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님의 단편소설 중 유독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 너무 재미있게 봐버려서, 리뷰도 했었다.
완벽한 작품이라 할 순 없지만, 풋풋함과 함께 반짝 반짝, 생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뭔가 엄청 무거운 느낌의 장편을 읽고 있었는데, 상대적인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적 감상인 작가님과의 인연?
어쩌다보니, 나는 이 작가님의 작품을 5개째 리뷰하고 있다. 브릿지에서 이전에 리뷰한 작품이 스무개 뿐인데, 다섯 작품이라면…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이렇게나 리뷰를 하게 됐던 건, 인연이라면 인연일테다.
거기엔 분명 전기한 작품 <그대와 나 사이 117광년>의 지분이 크다. 딱 한 작품으로도 작가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삶이 팍팍해 자주 들어올 수 없는 이 곳에서, 어쩌다 짬 날때 접속했을 때 만약 작가님의 새 작품과 저 파란 무지개빛 부엉이?가 떠있다면 반가울 것 같다. 보고 안 보고는 그 때 시간 여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니 마냥 좋은 말만 해줄 수가 없다. 그런 걸 원할 분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단편을, 중편 정도로 확장할까 염두에 계시다는 댓글을 보았다. 하여 세밀한 지적질 보다는 한 발 뒤에 물러나, 드러나는 아웃라인과 훅 들어오는 느낌 위주로 리뷰해 보려한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대화가 이어지는 첫 문장이다. 어쩌면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부터 바로 유추할 수 있던 어떤 내용이 전개되리라는 예상- 과연 어떻게 ‘다르게’ 풀어갈 것인가 기대해 보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려야 겠다. 그리 충족되지는 않았다. 아쉬웠다. 이건 필자의 사전 경험 때문일 수 있는데…
‘트로이 목마’는 사실 그 특유의 상징성 때문에 독창적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레트로바이러스’라는 RNA 유전자를 차용하고 있다. 실제 자연계 한 유전체의 작용기작이 트로이 목마처럼 그렇다는 사실은 흥미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이런 지식을 가지고 와서 소설에 접목해보려 한 시도는 매우 긍정할 만 하다.
하지만… 작가님께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니 아실지 모르겠으나 [임포스터]라는 영화가 있다.
임포스터라 하면 한때 유행했던 아래 게임
이미지출처: seowooji1님의 네이버블로그
<어몽어스>를 연상하실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저기 쟤 말고
얘다.
죄송하다. 다수의 분들이 이 리뷰 제목에서 저 게임의 마피아 캐릭, 임포스터를 떠올리시곤 클릭하셨을 것 같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낚이셨다. 잘못 들어왔다 싶으신 분들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누르셔도 좋겠다.
물론 영화에서나 게임에서나 그 의미와 ‘역할’은 같다할 수 있다.
어쨌든 영화는 2002년작이니, 무려 21년 전 영화다. 때문에 모르실 분들도 있으실 것 같긴 하지만 원작이 저 유명한 SF계의 거장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인 만큼, 못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필자 역시 개봉년도는 한참 지나 정말로 우연찮게 봤었는데, 그때 받았던 압도적인 충격은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
그러니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작품을 보기 시작하고 첫 문장을 보았을 때 트로이 목마 보다도 이 영화 임포스터가 훅 떠오른 것은 A를 입력하면 B가 출력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래밍의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주인공은 난 아니다! 라고 부인 하지만(거짓말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을 한게 된다는 것… 이것이 트로이 목마나 레트로바이러스로 대변되는 ‘구조’보다 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주인공의 서사에 더 근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숨어들어가 공격하려는 자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런’존재가 된 채 보내진 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임포스터(Impostor)의 의미는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사기꾼, 사칭자라고 한다.
