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목에서부터 부정적인 기류를 느끼셨다면, 맞다. 최소한 필자는 이 리뷰를 [나이프 소녀]의 칭찬을 위해 쓰고 있지는 않다. 슬프다. 미움받을 각오 마저 했다.
처음엔, 작가님이 초보인줄 알았다. 읽어가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고, 다 읽고 난 후 이 작품이 거대 로봇, 메카물 애니메이션의 팬픽같다는 느낌까지 있었다. 한번에 명확하게 리뷰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봤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어라?
속도감있고 좋은 문장, 세련된 표현, 괜찮은 심리묘사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정독했다. 뭔가 혹시 이거?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또 결국 안되겠다 싶어서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찾아 본 것은
, 그리고 라는 작품이었다.뭐지?
다른 분의 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달랐다. [공동]은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고,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거야]는 이능을 다루고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보고나서 흐뭇하게 소소한 공감을 주는 청춘물 같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서사에도 상당한 수준을 보였다. 아아 모르겠다… 비교하여 [나이프 소녀]에서는 뭐가 문제일까를 명확하게 짚어내기 어려웠다.
보는 김에, 작가님이 브릿G에서 맨처음으로 올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인
도 보았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들과 가능성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서사와 묘사가 준수했다. 그런데, 이 후에 쓴 작품이 못해보인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답답한 마음에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작가님의 가장 최근작인
까지 보았다. 이성애자인 필자로서는 BL을 긍정하고 100% 공감하긴 어렵지만, 조금만 달리보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상실과 이별을 담담하게, 시리게, 이율배반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작가님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있어선 탁월하다 싶을 만큼 수준이 높다는 느낌이 있었다. 비평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와 문샤인의 한 문장에서 리뷰 팁을 얻었다.“이 부분은 좀 안 읽히네.”
그러니, 좀 마음의 부담을 덜고 나이프 소녀를 비평하고자 한다.
전기한 것 처럼, 이 작품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습작같은 느낌이 있다.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SF물이라지만, 정말로 작가님이 SF라는 세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쓰신 것인지 의심 마저 들었다. 마치 잘 모르는, 피상적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대리 경험한 설정들을 조합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왜 일까?
그 석연찮음을 다른 사례에서 조금 끌어와 풀어 보고자 한다.
최근 모 OTT 서비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드라마를 조금 보았다. 일제시대 독립군 소재, 마적단이 활동하고 있는 만주 어느 곳이 배경인 에피소드였다. 모래폭풍이 잦은 곳이라는 대화가 나오고 특정 이슈가 일어나는 장소인 한 마을에 들어선다. 앞선 모래폭풍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듯 주민 일부가 간판에 두껍게 쌓인 모래 먼지를 털어내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주인공은 다른 등장인물과 함께 어느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그것도 국수를. 아니 실제 국수를 후루룩 먹는 장면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국수가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시로 닥친다는 모래폭풍에 대해 이야기 한게 불과 수 분 전, 관련 묘사도 있었건만… 정말로 그런 기후 환경이 일상인 식당이라면 실외 테이블은 넌센스다. 하지만 버젓이 야외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고 거기엔 먼지 하나 없으며 국물요리가 나와 있다. 아니 그게 왜? 라고 물으시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혹은 그 당시 그 동네 사람들은 정말로 모래 알갱이가 씹히는 국물을 당연한 것처럼 먹었다, 그게 고증이라 한다면… 당혹스럽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이 딴지는 뻘소리가 될 건데, 그렇지 않으리라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며 어찌 하려던 말을 이어보려한다.
그 장면 외에도, 인물들 간의 사건에서도 읭? 하는 부분들이 몇 있었다.
연출자를 평하게 된다. 분명 기타 액션씬이라든지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 연출, 사건들의 전개는 뛰어날지 몰라도, ‘디테일’은 꽝이다 싶었다. 물론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함께 보고 있던 아내는 너무 재미있다며 보고 있었다. 그런 세부 설정들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제법 볼만한, 어쩌면 흥행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다만- 완성도 높은 작품인가 하면 절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로 부연하자면,
본디 양품과 명품을 구분하는 지점은 바로 디테일인 것이다.
