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SF, 거대로봇이어야 했을까? 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나이프 소녀 (작가: 조은별,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23년 10월, 조회 7388

리뷰 제목에서부터 부정적인 기류를 느끼셨다면, 맞다. 최소한 필자는 이 리뷰를 [나이프 소녀]의 칭찬을 위해 쓰고 있지는 않다. 슬프다. 미움받을 각오 마저 했다.

처음엔, 작가님이 초보인줄 알았다. 읽어가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고, 다 읽고 난 후 이 작품이 거대 로봇, 메카물 애니메이션의 팬픽같다는 느낌까지 있었다. 한번에 명확하게 리뷰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봤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어라?

속도감있고 좋은 문장, 세련된 표현, 괜찮은 심리묘사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정독했다. 뭔가 혹시 이거?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또 결국 안되겠다 싶어서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찾아 본 것은

, 그리고 라는 작품이었다.

뭐지?

다른 분의 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달랐다. [공동]은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고,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거야]는 이능을 다루고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보고나서 흐뭇하게 소소한 공감을 주는 청춘물 같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서사에도 상당한 수준을 보였다. 아아 모르겠다… 비교하여 [나이프 소녀]에서는 뭐가 문제일까를 명확하게 짚어내기 어려웠다.

보는 김에, 작가님이 브릿G에서 맨처음으로 올린 것으로 보이는 작품인

도 보았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들과 가능성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서사와 묘사가 준수했다. 그런데, 이 후에 쓴 작품이 못해보인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작가님의 가장 최근작인

까지 보았다. 이성애자인 필자로서는 BL을 긍정하고 100% 공감하긴 어렵지만, 조금만 달리보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상실과 이별을 담담하게, 시리게, 이율배반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작가님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있어선 탁월하다 싶을 만큼 수준이 높다는 느낌이 있었다. 비평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와 문샤인의 한 문장에서 리뷰 팁을 얻었다.

“이 부분은 좀 안 읽히네.”

그러니, 좀 마음의 부담을 덜고 나이프 소녀를 비평하고자 한다.

 

전기한 것 처럼, 이 작품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습작같은 느낌이 있다.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SF물이라지만, 정말로 작가님이 SF라는 세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쓰신 것인지 의심 마저 들었다. 마치 잘 모르는, 피상적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대리 경험한 설정들을 조합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왜 일까?

그 석연찮음을 다른 사례에서 조금 끌어와 풀어 보고자 한다.

최근 모 OTT 서비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드라마를 조금 보았다. 일제시대 독립군 소재, 마적단이 활동하고 있는 만주 어느 곳이 배경인 에피소드였다. 모래폭풍이 잦은 곳이라는 대화가 나오고 특정 이슈가 일어나는 장소인 한 마을에 들어선다. 앞선 모래폭풍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듯 주민 일부가 간판에 두껍게 쌓인 모래 먼지를 털어내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데, 주인공은 다른 등장인물과 함께 어느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그것도 국수를. 아니 실제 국수를 후루룩 먹는 장면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국수가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시로 닥친다는 모래폭풍에 대해 이야기 한게 불과 수 분 전, 관련 묘사도 있었건만… 정말로 그런 기후 환경이 일상인 식당이라면 실외 테이블은 넌센스다. 하지만 버젓이 야외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고 거기엔 먼지 하나 없으며 국물요리가 나와 있다. 아니 그게 왜? 라고 물으시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혹은 그 당시 그 동네 사람들은 정말로 모래 알갱이가 씹히는 국물을 당연한 것처럼 먹었다, 그게 고증이라 한다면… 당혹스럽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이 딴지는 뻘소리가 될 건데, 그렇지 않으리라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며 어찌 하려던 말을 이어보려한다.

그 장면 외에도, 인물들 간의 사건에서도 읭? 하는 부분들이 몇 있었다.