통상적인 마피아 게임의 그 마피아를 생각하셔도 된다. 다만 게임이나 실제 의미에서는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알고’ 행하는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 본인이
실제 인물을 대체한 자폭 로봇
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영화 임포스터에서는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저 CSI 뉴욕 시리즈의 맥 테일러 반장님 역으로 친숙한 게리 시나이즈 분으로, 특유의 시니컬한 얼굴로)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심지어 아내와 부부관계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곱씹어 보면
아내 또한 치밀하게 대체된 자폭 로봇-이었으니 이 둘은 스스로 (둘 다!)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꿈도 못 꾼 채로 –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를 – 성관계를 통한 친밀함을 나누기까지 한다.
이 작품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의 주인공도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예요’ 라는 항변처럼, 철저히, 자신의 내부, 치명적인 레트로바이러스를 보유했음을 모른채로, 단지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작은 소망을 품고 뉴와이키라는 행성으로 이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뉴와이키가 파멸에 이른다(물론 그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고 그런 결과가 펼쳐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이 마저도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된다면?
나쁘지 않은 전개다. 충분히 괜찮은 ‘드라마’로 각색될 만하다.
다만 이 작품은 영화 임포스터와는 구조가 좀 다르다. 영화는 마지막 결말부에 여지껏 숨겨놓고 있던 그것을 한번에 터트리는 방식인 반면,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이 작품은 처음 도입부부터 ‘이 사실’을 까고 간다.
과연 이게 영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전 같은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나중에 놀랄 필요없고, 유치하게? 어설픈 반전같은거 안 넣고 미리 까니까 그 중간 서사에 집중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지만… 그러기에는 그 중간 서사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차분하고, 담담하다. 심지어 좀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으면 어땠을까싶은 부분들 (예를 들어 그 모든 사실이 드러난 후) 까지도 그렇다.
뭐가 문제일까? 이 작품의 재미, 매력을 더하려면 어떡해야할까?
필자의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잘못보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SF팬임을 자처할 사람들 중에는 저 영화 임포스터, 혹은 그 원작 소설을 떠올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임팩트가 강한 상대인 만큼 비교 당한다면, 위험하다. 상대적으로 노잼이라고,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당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아래 내용은 임포스터와의 비교가 아닌, 돌아보기에 가까울터다.
저 지구는 극단적인 기계우선 주의 동네인가? 아니다. 어찌보면 통상적으로 상상해보게되는 미래의, 지극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기계와 로봇들로 인해 인간들이 일자리를 잃고 설자리가 줄어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자동화 되어 가는 각종 설비들, 키오스크 같은 것들 부터 기타 등등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럼 뉴와이키는? 인간 중심?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만들고 인간 중심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중요한 등장인물인 영의 말을 미루어보면 자율주행 탈것도, 의체나 웨어러블 로봇 같은 것도 공공연히 상용화 되어 있는 사회다. 그 사회에서 얼마 만큼 기계를 배제하고 인간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무슨 말이냐면, 이게 대립적인 세계관이라 칭할 만큼 대비를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한 사회 내 다른 슬로건을 가진 두 정치세력, 정당의 대립정도이지 행성 단위로 ‘이렇게 다르다’ 구분할 정도의 색깔이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
사실은, 정말로 지구와 뉴와이키를 대립시키고 있는 것은 지구에는 없고 뉴와이키에는 있는 ‘자원’ 때문이다. 시아언니가 처음 뉴와이키행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인 아롬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고 예비 이주자들에게, 뉴와이키 정부가 이주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후 이야기의 내러티브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모호하게 겉가지처럼 언급되고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두 세계의 ‘다름’은 이야기를 만드는데 매우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념적 대립, 그로 인한 확고한 이념을 가진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을 등장, 갈등을 유발시킴으로써 그 다름을 명확하게 하든지, 특정 자원에 대한 두 세계의 욕망을 좀더 구체화하는 방향, 혹은 이념 싸움은 사실 핑계였다는 식의 서술과 상황 묘사 & 갈등이 추가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유일?하게 나쁘게? 나오는 등장인물을 꼽으라면 초반 샌드위치를 뺐으려 했던 거리의 소년 하나다. 최근 한 정치가가 40억을 해먹고도 애교를 말하기에 기가 차고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저 조무래기 악당이야 말로 악당 축에도 못들 애교 빌런이다.