필자는 명작이 갖는 조건 중 하나를 자연스러움이라 본다. 다른 말로 사소한 걸로 걸게 없는, 아니 그럴 생각조차 잊고 그냥 재미있게 보게되는 작품들이 그러하다. 그러한 작품들에도 아주 다수의 생략, 과장이 존재할 수 있다. 뭔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나중에 드러나게 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거나, 덧붙여 빠른 속도감을 위한 희생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지나침이 자연스럽고,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게 한다. 의아하지 않게 한다… 그것이 장면으로 치면 뛰어난 연출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의문이 들고 사소한 딴지가 생각난다면… 최소한 독자 한 사람에게서는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독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스펙트럼에 따라 역시 다른 평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일반론의 이야기이며 예외도 존재할 것이다.
다시 나이프 소녀로 돌아와 보자.
나이프 소녀는 SF를 표방하고 있다. 전쟁 기계라고 지칭하는 승용형 로봇이 주요 소재로 나온다. 콜로니까지. 거대 로봇 창작물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담 시리즈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외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품들이 워낙 많지만 일단 생략- 어쨌거나 위험하다. 거의 반강제로 비교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작은 SF가 아닌, ‘목구멍이 짭조름했다’는 ‘맛’에 대한 평가로 시작한다. 그러나 기분좋은 짭조름은 아니다. 좁은 방안과 벌레들이 불쾌한 느낌을 더한다. 소녀는 살충제를 쏜다. 명중률이 높아서, 그 불쾌함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만 주인공의 기침을 유발하는 약냄새를 남긴다. 일견 SF와는 유리되어 보이는 장면 때문에 안 읽힌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첫 장면은 배경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상징적인 부분인 것 같고, 오히려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많은 함의를 담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부터… 치밀한 개연성 보다는 다소 과장 혹은 빠른 전개를 위해 많은 것을 차치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1. 세계관: 우주를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기업과 착취. 인류역사에 공공연히 이루어져 온 조직과 그 행위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범위와 한계에 대한 것이다. 이윤추구만을 최고 선으로 삼는 ‘기업’들이 각 시대 신대륙이었던 인도와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자행했던 잔혹한 수탈과 범죄들은 ‘이야기’의 관점에서 보면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지만 거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기업들의 그 행위가 특정 세력 혹은 국가 정부의 비호 또는 조정 아래 이루어졌다는 거다. 돈은 권력이 된다. 권력을 가진, 가지려는 사람들은 돈을 지배, 간섭하려 든다. 단지 기업이라는 형태로만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하여 반드시 정치, 국가 단위의 개입은 필수가 되고, 실제로는 오히려 정치세력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기업이라 할 지라도 항상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물론 그렇기에 이렇게 얽히고 섥힌 그 방대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건담, 은하영웅전설 같은 이제는 고전으로 취급되는 작품들을 위시해 ‘공화국’과 ‘제국’의 대립을 그리는 작품들이 많다. 거기서 식상하니 외계 세력까지 삽입하는 작품들도 많고, 하여간 그렇다고 인간사, 인간의 세계에 국가단위를 생략하고 기업 간의 다툼이 우주를 양분? 한다든지 대리전? 다수 기업들의 경쟁 때문에 지구가 착취의 공간이 된다면(지구에 힘 없는 국가나 정부가 서술되기는 하는 것 같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하는 것이 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인 소녀의 허벅지에는 홀스터와 함께 권총이 있다. 평범하고 구김살 없이 자라길 바라는, 어른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지켜주거나 티없이 자라길 바랄 존재인 소녀는 없다. 지구 어느 세력 레지스탕스 내지는 반란군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행동하고 주인공과 독립적으로 만났고 다른 제약없이 그와의 시간을 보내고 거대 로봇인 전쟁 기계에까지 오른다. 그리고 이내 조종까지 해 낸다.
이 소설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오롯이 독자들이 짐작하거나 유추해야만 할 많은 배경에는 개연성과는 살짝 성격이 다른 다수의 불편함이 있다.
