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중도하차 할 뻔했다, 다 읽고 나서야 보이는 8가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작가: 점선면,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6월, 조회 152

솔직한 평부터 남기겠다. 나는 이 소설을 정말로 힘겹게 읽었다. 취향을 저격하는 요소들이 참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쌓아간 사건과 감정선이 도달하는 결말이 나름 탄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결을 보고 난 뒤에 내게 남은 건 ‘재밌다’가 아니었다.

짜릿한 해방감이었다. ‘이 소설을 이제 다시 읽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끝났다’라는 그런 심정 말이다.

– 나 이거 읽어야 돼, 아니면 내일 또 읽어야 돼 

이 소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을 읽던 마지막 날에 친구에게 한 말이다. 일정이 바빠서 장편의 경우 쪼개서 읽는 편인데 (물론 한번에 달리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길었다) 너무도 지난한 시간이었다. 정말로…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단기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아무리 읽기 힘든 작품이라도 마지막 장을 보고 난 뒤에는 소설의 끝맛을 음미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을 코인으로 구매하지 않았다면 중도하차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잠깐만. 이럴 거면 왜 리뷰하는 거야, 안 하면 그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거다. 정말 힘들었지만 (최근 언제 이렇게까지 힘들었나 했는데…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후로 약 1년만인 듯, 심지어 그것도 이거보단 잘 읽혔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좋았던 건 이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 4가지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본래 찐장점은 팬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 독자’가 잘 찾아내는 법이니, 궁금하지 아니한가. 이 소설의 장점 4가지부터 이야기하고, 4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겠다.

 

첫째, 19년의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여자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간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조금 더 살을 붙여보자면 <한밤중 외딴 산속에서 젊은 여자의 시체를 파묻던 도중에 깨어난 지아, 19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진다>이다. 이 한줄만 읽어봐도 어떤가. 흥미롭지 않은가.

어떠한 상황적인 인지도 없는 상태로 시체와 마주한 순간에 염지아의 뇌리에 스친 ‘존재’는 하나였다. 그녀의 몸에 자리한 또 다른 인격, 혜수다.

 

여기서 두번째 흥미 포인트가 등장한다.

 

둘째, 한 사람의 몸에 자리한 두 사람의 인격을 ‘캐릭터적’으로 잘 분리하여 몰입감을 높였다. 

소설 제목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에서 알 수 있듯 지아의 몸에 객식구로 자라난 존재가 바로 혜수다. 단지 이중인격 혹은 트라우마로 인한 해리성 정체 장애 정도의 설정에 그쳤다면 그리 흥미롭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혜수는 지아의 ‘영악함과 악독한 성격’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품는 ‘악의’마저 모조리 품고 태어난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지아가 피를 보는 순간에 등장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가차 없이 처단한다.

손등을 연필로 꿰뚫는 건 애교이며, 지아라는 존재마저 ‘자기파괴적’으로 망치고 싶어하여 음식을 마구 먹어서 살을 찌우거나 비상한 두뇌를 갖고도 공부를 할 수 없게끔 방해하여 나락인생을 살도록 유도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성적으로도 방종한데, 가족과 같은 입장에서 지아와 아버지를 돌보던 재필을 유혹하여 거침없이 관계를 맺는다.

혜수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지아는 미련하고 체념적이다. 마치 헐크가 되지 않았을 때의 박사나 하이드와 분리된 지킬처럼.

단순하게 인격체가 하나 더 있다 수준이 아니라, 내 몸 안에서 자라나 ‘통제가 불가능한’ <악마> 포지션으로 혜수를 세팅하였다는 게 긴장감을 높였다.

시체를 묻고 있었다는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지아 역시 단박에 ‘살인범’으로 혜수를 의심하니까 말이다. 혜수란 존재는 지아를 이루는 어두운 그림자, 악행, 음습한 충동 등을 모두 그러 모아서 아무렇게나 빚어진 쓰레기통 같은 존재다.

 

셋째, 지아의 연고는 서울이지만 혜수의 19년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곳은 ‘항구도시 묵진’이다. 그 도시에 대한 공감각적 묘사가 뛰어나다. 

