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2023년 8월 19일 연재분인 <50-11 : 타흐마탄>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3 : 할리메>부터 시작되는 3권 이후 분량에 대한 비평과 결말 예상 내용에 대해서는 스포일러 표기를 해두었습니다.
0. 들어가며
<하그리아 왕국>은 제가 6월 말에 우연히 읽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프롤로그의 두 인물만 묘사되고 있는데 이야기가 흥미롭고 심상치 않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면서 연속적인 충격에 빠졌고, 제가 독자로서 좋아하는 것과 작가로서 추구하는 것들이 <하그리아 왕국>에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럽기도 했고, 저의 집필 스타일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리뷰 의뢰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난네코 작가님께 올리며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여인들
<하그리아 왕국>에는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여왕 샤흐라자드는 말할 것도 없고, 제1왕자비 파리사티스와 제2왕자비 누르자한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견제하며 남편을 왕으로 올리려는 자들입니다. 미르셀라 역시 자신의 약혼자이자 남편이 될 제3왕자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최소한 후계자로는 올릴 수 없을지 고민하는 귀여운 인물입니다. 샤흐라자드가 여왕이기 전부터 샤라를 지키고 모셔온 시녀장 할리메 역시 무척이나 멋진 인물입니다. 달리아, 루키예, 아마리는 물밑에서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그것이 꽤 큰 파급력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멋지기만 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매력만큼이나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샤흐라자드는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제2왕자인 이스카를 대놓고 편애하긴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점찍어둔 후계자이기 때문에 그러하지, 모자간의 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쩌면 샤흐라자드는 본인의 진짜 의사와 상관없이 이스카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억지로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루스탐의 재림이니 하는 수식언도 어쩌면 억지로 붙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제1왕자비 파리사티스는 어떤가요? 야망과 프라이드가 높은 파리사티스는 굉장히 차갑고 무서운 여인입니다. 장기기사로 대표되는 그 지략과 행동력은 시아버지이자 왕국의 재상인 아이라만, 오빠 발라스, 그리고 하그리아의 법무대신과 내무대신인 부모님에게서 나옵니다. 파리사티스는 무엇이든 이용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상대에게 기물 희생을 강요하는 것 또한 장기의 기술이니까요.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샤흐라자드에게 본인 또한 기물로 이용당합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장면이 이사야와의 장기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2왕자비 누르자한은 이스카를 자유롭게 해주는 사람이지만, 필연적으로 꺾여야 하는 인물입니다. 파리사티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자, 샤흐라자드는 이스카를 왕으로 세우고자 누르자한을 꺾으려 듭니다. 누르자한 역시 사람들을 이용하여 이를 견제하고자 하지만, 파리사티스처럼 고위관료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하는 궁인들이 고작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누르자한에게는 이스카 외에는 자신을 보호할 방패가 달리 없습니다. 이스카마저도 샤흐라자드를 버텨낼 수 없고요.
제3왕자의 약혼자인 미르셀라는 다소 유약하고 풋풋한 인상을 줍니다. 누르자한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요. 샤흐라자드의 무정함이나 파리사티스의 지나친 야망 같은 부정적인 면이라고 할 것이 보이지 않지만, 동시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미르셀라의 결함이 나타납니다. 미르셀라는 자기증명을 못 한 상태입니다. 자신이 제3왕자의 반려로서 적절한 인물인지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미르셀라를 다그치기만 합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왕국의 상황은 급격하고 험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미르셀라는 거의 멈춰 선 것이나 다름없는데 시간이 흘러가며 미르셀라를 이리저리 흔들어놓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리메 이야기를 해보죠. 할리메는 샤흐라자드를 아주 어릴 적부터 지키고 보필한 사람이고, 이제는 여왕 아래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지닌 여 중 하나입니다. 본래 시녀장이라는 직위는 그렇습니다. 사실상 할리메는, 샤흐라자드가 겪은 것 중에 불새의 꿈을 꾸고 정령과 동화되는 것 외에는 모든 걸 같이 겪은 사이입니다. 그리고 그런 할리메의 결함은 불새의 꿈과 정령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샤흐라자드가 정령과 함께하며 어떤 식으로 고통을 받는지, 두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으나, 사람은 본래 자기가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법입니다. 할리메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인간으로서의 일뿐이라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할리메의 결함이자 한계입니다.