2. 전쟁 기계 그리고 AI
이 작품의 아주 중요한 소재는 단연 전쟁기계로 지칭되는 거대 로봇이다. 로봇이야 말로 SF를 대표하는- 혹자는 유아적 상상의 발로라 폄하하지만- 과학 기술의 총아다. 그런만큼 관련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대번 마음의 불편함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물론 2족보행 로봇의 경우(왠만한 빌딩 사이즈의)- 예로 들자면, 사실상 역학적으로, 마징가처럼 거대로봇의 머리에 조종석이 위치한다면 보행시 그 위치는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진자 운동 수준의 엄청난 흔들림이 존재할 것이므로 (조심조심 귀족소녀 처럼 걷는게 아닌 이상- 상상이 되시는가?)인간 조종사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이 된다고 한다. 가슴이나 배 정도 위치도 큰 차이가 없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유로 거대로봇은 비웃음을 살 수 밖에 없지만, 일단 그러한 과학적 사실은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가벼이 무시된다. 모두의 암묵적 동의가 있다 보아도 되겠다. 그런데 왜 과학을 들먹이냐고?
독자들이, 각종 미디어를 접하는 이들의 안목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많은 것들을 따지는 이들이 갈 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럼 그런 거대 로봇류를 비슷하게 내면 그냥 욕먹냐고? 그건 또 아니다. 말했다시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엉? 어쩌라고? 싶으시겠다. 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씀드리려 한다.
사람들이 묵시적으로 넘어가 주는 부분이 있는 반면, 그 부분의 설정을 보다 신경쓰고 더 그럴듯 하게 만들면, 보다 오오??!! 하게 된다는 말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따지자면 저 에반게리온, 특히 그 탑승 시스템- 엔트리 플러그 속에 LCL이라는 액체형 보호기제가 있어서 폐에 직접 산소를 공급해주고 외부충격으로부터 파일럿을 보호해 준다는 시스템(물론 이 역시 아직은 공상의 영역이지만)의 그럴듯함에 열광하는 것이나 여타 SF 영화 속 로봇들의 구조나 작동 방식이 공학과 역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작품의 디테일에 더욱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겠다. 관련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부정당하기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위와 같은 예외가 있고, 좀더 세세히 들여다 보면 그럴듯 해보이는 이면에 헛점들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상상아냐? 라며 대충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여기서 SF와 판타지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SF는 현재의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현재에는 없지만 언젠가, 미래에는 있을 것만 같은 어떤 기술을 상상해 묘사한다면, 판타지는 미래가 아닌 현재 혹은 과거의 ‘다른 세상’ 이야기다. 때문에 판타지는 상상에서 훨씬 자유롭다. 상대적으로 SF는 최소한 현재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더 발전할 미래 기술을 공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럴듯하게’ 그려야 한다. (실제로 과거 작품들의 상상이 현대에 실현된 예는 많다. 스마트폰 등)
최소한 창작자는 이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며 ‘그럴듯한 수준’ 에 대해서는 필자도 모른다. 시대와 사회, 독자층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SF라는 장르를 쓰려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릴 밖에.
나이프 소녀 속 전쟁 기계 묘사와 설정은 약간 애매하거나, 최소한 치밀하진 않은 것 같다.
조종석을 의미하는 콕핏을 예로 들어보자. ‘커다란 전쟁기계를 자기 몸처럼 다룰 때의 애인은 마치 장검을 뽑아 든 기사 같아 보이곤 했었다’는 서술이 있다. 이것만 보면 이 작품 속 거대 로봇인 전쟁 기계의 콕핏은 개방형이어야 한다. 조종석을 덮는 부분이 없거나 모의 대련에서 열어두고 했다는 설정이어야 하는데 우주에서 기동이 가능한 기체인 만큼 덮는 부분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되고 대련에서도 위험성을 감안하면 열어두고 한다는 것 역시 불가하다. 아니면 관람자들을 위해 조종석의 모습이 디스플레이되고 있었다라는 서술이 필요하지만- 없다. 마지막 장면 즈음 적의 거대 섬광에 직격당한 기체가 바다에 빠져들어갈 때, 우주 유영이 가능한 수준의 기체가 해당 부위의 파손을 전제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빠진 직후 바닷물이 가득 찬 상황처럼 묘사되는 건 콕핏에 대한 이해나 설정 부족이 아니라면 설명부족이다.
