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바스락거리는 소리. 반투명하게 안이 비쳐보이는 폴리에스테르 재질. 연하게 내린 커피에 우유 한 컵을 섞은 듯한 베이지색. 내가 어렸을 적 갖고 있던 바람막이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님이랑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던 중,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가 휴게소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았던 적이 있었다. 한창 몸을 움직이며 놀다보니 덥길래 바람막이를 벗어 놀이터 미끄럼틀에 걸쳐두었었는데, 그 이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바람막이에 관한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야 바람막이를 휴게소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허탈감과 실망감이란.
나는 물건을 웬만하면 거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다. 깜빡하고 두고 왔더라도 금방 생각이 나 다시 가지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 바람막이만큼은 이상하게도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물건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인 궁니이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린 ‘것’들을 먹어치우는 존재.
“저거는 니 짐작맹키로 요괴나 귓것같은 것은 아녀.”
“것두 아녀, 저건 기양 아무것도 아녀. 니가 말했듯이 누굴 해치지도 않고, 달리 지가 뭔 일을 일으키지도 않어. 그냥 거기 있을 뿐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하지만 정체모를 무언가가 매일매일, 1년 365일 1분 1초도 빠짐없이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신경쓰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살 수 있을까.
“단지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안되야. 한순간이라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믄, 그제사 슬금슬금 나와서 줏어먹제. 아주 잠깐이라도 니가 아예 머리속에서 그것을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 정말 있었는 줄도 모르게, 그렇게 잃어버리믄 저 놈 먹이가 되는 거여.”
노파는 이렇게 일러주며 그냥 잊고 없는 듯 살라고 정한에게 이야기하지만, 저 말을 들은 이상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일이다. 궁니를 볼 때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을 테니까. 나는 성격상 노파의 말처럼 모른 척, 없는 척 궁니를 무시하고 살 수 없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저것이 먹이로 삼은 내 물건이 무엇인지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쓸 테니까.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노파의 경고대로 궁니의 먹이가 되지 싶다. 궁니한테 삼켜지면서 경고를 들을걸 하고 후회할 미래(?)가 안봐도 눈에 선하다.
정한도 나와 비슷한 성격인가보다. 노파의 경고를 무시하고 내가 할 법한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결말까지 읽으면 짧지만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라 짜릿함마저 느껴진다. 평소 기이담 종류를 좋아하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지도 못한 물건 하나를 더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슬프다. 아마 나한테도 궁니가 붙어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