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음에도 남아야 하는 단상

대상작품: 간병인 박영철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일월명, 23년 9월, 조회 55

엽편이라는 형식과 음울한 내용에 어울리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서술이 매력적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울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 서술자는 건조한 시선을 지켜야 하죠. 우는 건 독자의 역할입니다.

고로 독자는 자신이 왜 이 이야기를 위해 울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작품의 비극이, 즐거운 순간이 모두 지나가고 잊힌 뒤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 삶 때문에 일어난 거라 느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짜장면 집에서 정겹고 구슬픈 가난의 시기를 지나고, 끼니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상대의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수 시간을 들여 곰국을 끓였지만 그것들 모두 가장 먹기 좋은 시기가 지나면 쉬고, 엎어지고, 무너져버리죠. 더는 어떤 아름다움도 찾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의 무게는 얼마나 막중할까요. 또 그 와중에 얼마 남지 않은 사랑마저 손아귀 속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걸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 주는 좌절감은 얼마나 깊을까요.

그렇기에 작품의 제목은 ‘질병으로 인한 생활고 끝에 친족 살해 후, 자살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시놉시스를 부정합니다. 두 등장인물의 관계를 지탱해주던 모든 것들은 시간에 휩쓸려 사라진 뒤 이니까요. 가족이라는 온기 어린 울타리가 무너진 자리에, 치매 노인의 간병인이라는 삭막한 역할로만 남아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어쩌면 생각보다 보편적인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도 빛나고 따뜻한 순간은 한 때 뿐이며, 그것들이 모두 지난 후에도 겨울 같은 삶의 시간은 이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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