게 갖고 놀던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확실하게 매장시켜버리고 나는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결말은 무척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주인공이 특이한 안드로이드였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안드로이드도 주인공과 똑같을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니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주인공처럼 이렇게 사고하는 섹스봇을 일반적인 로봇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섹스봇을 어떻게 대할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짧지만 결말이 강렬한 작품을 읽고 싶다면, 이것저것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찾고 있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