시아언니- 처음엔 뭔가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배신이 예상됐지만 틀렸다. 끝까지 좋은 사람이며 파멸의 트리거 중 하나로 기능하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훈련소의 아저씨도. 물론 친절해야할 타이밍이며 나중에 밝혀진 바대로 의도적이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친절임에도 끝까지 그 저열함이나 악함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영? 말해 뭐해.
주인공이 뉴와이키 파멸에 일조한 트로이 목마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당신’들, 연맹 사람들 조차도- 아롬을 체포?하지만 그녀를 이용해 지구에 복수할 계획을 강제하지만, 처벌이나 다른 조치없이, 심지어 아롬의 요청에 호의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놀랐다.
착하다. 이럴 수가 있나? 약간 밈처럼 떠돈 유행어를 빌리자면
나만 쓰레기야?
내가 너무 세속적인 건가(사실이지만 크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 착각 맞을 걸?)
이게 뭐가 문제냐면, 밋밋해진다는 거다. 돋보임은 대비에서 나온다. 일부러라도 독자로 하여금 그 전개를 따라가며 정말 욕이 나오는 대상을 발견하게 하는 건(혹은 주인공이 악인인 것도 하나의 트렌드처럼 유행하기도 했다) 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주인공인 아롬은 어떤 캐릭터인가? 매력적인가?
(2와 연관지어 생각해 봄직하다)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만큼 주인공의 생각과 서사, 심리묘사가 주가 된다. 그런 작품의 주인공인 아롬은 기본적인 본성이 착한, 너무나도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개성적이냐 하면…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있었을 때 강단있고 동생을 지키려는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이후 장면들에서는 계속해서 걱정이 많고, 은근 소심한데, 외로움을 느끼며(이 감정이 극의 전반에 깔려 좀더 도드라졌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아주 조금- 이기적 한스푼정도 일뿐인 인물이다.
물론 좋았던 묘사도 있다.
동생의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다니. 고마워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관문이 막혀 동생을 찾으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사지가 뜯겨나간 느낌이었다. 그날은 뉴와이키에 온 지 1년 되는 날이었다. 나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혀 울었다. 머리를 들이박고 온몸을 구르며 울었다.
다음날부터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샘도 영혼도 빈껍데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채로 일을 나갔다. 꾸역꾸역. 쉬지 않고. 일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일 뿐이었다.
관문이 봉쇄된 후 나는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어린것에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던 나는 새벽빛이 밝아올 때쯤 그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무심하게 굴러가는 이 거대한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세상이 구르는 속도나 방향을 바꿀 힘은 전혀 없노라고. 그 구동력을 못 이겨 부서지거나 떨어져나가도 세상은 굴러가느라 바빠서 돌아볼 여유가 없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 식으로라도 나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살아가려면. 너무나 보잘것없고 실낱같기만 한 희망이지만, 혹시라도 관문이 다시 열리면, 동생을 다시 만나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공감과 쓸쓸함을 더하는 좋은 연출이었다. 주인공 아롬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이후의 감정선과 서사를 돋보이게 할 이러한 장면들은, 그러나 너무 부족하다 느낄 정도로 좋았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빠르게 타협?해버리는 아롬이라는 캐릭터의 작은 모순성을 드러내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자면, 저런 좋은 묘사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감정의 폭이 너무 일정하다는 것이다. 의도된 것일 수는 있지만 문제는, 독자들이 그것을 따라가는데 너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만 그랬을 수도 있다.)
