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포스터를 피할 수 있을까?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23년 10월, 조회 40

이 작가님의 단편소설 중 유독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 너무 재미있게 봐버려서, 리뷰도 했었다.

완벽한 작품이라 할 순 없지만, 풋풋함과 함께 반짝 반짝,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뭔가 엄청 무거운 느낌의 장편을 읽고 있었는데, 상대적인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적 감상인 작가님과의 인연?

어쩌다보니, 나는 이 작가님의 작품을 5개째 리뷰하고 있다. 브릿지에서 이전에 리뷰한 작품이 스무개 뿐인데, 다섯 작품이라면…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이렇게나 리뷰를 하게 됐던 건, 인연이라면 인연일테다.

거기엔 분명 전기한 작품 <그대와 나 사이 117광년>의 지분이 크다. 딱 한 작품으로도 작가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삶이 팍팍해 자주 들어올 수 없는 이 곳에서, 어쩌다 짬 날때 접속했을 때 만약 작가님의 새 작품과 저 파란 무지개빛 부엉이?가 떠있다면 반가울 것 같다. 보고 안 보고는 그 때 시간 여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니 마냥 좋은 말만 해줄 수가 없다. 그런 걸 원할 분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단편을, 중편 정도로 확장할까 염두에 계시다는 댓글을 보았다. 하여 세밀한 지적질 보다는 한 발 뒤에 물러나, 드러나는 아웃라인과 훅 들어오는 느낌 위주로 리뷰해 보려한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대화가 이어지는 첫 문장이다. 어쩌면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부터 바로 유추할 수 있던 어떤 내용이 전개되리라는 예상- 과연 어떻게 ‘다르게’ 풀어갈 것인가 기대해 보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려야 겠다. 그리 충족되지는 않았다. 아쉬웠다. 이건 필자의 사전 경험 때문일 수 있는데…

‘트로이 목마’는 사실 그 특유의 상징성 때문에 독창적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레트로바이러스’라는 RNA 유전자를 차용하고 있다. 실제 자연계 한 유전체의 작용기작이 트로이 목마처럼 그렇다는 사실은 흥미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이런 지식을 가지고 와서 소설에 접목해보려 한 시도는 매우 긍정할 만 하다.

하지만… 작가님께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니 아실지 모르겠으나 [임포스터]라는 영화가 있다.

임포스터라 하면 한때 유행했던 아래 게임

이미지출처: seowooji1님의 네이버블로그

<어몽어스>를 연상하실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저기 쟤 말고

 

얘다.

죄송하다. 다수의 분들이 이 리뷰 제목에서 저 게임의 마피아 캐릭, 임포스터를 떠올리시곤 클릭하셨을 것 같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낚이셨다. 잘못 들어왔다 싶으신 분들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누르셔도 좋겠다.

 

물론 영화에서나 게임에서나 그 의미와 ‘역할’은 같다할 수 있다.

어쨌든 영화는 2002년작이니, 무려 21년 전 영화다. 때문에 모르실 분들도 있으실 것 같긴 하지만 원작이 저 유명한 SF계의 거장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인 만큼, 못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필자 역시 개봉년도는 한참 지나 정말로 우연찮게 봤었는데, 그때 받았던 압도적인 충격은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

그러니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작품을 보기 시작하고 첫 문장을 보았을 때 트로이 목마 보다도 이 영화 임포스터가 훅 떠오른 것은 A를 입력하면 B가 출력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래밍의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주인공은 난 아니다! 라고 부인 하지만(거짓말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한게 된다는 것… 이것이 트로이 목마나 레트로바이러스로 대변되는 ‘구조’보다 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주인공의 서사에 더 근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숨어들어가 공격하려는 자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런’존재가 된 채 보내진 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임포스터(Impostor)의 의미는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사기꾼, 사칭자라고 한다.

통상적인 마피아 게임의 그 마피아를 생각하셔도 된다. 다만 게임이나 실제 의미에서는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알고’ 행하는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 본인이


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영화 임포스터에서는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저 CSI 뉴욕 시리즈의 맥 테일러 반장님 역으로 친숙한 게리 시나이즈 분으로, 특유의 시니컬한 얼굴로)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심지어 아내와 부부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곱씹어 보면

 

이 작품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의 주인공도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예요’ 라는 항변처럼, 철저히, 자신의 내부, 치명적인 레트로바이러스를 보유했음을 모른채로, 단지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작은 소망을 품고 뉴와이키라는 행성으로 이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뉴와이키가 파멸에 이른다(물론 그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고 그런 결과가 펼쳐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이 마저도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된다면?

나쁘지 않은 전개다. 충분히 괜찮은 ‘드라마’로 각색될 만하다.

다만 이 작품은 영화 임포스터와는 구조가 좀 다르다. 영화는 마지막 결말부에 여지껏 숨겨놓고 있던 그것을 한번에 터트리는 방식인 반면,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작품은 처음 도입부부터 ‘이 사실’을 까고 간다.

과연 이게 영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전 같은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나중에 놀랄 필요없고, 유치하게? 어설픈 반전같은거 안 넣고 미리 까니까 그 중간 서사에 집중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지만… 그러기에는 그 중간 서사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차분하고, 담담하다. 심지어 좀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으면 어땠을까싶은 부분들 (예를 들어 그 모든 사실이 드러난 후) 까지도 그렇다.

뭐가 문제일까? 이 작품의 재미, 매력을 더하려면 어떡해야할까?

필자의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잘못보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SF팬임을 자처할 사람들 중에는 저 영화 임포스터, 혹은 그 원작 소설을 떠올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임팩트가 강한 상대인 만큼 비교 당한다면, 위험하다. 상대적으로 노잼이라고,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당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아래 내용은 임포스터와의 비교가 아닌, 돌아보기에 가까울터다.

 

총평하자면,

SF팬들 중 임포스터를 알고 있을 독자들은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 유사한 플롯에 대해 그 작품을 떠올리고 연상됨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작가님이 시도하셨던 것처럼 구조의 변화도 훌륭한 대안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다만 그만큼 그 내부 서사를 매력적으로 채워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다.

예전 꽤 오래전 다른 작품 리뷰에, 등장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착하다는 느낌을 전했던 것 같다. 빨간 맛도 좀 더하시라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님을 (실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이미지로 말씀드리자면, 자연과학쪽 지식이 남다르며, 논리와 균형감각이 있고, 실제로 선하실 것 같다.

글은 본인을 투영하고 닮아간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예외도 존재할 거라는 건 안다) 때문에- 한결같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아니라면 가끔 일탈도 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특히 ‘이야기’에서 말이다). 파격이라 할 정도의 충격 혹은 카타르시스(그대와 나 사이 117광년에선 소소하지만 그런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극한의 두려움, 미움 혹은 질투 같은 감정들이 작가님의 작품들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싶다. (사실 이건 최근 내가 글을 쓸 때 고민하는 바이기도 하다. 물론 과함과 적절함의 균형 또한 잡아야 할테지만)

한 때 자극적인 소재, 개연성 파괴, 막장 오브 막장으로 유명세를 떨친 드라마 작가가 생각난다. 도대체 저 따위 이야기를 사람들은 왜 재미있어 할까 생각해 보았다.

똥개가 싸질러 놓은 배설물에서도 배움과 영감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찍어 먹어봐야 그건 줄 아냐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답습하라는 말이 아님은 아실 것이다. 인간, 독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흔듬, 액기스만 취하시라. 당연히 작가님 특유의 무수한 장점들은 지키면서, 아름다운 서사도 지키면서…!  작가님의 매콤한 맛도 기대해 본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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