2. 남자들
<하그리아 왕국>의 남자들은 여인들보다 전체적으로 좀 느긋한 편에 속합니다. 물론 아닌 인물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성실하고 성격 좋은 제1왕자 아르샨,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자유를 꿈꾸는 제2왕자 이스카, 형들과 달리 샤흐라자드처럼 야욕 넘치는 제3왕자 스피타만. 이들 각각의 아버지인 재상 아이라만, 근위대장 타흐마탄, 북부 속령 총독 소흐랍은 아들들과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제1왕자비 파리사티스의 오빠이자 왕궁시종장인 발라스, 명목상 샤흐라자드의 국서인 셀림은 전체적으로 유쾌한 인상의 소유자입니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세 인물, 왕자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이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인물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왕의 재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장점보다는 결함이 더 큽니다. 아니, 셋이 합쳐져야 오롯이 발동하는 자질들을 나눠 가지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갖지 못했습니다.
아르샨의 자질은 성품입니다. 선량하고, 성실합니다.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서, 아버지가 다른 두 형제도 아낍니다. 왕위에 대한 욕심은 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내인 파리사티스가 원한다면 왕이 되고자 노력할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르샨에게는 다른 자질이 없습니다. 왕의 운명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야욕도 강한 편이 아닙니다. 아르샨은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어머니의 편애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보기도 했습니다.
이스카의 자질은 운명입니다. 루스탐의 재림, 불새의 꿈을 꾸는 자. 그리고 언젠가 세상을 구할 영웅. 그것들을 제치더라도 이스카는 타고난 기억력과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카리스마로 군중을 휘어잡고, 안으로는 정무를 잘 살필 수 있는 자. 그러한 능력들을 모조리 타고났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카에게는 다른 자질이 없습니다. 야욕은 아르샨보다도 없으며, 성품 또한 왕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샤흐라자드처럼 차라리 참주의 기질을 가진 성품이었다면 모를까. 이스카는 왕위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기를 바라는 성품입니다. 자신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거북하기만 합니다.
스피타만의 자질은 야욕입니다. 왕위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인물이며, 그래서 샤흐라자드와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고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속령에 덩그러니 놓였으나,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스피타만에게는 다른 자질이 없습니다. 샤흐라자드는 그에게 왕의 운명을 내려줄 생각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품도 다소 위험해 보입니다. 특히 미르셀라의 ‘비밀 친구’인 척 하며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태도는 사춘기 소년의 치기 어린 모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다소 싸한 부분이 많습니다.
3. 반복되는 이름, 변주되는 내력
<하그리아 왕국>에는 많은 인물이 있고, 작중 역사 속에만 있는 인물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인물들은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내력을 살펴보면 꽤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변주라고 하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아르샨”은 하그리아의 2대 왕인 자비왕과 10대 왕인 선량왕, 그리고 샤흐라자드의 제1왕자의 이름입니다. 자비왕 아르샨은 선량하고 자비로운 성격이었으며, 자신의 딸들을 형의 아들들에게 시집보내 가족 간의 정을 더 단단히 하였습니다. 선량왕 아르샨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요. 아르샨의 자식들이 9대 왕이자 어머니인 현명왕 미흐리마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아르샨의 노호와 거부에 미흐리마가 충격을 받아 죽었다는 게 걸립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호칭을 보면 선량왕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성품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제1왕자 아르샨 역시 가족을 사랑하고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성품을 보입니다. 샤흐라자드가 제1왕자비 파리사티스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도 변주의 일부로 볼 수 있고요.