이 기체의 조종 기작 역시 SF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부분인데, 일단 나이프 소녀에서는 ‘링크’를 말한다. 최소한 고전적으로 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조종하는(아아 이건 정말이지 안습이지만 많은 이들이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 준다) 형식은 아니며, 영화 퍼시픽 림에서처럼 (사실 이건 태권V가 원조라 말하고 싶지만) 조종공간 안의 조종사가 취하는 모션을 그대로 따라하는- 조종사가 오른팔을 뻗으면 거대 로봇도 오른팔을 뻗는- 형식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탈것이 되는 생명체들과 ‘링크’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 SF속 거대 로봇에 차용하면서 동기화라는 개념 그리고 – 로봇은 생명체가 아니므로? – 이의 전달 내지는 조절을 담당하는 중간자인 AI를 등장시킨다.
사실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하고, 좋다고 생각된다. 주인공과 소녀의 소통, 감정 공유를 위한 장면 묘사에도 활용된다. 하지만 그 작동 기작, 시퀸스와 제어를 작중에 녹여 내려다 보니 다소 세밀하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소녀를 조종석에 앉히더라도 기체와 링크한 이후 과도하게 동기화 스코어를 올리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다고, 소년기 아이들 기준으로도 충분히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다고, 우주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다 배운다, 필수적이다, 로봇 스포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면서도, 꺼려지는 기분을 느낀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여기서 ‘버려진 동네인 지구’의 소녀도 그러할까 싶지만, 마치 그러한 설정을 위해 작가님이 애쓴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최소한 거대 로봇 수준은 아니더라도 2, 3m 짜리 강화 장갑 수준의 메카닉이 지구에도 보편화되어 있고, 이를 소녀가 그 전에 조종한 적이 있다, 이 역시 ‘링크’를 통해 조종하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 있었더라면… 싶다.
‘큰 문제가 없다’ 했는데 뒤에 가면 문제가 생긴다. 과도하게 동기화 스코어를 올리지만 않으면- 이라 했지만… 거듭 동기화에 대한 설정이 개운치 않음을 느낀다. 동기화율이 높을 때 위험하다는 강제설정?인데 오히려 독자는 아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겠구나, 뻔한 것으로 예견하게 된다. 오히려 건담 같은 스토리에서는 동기화와 비슷한 설정으로 뉴타입 혹은 초인류 같은 게 나오는데, 이때 동기화는 높을 수록 좋다. 더 원하는대로 기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상태 혹은 그러한 경지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특정 시스템을 조종자가 완벽히 제어하기 위한 조건으로 동기화를 말한다. 당연히 긍정적 개념이다. 물론 저쪽 설정이 그렇다고 이게 잘못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걸 나중의 부정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처럼 보이는게 문제라는 거다.
이때 원래 부조종자가 간섭할 수 있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이를 가로막는 건 바로 AI다. 그 순간 제어하려하면 메인 조종자인 소녀가 위험하므로 부조종자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 AI담론에서도 AI의 수준에 대한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 단순하게 나누자면 단지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거대 로봇의 동작을 명령 대로 수행되게 하기 위한 수준(자동항법장치도 따지고 보면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이랄 수 있다)이 있을 테지만, 이 작중 AI의 수준은 그 이상이다. 소녀는 인공지능의 지시에 따라 무기를 꺼내고, ‘적을 섬멸하라고, 이 전쟁 기계의 인공지능이 소녀에게 지시했다’ 라는 서술이 나온다. 이건 또 다른 인격이 개입한 상황처럼 느껴져 오히려 주인공과 소녀 둘에게 집중해야할 (최소한 독자 중 하나인 나는 그랬다)상황, 두 사람의 서사가 진행되는 긴박한 장면에 몰입이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저런 수준의 인공지능이 과연 저 상황에서 필요했을까? AI담론이 주요 주제가 아닐진데 말이다.
그 상황, 부조종자인 주인공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과거의 기억에서 기인한 소녀의 분노가 동기화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마치 판타지 스토리의 버서커, 광전사처럼 전쟁 기계를 (자신 그 자체가 되어) 기동했다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예시일 뿐이지만 인공지능 같은 추가적인 설정 없이도, 이로인한 과부하는 고스란히 소녀의 몸에 무리를 주고 주인공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3. 애인
작품 중에 자주 언급되는 애인은 주인공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존재지만 서술에 있어서 다소 어색한 장면들이 많았다. 처음 언급될 때는 저 전쟁기계를 가리키며 ‘내 애인이 타던거야.” 라고 한다. 소녀에게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이를 말하는 거니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인공인 화자는 ‘애인’이라는 표현을 3인칭이 아닌 독백에도, 혼자만의 생각에도 쓴다. ‘내 애인이 지구를 좋아했으니까.’ ‘가끔 애인은 나를 모의 대련에 참관인 신분으로 초대하곤 했다’, ‘애인은 마치 장검을 뽑아 든 기사 같아 보이곤 했었는데. 나는 늘 애인을 응원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내 애인의 기체가 살짝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라는 서술로 끝을 맺는다.