연출자를 평하게 된다. 분명 기타 액션씬이라든지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 연출, 사건들의 전개는 뛰어날지 몰라도, ‘디테일’은 꽝이다 싶었다. 물론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함께 보고 있던 아내는 너무 재미있다며 보고 있었다. 그런 세부 설정들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제법 볼만한, 어쩌면 흥행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다만- 완성도 높은 작품인가 하면 절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로 부연하자면,

본디 양품과 명품을 구분하는 지점은 바로 디테일인 것이다.

필자는 명작이 갖는 조건 중 하나를 자연스러움이라 본다. 다른 말로 사소한 걸로 걸게 없는, 아니 그럴 생각조차 잊고 그냥 재미있게 보게되는 작품들이 그러하다. 그러한 작품들에도 아주 다수의 생략, 과장이 존재할 수 있다. 뭔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나중에 드러나게 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거나, 덧붙여 빠른 속도감을 위한 희생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지나침이 자연스럽고,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게 한다. 의아하지 않게 한다… 그것이 장면으로 치면 뛰어난 연출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의문이 들고 사소한 딴지가 생각난다면… 최소한 독자 한 사람에게서는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독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스펙트럼에 따라 역시 다른 평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일반론의 이야기이며 예외도 존재할 것이다.

 

다시 나이프 소녀로 돌아와 보자.

나이프 소녀는 SF를 표방하고 있다. 전쟁 기계라고 지칭하는 승용형 로봇이 주요 소재로 나온다. 콜로니까지. 거대 로봇 창작물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담 시리즈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외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품들이 워낙 많지만 일단 생략- 어쨌거나 위험하다. 거의 반강제로 비교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작은 SF가 아닌, ‘목구멍이 짭조름했다’는 ‘맛’에 대한 평가로 시작한다. 그러나 기분좋은 짭조름은 아니다. 좁은 방안과 벌레들이 불쾌한 느낌을 더한다. 소녀는 살충제를 쏜다. 명중률이 높아서, 그 불쾌함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만 주인공의 기침을 유발하는 약냄새를 남긴다. 일견 SF와는 유리되어 보이는 장면 때문에 안 읽힌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첫 장면은 배경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상징적인 부분인 것 같고, 오히려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많은 함의를 담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부터… 치밀한 개연성 보다는 다소 과장 혹은 빠른 전개를 위해 많은 것을 차치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갈음하며
필자는 작가님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잘못 입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전하려고 했던 주제가 주인공과 소녀의 이야기였다면 작가님이 ‘자신있어 하는 장르’ 같지는 않은(망고 필자의 생각이긴 하다) SF를 배경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꽤 인상깊게 보았던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거야]의 장르에 판타지와 함께 SF라고 표기해 놓으셔서 좀 의아하긴 했다. )

이 작품이, 오히려 중세 배경, 주인공이 드래곤 라이더인 판타지였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셨던 감성을 전달하는데 꽤 어울리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이 작품이 재미없었냐면 그렇지 않다. 다만 나쁜 습관으로, 이것저것 딴지 마인드가 작동하는 부분들이 보였을 뿐이다. 전기한 것처럼 그딴거 전혀 상관없고 재미있기만 하구만! 하고 내 등짝을 스매싱할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총평하자면, 정말로 나같은 사람들 조차 그딴 잡생각 들지 않게 술술, 내용에 집중해서 보게 하겠다 욕심이 생기셨으면 좋겠다. 사실 그건 장르 불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과는 전혀 별개로 나는 이 작품에서 정말로 개인적으로 마음이 동해져버린 구절이 있다. 정말로 개인적이다.

좀 더 함께 있어 주면 안 되냐고 말하고 싶었다.

맞다. 특별할게 없는 흔할 수 있는 대사지만 필자 개인의 기억이 건드려져 버렸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홀로 내 기억 속에 있는 이를 추억하며 소주 한 잔 기울여 보려한다. 죄송하다. 이상하게 끝내버리는 구만.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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