“루스탐”은 하그리아의 초대 왕, 샤흐라자드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초대 왕 루스탐은 초원에서 문명 세계로 들어온 인물이며, 영웅 루스탐은 아카샤족의 대왕 카라우를 격파하고 하그리아 왕국의 전성기에 일조한 자입니다. 한편, 영웅 루스탐은 형제이자 12대 왕인 폭정왕 라지한에 의해 일가가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스카는 비록 “루스탐”의 이름을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영웅 루스탐의 재림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카가 3권 이후로 보이는 행보와도 일정 부분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스카는 “루스탐” 못지않게 아카샤족의 대왕 카라우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소흐랍”도 역사 속 인물과 현대의 인물이 있지요. 하그리아 왕국의 8대 왕인 미남왕과 샤흐라자드의 제3왕자 스피타만의 아버지가 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남왕 소흐랍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며, 하그리아의 국고를 거덜 낸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리고 현명왕 미흐리마에게 축출되었습니다. 스피타만의 아버지 소흐랍은 천한 남창 출신이지만, 샤흐라자드의 총애를 받아 제3왕자를 낳았고 북부 총독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한편 미남왕 소흐랍의 말로는 왕자로서의 스피타만의 입지를 어느 정도 떠올리게 합니다. 소흐랍은 애당초 왕위계승자로 여겨지지 않았다가 왕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미흐리마에게 축출되었을 때 그 혈통 모두 숙청되어 단절되었습니다. 이는 애당초 왕위 계승의 기회를 얻지 못한 스피타만이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는지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이름에는 그 자체로 힘이 있습니다. 그 몇 음절짜리 단어에 담긴 뜻대로 인생이 정해지기도 하고,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그리아 왕국>은 이러한 요소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름은 그들 사이의 유사점과 그 이름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세 왕자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변주되는지 예측해보기에 좋은 소재가 됩니다.
4.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를 감히 예상해보자면, 예상해보자면 저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독백이 어울릴만한 결말일 거라고 감히 점쳐보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도’는 단순히 샤흐라자드나 세 왕자,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만을 놓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왕국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정령이나 신령이라고 불리는 것들마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사실 샤흐라자드나 세 왕자의 운명보다 저는 정령과 신령의 운명에 더 관심이 갑니다. 제가 워낙 오컬트 광인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사야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정령과 신령이 모두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건 이미 몇 가지 복선이 나왔습니다. 이스카가 악령(신령)들을 물리칠 영웅이 될 거라는 예언, 이사야가 거론한 ‘입신’, 그리고 ‘영혼이 없는 전사’. 어쩌면 이스카는 입신을 통해 모든 정령과 신령을 제 몸에 강림시킨 후, 영혼이 없는 전사와 접촉해 그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자신처럼 불새의 꿈을 꾸고 고통받는 자들이 세상에 더 나오지 않게 막아버리는 건 아닐까요? 그건 분명 영웅다운 행위이고, 목숨을 건다면 위대한 순교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합니다. 이스카의 행동이 신비의 시대를 끝내고 오롯한 인간의 시대를 여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신비로 가득한 마술과 점성술이 인간의 의학과 천문학으로 덮어씌우듯.
하지만 이스카가 실패한다면? 예언에는 왕국만이 아니라 문명마저도 위협받고 있음을 알립니다. 물론 초원 밖의 문명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만일 초원의 유목민족들이 세운 문명도 없어지는 거라면? 그렇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결말로 치닫는다면? 어쩌면 작가님은 그런 가능성도 충분히 열어두셨을 것 같습니다. 이스카는 아직도 정령과 완전히 동화되지 못합니다. 샤흐라자드처럼 그들을 통제하지 못하니까요. 실패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게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에는 그러한 결말도, 차라리 어울릴지 모릅니다.
물론 제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일부분은 얻어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이고 절대적인 변화를 겪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샤흐라자드든, 세 왕자든, 그 주변 인물들이든, 왕국이든, 인간의 문명이든, 세계 그 자체이든.
5. 형식의 변화, 내용의 변화
이 챕터의 내용은 <하그리아 왕국>의 이야기 진행에 대한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강박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형식적인 구조를 이야기에서 따지는 편입니다. 때로 이것이 주객전도의 위험성을 가지긴 하지만, 이야기의 형식과 구조는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형식의 특징으로 인해 이야기의 내용에도 특징이 생기는 때도 있습니다. <하그리아 왕국>도 형식의 특징에 따라 내용 전개에도 흥미로운 면이 있습니다.