 

돈만 있다면 없던 사람도 존재하는 사람이 되고, 존재하던 사람도 ‘죽어버릴 수’ 있는 무법지대, 묵진. 범죄가 횡행하며 거친 뱃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더러운 욕망과 뒷공작이 난무하며 바닷내음이 질척하게 나는 도시를 잘 그려냈다.

 

본래 우리가 보는 세계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 아주 크고 넓은 ‘어둠의 음지’가 존재하고 있다지 않나.

 

혜수라는 존재와 그 음지가 너무도 잘 어울려서, 지아가 음지 속에서 혜수가 남긴 단서들을 쫓아가면서 추적하는 내용과 도시의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또한, 혜수가 만나는 사람들의 캐릭터성이 묵진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느와르>를 기대하게 했다.

 

넷째, 단순하게 가족의 비극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자리한 ‘역사적 아픔’을 건드렸다. 

대중의 무의식을 건드려야 대중과 공명할 수 있고, 때로는 부실한 서사도 그 ‘무의식적인 아픔’이 커버 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다 아는 5월의 광주를 백그라운드에 깔고 있다. 광주 근방의 마을 온계리에 군인이 들이닥친 순간, 지아의 어머니가 군인에게 쫓기던 청년을 숨겨주다가 죽임 당한 것이 지아 ‘인생’을 뒤흔들어버린 첫번째 탄환이었으니까.

어머니의 죽게 한 게 자신의 불찰 때문이라는 죄책감, 어머니를 잃었다는 상실감, 온전하게 애도할 틈도 주지 않는 아버지와 같은 여러 요소가 합쳐져서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지아 안에서 ‘혜수’가 태어난 게 두번째 탄환이었다.

자신을 ‘지아’로 존재하게 하던 소중한 직장마저 혜수의 난동 탓에 잃어버리고 죽음의 공포를 마주한 순간에 제 손으로 스스로를 찔러 혜수를 불러낸 게 세 번째 탄환이었다. 3개의 총알이 심장에 꽂힌 채로 지아는 19년간 잠들어버렸다.

몸을 앗아간 것이 또 다른 인격이라는 것만 나왔다면 혜수가 자행했던 무수한 폭행들은 단지 ‘잔혹함’으로 보여졌겠지만, 국가로부터 희생 당한 이의 유가족이자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겨우 살아남은 자를 ‘염지아’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달랐다. 역사적 비극, 대중의 무의식을 건드렸기에 끝까지 주인공을 연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4가지의 매력 포인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였나. 내가 넘어서기 어려웠던 이 소설의 아쉬운 점 4가지를 이야기 해보겠다. 

 

첫째, 염지아와 혜수에 대한 캐릭터 구축이 ‘단편적’이고, 불친절하다. 

 

염지아는 멍청하고 혜수는 극랄한 악마다. 딱 1줄로 두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 염지아는 당하기만 하고 혜수는 지랄하다가 결국 지아의 인생을 송두리채 먹어서 망쳤다는 건데… 물론 뒤에 혜수와 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부가적으로 나오지만 ‘설명적’이어서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혜수가 나타나기 이전이나 염지아의 트라우마와 가족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긴 데 반해서, 염지아+혜수라는 주인공 인물에 대한 캐릭터 해석과 구축이 미흡하다.

인물을 이루는 건 결국 ‘순간’의 선택이며 욕망이고, 결핍이다. 그 욕망과 결핍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설명’이 아닌 ‘장면 구축’에 성공했을 때다.

이를 테면 첫 화에서 혜수가 동료 간병인의 손등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고 대과거인 ‘온계리’ 사건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1부 에피소드 14개 중에 초반부의 절대 다수 분량에 해당하는 12개 회차를 사용하여 지아와 혜수의 과거에 대한 설명만으로 진행되었다.