더욱이 아롬의 말들은 대부분 생각이다. 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의 ‘사유’에 너무 많은 이야기 분량이 할예되어 있는 느낌이고 엄마에 대한 기억에서 부터 아주 많은 사건들의 단면 묘사에 ‘그랬을 것이다’류의 추측이 너무 많아서, 실증되지 않은 상상의 이야기라서 더더욱… 몽환적이기까지 하다면 이해가 되시려나. 기억조작도 이 이야기의 중요 소재의 하나로 활용되는 만큼 다소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멋대로, 나중에 이 모든 것이 생각, 혹은 꿈이라는 결말로 가는 것일까 추측하기도 했다. – 마치 이 모든 게 유리관 안에 갇힌(혹은 뇌만 추출된 채) – 그 세계가 파멸되고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모두 죽었다고 믿지만… 사실은 파멸 이전에 발견됨) ‘의식’은 시스템에 로딩된 채(그러나 외부와는 격리되어 연구 대상물이 된… ) 주인공이 그려지려나 했다. 과학자들의 바람과 별도로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생각을 거듭하고, 영과, 시아언니와 동생을 추억하고 있는 것으로… 그런 씁쓸한 결말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영과의 이야기는 좋았다. 약간의 오글거림을 웃으며 넘긴다면 이 작가님의 특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 심리묘사는 일견 흐뭇함을 준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한 세계의 파멸과 ‘영혼의 반려자’로 그려지던 영, 그리고 시아 언니 가족 모두의 죽음을 알게되는 아롬은 담담하다. 아니 아득해지고, 절망감을 묘사하지만 그 서술이 지나치게? 차분한 것만 같다. 이미 병으로 쇠약해진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아, 아프고 나니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런 것들은 아롬의 절망과 혼란을 묘사하면서도 몽환적으로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님의 안배가 아닐까 짐작한다. 일견 좋다 싶은 부분도 많았다.
다만 주인공인 아롬의 서사, 분위기에 대해 전반적인 공통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초반을 제외하고는, 아니 초반 조차도 약한 거침을 표현하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너무 순한맛 같다는 것이다.
이후 드라마틱한 전개없이 ‘레트로바이러스’의 숙주였던 아롬은 연맹의 조치에 담담히 임한다. 아니 거부할 힘이 없는 채로. 어쩌면 처음부터 이래저래 이용만 당한 아롬은 마지막엔 자신의 의지로 한 가지 계획을 실행하려한다.
지구의 당신들은 빈껍데기 속에 담긴 빈껍데기를 발견하겠지. 연맹의 계획을 실패로 만들어버린 내가 기특하다 할 테고. 오해하지 마라. 당신들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니다. 단지 내 동생을 위해서다. 무엇을 상실한지 모른 채로 상실감에 젖어 있을, 기계들 속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을 그 아이를 위해.
나름의 반항이었을 순 있으나, 감성을 자극하는 좋은 맺음지만… 다소 흔히 이야기 하는 ‘포텐’을 터트리기엔 (굳이 터트릴 의도는 없다실 수도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약하다는 느낌이다.
1) 일종의 ‘트리거’일 사건들의 연속- ‘광고’, 시아언니와의 재회, 시아언니가 뜬금없이 보낸 고산병 치료제, 그걸 마시는 일련의 과정은 꽤 중요한 장면들이고 나쁘지 않았는데… 다소 모호한 것은 아닌지? 주인공 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기저에 각인된 시퀸스라는 설정이겠지만 뭔가 아쉽다. 역시 꿈같이 몽롱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트리거에 좀더 힘을 실을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연출을 고민해 보셨으면 한다. 사실 이건 정말로 망고 느낌일 뿐이어서 대안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무책임하다 욕하셔도 할 수 없다. ㅌㅌㅌ~~~
2) 마지막, 바이러스의 숙주인 주인공을 다시 지구에 몰래? 침투시켜 지구인들에게 복수한다는 계획으로- 비어있는? 로봇 안에 아롬을 인간의 몸 그대로 헬멧씌우고 넣는다는 건… 좀 깬다. 진짜 안습…
아무리 저 착해빠진? 뉴와이키 연맹 수뇌부의 계획으로 묘사되는 거지만 – 평소 과학적 소양과 지성을 겸비하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아온 작가님께서 하신 설정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설퍼 보였다. 충격먹었다. 눈을 비볐다. (농담입니다 ㅋ)
복수를 위해 주인공의 신체를 통으로 넣어 생체 바이러스를 역으로 침투시킨다는 설정보다는 차라리 아롬의 뇌만 삽입한 로봇을 보낸다거나… 로봇과 네트워크, 산업 전체를 마비시키고 ‘프로그래밍적인 바이러스’를 확산, 폭파 따위도 일으킬 수 있는 트리거를 심는 쪽이 좀더 그럴듯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역시 특히 영화 등에 너무 많이 쓰여서 좀 식상하긴 하군. 패스~ ^^;
3)
하지만 근처 테이블은 해자라도 파 놓은 듯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우릴 오물 쳐다보듯이 하던 사람들이 코를 막고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해자’에 대한 지식을 미래, 길거리 부랑아 소녀 아롬이 알고 비유한다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부랑아가 되기 전 중세역사소설 매니아였다는 설정을 꾸역 넣을 게 아니라면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느낌이다. 또 해자는 건너오기 힘들도록 방어하는 쪽에서 구축하는 것이지 무언가를 싫어해 피할 대상이 아니다. 카페 라는 공간 속에서 연상하기에도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냄새를 피해 거리를 두는 상황의 비유로 적절한 구조물은 아니라 생각된다.