<하그리아 왕국>의 각 챕터, 각 회차에는 그 회차를 담당하는 중심 서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차가 바뀔 때 서술자가 바뀝니다. 서술자가 바뀌면서 그 인물의 관점에서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복기하고, 판단하고 나아갑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각 회차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즈음에는 생각보다도 멀리까지 사건이 전개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그리아 왕국>의 각 인물에게 고루 이입하게 해줌과 동시에 3인칭 전지적 시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하그리아 왕국>의 단행본 기준 3권 분량에 들어가면서 이야기의 형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46 : 아르샨>에서부터 이러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단문 응원에서 다른 독자분께서 지적하셨던 것처럼 이 회차의 주 서술자는 아르샨이어야 하는데, 이스카가 서술자로 나오는 분량이 더 많습니다. 이후에는 다섯 회차에 걸친 <47: 이스카>, 세 회차에 걸친 <48 : 스피타만>, 세 회차에 걸친 <49 : 아이라만>이 연재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열한 회차째 이어지고 있으며 열두 번째 회차가 예정된 <50 : 타흐마탄>이 연재되고 있지요.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그동안의 <하그리아 왕국>이 가지고 있던 형식적 특성, 그로 인해 나오는 각 인물의 내면과 외면의 움직임, 그리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빠른 사건의 진행 속도와 꽤 대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형식의 변화가 의도적이었다고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주요 인물들이 무력화되거나 죽기 시작했고, 결말에 강한 영향을 미칠 인물들에게 집중하는 게 맞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의도하지 않았거나 일정 부분 의도했더라도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는 거라면, 여기서는 환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50: 타흐마탄>에서는 타흐마탄 외에서도 문득문득 서술자로 나온 인물이 많습니다. 이사야, 이스카, 카라라, 카라파, 카락스, 카라라의 몸을 차지한 하늘의 신령이 그러합니다. 차라리 그들 각각이 서술자로 등장하던 파트들끼리 묶어서 기존의 형식과 유사한 방향으로 재구성했다면 통일감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보태자면 정령 루살카와 바바야가가 주된 서술자로 나오는 회차가 있었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스카의 몸을 차지한 바바야가가 신령들을 조롱하며 공중에서 싸우는 장면은 멋졌거든요.
물론 <50 : 타흐마탄>으로 엮여있는 열한 편의 이야기 각각을 살펴보면, 또 작가님의 고충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에는 사건의 전개가 비교적 느긋합니다. 정확하게는 “술술 읽었는데 어느새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다고?”라고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50 : 타흐마탄>은 그 자체로 상황이 긴박합니다. 타흐마탄은 자식을 찾으려고 방랑하고, 이스카는 목숨을 위협받고, 카라라는 신령에게 몸을 빼앗기고, 신령들과 정령들의 대결이 첨예해집니다. 어느 한쪽에 카메라를 집중시키는 순간, 다른 한쪽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묵혀놨다가 꺼내야 합니다. 독자들은 “뭐야, 한눈판 사이에 여기 갑자기 왜 이렇게 됐어?”라고 당황스러워하기 충분하죠. 마치 <48 : 스피타만>에서 서술자의 역할을 끝내고 돌아온 스피타만이 갑자기 아이라만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예 섭정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결국 <50 : 타흐마탄>의 각 회차는 여러 인물이 각자의 시선에서 서술하는 짧은 이야기들의 집합으로 구성됩니다. 이전의 회차들도 그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독 두드러집니다. 첨예하고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는 군상극, 어느 한쪽에 카메라를 몰아줄 수 없다면 독자로서는 조금 어지러울지라도 모든 장면을 짧게 짧게 끊어서 연달아 보여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의구심은 계속 듭니다.
걱정되는 것은 3권의 이야기는 <50 : 타흐마탄>이 아닌 <51 : 소흐랍>에서 끝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작가님께서 공개하신 계획상으로는 <하그리아 왕국>이 4권을 끝으로 완결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연 소흐랍 편과 그 이후의 회차는 어떠한 형식과 내용의 배치로 전개가 될지,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으로 다가올지 고심해보셔야 할 상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본격적으로 종말이 왕국에 들이닥치고, 세 왕자가 동시에 격돌할 4권의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제시하면 좋을지 말입니다.
<하그리아 왕국>은 제게 다양한 인물상과 제가 추구하는 문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준 소설입니다. 서서히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응원하며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