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투박한 자기고백 비평

대상작품: 사귀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7월, 조회 32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교 1등이라 해도 시험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나는 가지고 있)다. 작중 화자 역시 시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말고사의 압박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 시간 내내 시험 고민을 하며 괴로워한다. 공부하기가 싫어서 학교를 불태울 생각까지 할 정도다. 나 역시 북한 미사일에 학교가 무너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 까닭에 화자의 고통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건은 있되 서사는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령 어머니와의 싸움이 그렇다. 작품 초중반에서 어머니와의 싸움에 따른 화자의 감정은 큰 비중을 갖는다. 그렇지만 크게 싸웠다는 이야기만 이야기만 있을 뿐 디테일이 없다.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화자가 싸움 이후에 빡쳐하는 것만 보고 있노라면 조금 답답하다. 화자의 감정고백이 지나치게 스트레이트하고 그 감정선의 맥락이 몹시 과격하여 독자가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다.

비유가 서로다른 두 개념 사이에서 하는 제자리 멀리뛰기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에서 가장 멀리 뛸 수 있는 작가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픈 이과생 님은 멀리뛰는 방법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뛰는 사람 같이 보인다.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고자 하는 대목이 있으나, 적어도 내게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비유로 읽혔기 때문이다. 탈영병이나 가래 뱉듯 같은 비유가 그러했다. 비유 역시 마땅한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앞뒤 맥락 없이 너무 과격하게 비유를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뜬금없이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그러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스토리가 그쪽으로 흘러가니 독자입장에서는 흠칫 놀랐다.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작문이론 중에는 체호프의 총이라는 것이 있다. 총을 꺼내두었으면 반드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역으로 하면(나는 이걸 A의 방아쇠라고 부르는데) 총을 쏠 생각이라면 미리 총을 꺼내두라는 것이다. 내면의 사귀가 속삭이는 장면이 뒤에 나올 거였다면, 그런 예고 비스무리한 것을 앞부분에 미리 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독자에게 친절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작가 본인의 문체가 고정되지 않고 마구 흔들리는 것도 문제다. 기본적으로 내가 느끼기에 작품의 화자는 18살 언저리의 여고생인 거 같았다. 작품의 문체(혹은 말투)도 기본적으로 18세 여고생의 가벼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도중에 이상한 말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런데 왜 잠은 오지를 아니하는가 따위의 묘사가 그러했다. 일관된 문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대체로 문제가 된다.

나와 사귀가 대화하는 장면은 불쾌했다. 단순히 욕설이 나왔기 때문은 아니다. 앞부분에서 독자가 화자의 목소리에 공감하지 못한 상태인데, 화자가 미쳐 날뛰면서 자기의 분노를 토로하는 것은 ‘얘(화자) 왜 이래?’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또한 라틴어로 미카엘 기도문(맞나?) 등을 읊는 것도 이상했다.

예전에 이 기도문을 보고서 나도 ‘이걸 작품 내에서 사용하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은 것은 기도문이 쓸데없이 길었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문장을 길게 사용하는 것은 독자의 흥미를 확 떨어트리는 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라틴어로 그렇게 적어두면, 해석도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차라리 국어 해석본 만을 사용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라틴어를 이렇게 길게 달아놓는 것은 득없이 실만 있어보인다.

 

뭔가 악담만 죽 늘어놓은 것 같다. 이 작품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고백의 방식은 투박하였으나, 자기고백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느꼈다. 넘치는 진심을 매끈하게 다루는 방식을 연마하신다면, 이 작품은 한참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 일단 작품의 분량이 이정도로 끝나서는 안 될 볼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디테일을 추가해나가면서 분량을 2만자 이상으로 잡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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