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인데 웃음이 나네요, 귀여운 호러도 있습니다! 감상

대상작품: 적월: 일곱번째 달 (작가: 짜리몽땅연필,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9월, 조회 20

달의 영혼을 불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 답은 단언컨대 “YES”가 된다.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해도 살리고 싶은 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그 대가’라는 걸 모르고 의식에 참여하는 케이스에 해당하겠다. 이 소설 <적월: 일곱번째 달>의 주인공은 그 ‘대가’라는 게 뭔지 모른 채로 놀이처럼 의식에 참여했다. 단순히, 남자친구 등남이를 잃은 친구 사랑이를 위로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이 소설 <적월: 일곱번째 달>은 설정부터 섬뜩하다.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일곱번째의 달, 달의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붉은 보름달’을 불러낼 수만 있다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이야기에 홀려 의식은 시작된다. 허나 이들이 간과한 것은 죽은 자를 살릴 정도의 의식에는 응당 따르는 대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문을 읊으며 의식에 빠져들 즈음 주인공은 기묘한 눈빛을 목격한다. 의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참가하겠다며 나선 ‘낯선’ 남자아이다. 정체도 모른 채 참여시킨 탓일까, 주문을 외던 중에 눈을 마주친 순간 주인공은 느꼈다. 이거 무언가 잘못되었다, 라고.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그 남자아이의 눈은 그 순간 ‘붉게’ 빛났다. 기분 나쁘게 비틀려 올라간 입꼬리가 기묘한 감각을 주었지만 주문은 멈추질 못하고, 일순간에 주인공은 사막 한 가운데로 이동된다. 분명 교실에 있었는데 기묘한 공간으로 이동된 이후 주인공은 이 의식을 주최한 사랑이와 그 남자친구 등남이가 얼굴을 잃은 채, 시리도록 붉은 덩어리로 남은 얼굴을 한 채 다가오는 것을 목도한다. 얼굴 전체가 ‘붉은 눈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환상과 기이한 기묘의 경계에 선 풍경을 이 소설은 담담하게 잘 묘사해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섬뜩한 ‘기미’만으로 남겨두지 않고 한번의 비틀림, 반전이 그 뒤편에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분량이 짧은 편이라 ‘놀랄 만큼’의 반전은 아니지만, 적당히 귀엽고 희미한 미소를 띠기엔 충분하다. 요즈음 나는 소설을 읽거나 쓸 때 무언가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때가 많은 거 같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간의 이면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보여줘야 하고, 읽는 이가 ‘뭐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종류의 것 말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야기’란 그런 게 아니다. 재밌고 조금은 색다르고, 두려워하다가 어라? 싶거나, 웃거나 울다가 무언가 반짝이는 걸 발견하기만 해도 되는 거였다. 물론, 그 ‘반짝임’ 역시 읽는 이에 따라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거라서 작가는 쓰는 동안에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소설의 엔딩부를 보며 픽, 웃었다. 호러 소설을 읽으며 웃을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이들은 어쩌면 ‘웃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귀여워서였다. 어쩐지 너무도 옛날처럼 느껴지는 중학교 때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스포가 될까봐 아끼고 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어보노라면 작가도 의도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공포라는 건 어쩌면 행복이나 기쁨, 슬픔과 같이 찰나의 것인지도 모른다. 섬뜩! 하게 휘몰아치는 감각에 휩싸였다 한들, 그 감각만으로 끝이 나진 않는다. 유령의 집에서 ‘으아아악’ 소리지르면서 달렸을 때 검은 천으로 뒤덮인 출구가 나타나는 것처럼 이야기는 끝이 나게 마련이고, 그 끝에는 ‘어떠한 마음’ 혹은 ‘유머’ 또는 ‘감정’이나 ‘감성’이라도 남아야 한다. 이 소설은 그런 것이 남는 소설이었다. 가볍게 읽기 좋았고, 나 역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는 거 같아 더욱 흥미로웠다. 이 리뷰어가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계속 해대는지 궁금하다면 작품을 읽어보도록. 지하철 안에서 흔들거리는 동안에 스윽 읽어봐도, 밥 먹다가 쭉 읽어봐도 괜찮을 만큼 가벼운 분량이다. 내용은 분량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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