4) <제목>은… 필자도 자신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제목이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은 과연 매력적인, 제목만 보고도 오, 이거 한 번 봐볼까? 싶은 제목일까? 솔직히 약간의 내용 유추에만 기여할 뿐이지 그닥…? 이다.
목마에서 ‘트로이 목마’를 연상할 수 있고, ‘가르면’ 에서 무언가 ‘드러남’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무 말(馬)에 (생물의 것)일 뱃가죽은 어색한 결합이다. 다른 성질의 재료로, 누군가 발견하고 의심하기도 좋다. 그걸 의도하신 제목일까?
끝까지 온전히 감추어야 할 대상을 품은 목마의 배가 시기적으로 좀 더 일찍 ‘티’가 나서 그 계획이 실패하는 쪽으로 연출하셨다면…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어울렸을 제목 같다. 어쨌든 지금 내용으로선 딱이다 싶지도 않고 매력적인 제목이라기엔 좀 부정적이다.
개작을 염두에 두셨다면 다른 제목도 한번 고민해 보셨으면 한다.
총평하자면,
SF팬들 중 임포스터를 알고 있을 독자들은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 유사한 플롯에 대해 그 작품을 떠올리고 연상됨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작가님이 시도하셨던 것처럼 구조의 변화도 훌륭한 대안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다만 그만큼 그 내부 서사를 매력적으로 채워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다.
예전 꽤 오래전 다른 작품 리뷰에, 등장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착하다는 느낌을 전했던 것 같다. 빨간 맛도 좀 더하시라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님을 (실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이미지로 말씀드리자면, 자연과학쪽 지식이 남다르며, 논리와 균형감각이 있고, 실제로 선하실 것 같다.
글은 본인을 투영하고 닮아간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예외도 존재할 거라는 건 안다) 때문에- 한결같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아니라면 가끔 일탈도 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특히 ‘이야기’에서 말이다). 파격이라 할 정도의 충격 혹은 카타르시스(그대와 나 사이 117광년에선 소소하지만 그런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극한의 두려움, 미움 혹은 질투 같은 감정들이 작가님의 작품들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싶다. (사실 이건 최근 내가 글을 쓸 때 고민하는 바이기도 하다. 물론 과함과 적절함의 균형 또한 잡아야 할테지만)
한 때 자극적인 소재, 개연성 파괴, 막장 오브 막장으로 유명세를 떨친 드라마 작가가 생각난다. 도대체 저 따위 이야기를 사람들은 왜 재미있어 할까 생각해 보았다.
똥개가 싸질러 놓은 배설물에서도 배움과 영감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찍어 먹어봐야 그건 줄 아냐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답습하라는 말이 아님은 아실 것이다. 인간, 독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흔듬, 액기스만 취하시라. 당연히 작가님 특유의 무수한 장점들은 지키면서, 아름다운 서사도 지키면서…! 작가님의 매콤한 맛도 기대해 본다.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