보통은 ‘그 사람’, ‘그’, ‘그녀’ 혹은 그 이의 ‘이름’을 쓰지 않을까?
오히려, 뒤이은 4번과 관련하여 작가님은 애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하게 하거나 감추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 의도셨다면 오히려 어색했고, 그다지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말씀드리고 싶다.
4. 백합: 굳이?
작품 태그를 보면 #거대로봇 #전쟁 #백합이라 되어 있다.
백합이라 지칭되는 장르 역시 몇 가지 분류가 존재하고 다소 편의적인 구분인 바, 작가님이 이 작품을 어느 수준의 여성간의 사랑이라 생각하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다. 일단 표면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동성애를 묘사하는 부분은 없다해도 무방하다. 이는 육체적인 관계 유무를 떠나 정신적인 유대에 가깝고, 주인공이 물에 빠진 소녀에게 숨을 불어 넣기 위해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이건 생명을 주는 행위이지 거기서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이 역시 넌센스다.
주인공은 소녀를 아낀다. 첫만남을 비롯해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지만 어쩌면 소녀에게서 애인을 겹쳐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죄의식, 호감 등이 중첩되어, 일본 애니에서 너무 흔하게 나오는- ‘지키고 싶은’ 대상 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좋다. 감정이 발전하는, 이후의 이야기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전개는 나쁘지 않다.
다만 필자는 이 이야기의 주요한 흐름을 이성애나 동성애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까?, 백합이라는 태그를 달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백합이라 하더라도 끝까지 너무 아름답고 순수한 반면 감정의 진폭은 약하다. 백합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읽어주길 바라셨는지 모르겠지만, (‘백합물’을 보고 싶어서 검색하는 독자가 과연 이 작품을 백합이라 할 지도 의문이다.)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그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긍정하는 것은 같지 않을까.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그리셨으면 한다. 백합이니 BL이니 구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러라고 하고, 장르의 구분이 아닌 그저 한 편의 이야기 속 서사와 관계를 보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감정, 어떠한 감성에 – 혹 의외의 것에서라도- 공감하거나 가슴이 움직인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았을까…?
갈음하며
필자는 작가님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잘못 입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전하려고 했던 주제가 주인공과 소녀의 이야기였다면 작가님이 ‘자신있어 하는 장르’ 같지는 않은(망고 필자의 생각이긴 하다) SF를 배경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꽤 인상깊게 보았던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거야]의 장르에 판타지와 함께 SF라고 표기해 놓으셔서 좀 의아하긴 했다. )
이 작품이, 오히려 중세 배경, 주인공이 드래곤 라이더인 판타지였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셨던 감성을 전달하는데 꽤 어울리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이 작품이 재미없었냐면 그렇지 않다. 다만 나쁜 습관으로, 이것저것 딴지 마인드가 작동하는 부분들이 보였을 뿐이다. 전기한 것처럼 그딴거 전혀 상관없고 재미있기만 하구만! 하고 내 등짝을 스매싱할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총평하자면, 정말로 나같은 사람들 조차 그딴 잡생각 들지 않게 술술, 내용에 집중해서 보게 하겠다 욕심이 생기셨으면 좋겠다. 사실 그건 장르 불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과는 전혀 별개로 나는 이 작품에서 정말로 개인적으로 마음이 동해져버린 구절이 있다. 정말로 개인적이다.
좀 더 함께 있어 주면 안 되냐고 말하고 싶었다.
맞다. 특별할게 없는 흔할 수 있는 대사지만 필자 개인의 기억이 건드려져 버렸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홀로 내 기억 속에 있는 이를 추억하며 소주 한 잔 기울여 보려한다. 죄송하다. 이상하게 끝내버리는 구만.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