기나긴 설명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것보다, 손등을 찌른 상황 이후로 사건이 진행되면서 지아가 하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급작스럽게 출연한 혜수와 지아 사이의 실랑이(세력다툼)을 통해서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설명적으로, 때론 혜수를 합리화시키는 방식으로 캐릭터가 세팅되다 보니 혜수는 악마고 가족은 없느니만 못하며, 지아는 희생자이긴 하지만 너무도 약해빠졌다는 인식만이 남았다. 멍청하고 무매력적인 주인공을 설명하는 데 1부 초반부 12개의 회차를 사용했단 소리다.

주인공은 호감일 필요는 없지만 공감은 가야하며, 그녀 혹은 그를 응원할 마음의 자세가 마련되어야만 독자가 따라가기 쉽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12개 회차 동안 염지아와 혜수에 대한 궁금증이 급격히 하락했고 호감도 역시 떨어졌다. 악귀 같은 인격 하나가 과거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가족의 학대로 의해 발발되었고, 으레 자신이 하던 식으로 난동을 부려서 지아의 인생을 망쳤다.

 

자, 어쩌라는 거지? 나는 지아의 인생사 ‘설명’을 들으며 너무도 많은 걸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지아가 손등을 찌른 직후에 곧바로 혜수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집밖으로 도망쳤다가 ‘위기상황’에 맞닦뜨려서 자신을 포기하게 되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아와 혜수의 관계에 대한 단서를 좇으며 그녀를 궁금해 했을 거 같다.

어머니 죽음의 트라우마, 아버지의 방임과 폭행, 거기다 따르던 아저씨가 혜수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까지 줄줄이 땅콩처럼 설명되는 서사는 너무 과하다. 강약강약이 반복되어야 소설을 읽기 좋은데 너무 ‘강강강’으로 쏘아붙이니까 피로도가 너무 높았다.

뒤에도 이 강강강은 계속되는데… 지아는 너무 불운하고 불쌍하며 사건사고는 계속 터지니까 머리가 너무 아팠다. 설명되어야 할 지점에서는 설명을 유예하고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은 지나치게 디테일하며, 캐릭터는 ‘구축’ 되기보다 ‘나열’된 느낌이었다.

이게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소설은 문장과 인물의 힘이 중요하다. 이 소설의 인물은 사건과 상황에 휘말려가는 ‘객체’처럼 느껴졌을 뿐, 살아 숨 쉬는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한껏 몰입하고 싶은 존재는 아니었다. 바로 그래서, 종국에는 지아가 죽건 말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졌다.

 

둘째, 염지아와 혜수 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너무 과격하고 ‘액션’이 과하다. 

혜수가 만들어낸 피해자 아닌 피해자라고 할까… 염지아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 염지아를 죽이려고 하는 미친 여자가 하나 나온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미친 여자가 너무 역해서 소설 읽기 괴로웠다.

시궁창 냄새가 나는 좀비 생쥐 혹은 바퀴벌레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뒤에 가면 이 사람이 왜 그러는지 나오지만, 대체 영문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죽지도 않고 다시 돌아오는 각설이마냥’ 지아 앞에 나타난다.

하, 영문도 모르는 채 원룸에 갇혀 죽여도 다시 돌아오는 바퀴벌레에 공격 당하는 심경을 아는가. 끔찍하지 않나… 딱 그 기분이었다. 이 여자에 의해 자행되는, 또한 이 여자가 당하는 형태로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나중에는 별로 폭력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골이 지끈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딱히 빌런도 아니었다.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었고, 무언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이 미친 여자처럼 묵진에서 만나는 인물이나 지아의 가족들 역시 너무도 과장되어 있다는 게 아쉽다.

묵진이라는 항구도시가 풍겨내는 느와르적인 무드도 ‘강’하고, 인물들도 괴기할 정도로 ‘강’하고, 사건과 상황 역시 ‘과격’하며 문장도 묵직해서 ‘강’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계속 이유를 보여주는 건 지연시키고 추적은 하고 있으니… 봐야 할 것은 못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건 계속 보는 고문이었다.

오죽하면 반전 아닌 반전이 밝혀졌을 때도 헛웃음이 나왔을까.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조금씩 ‘캐붕’을 일으켰고, 설정적인 구멍도 너무 많았다.

 

셋째, 구성적으로나 인물관계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후킹한 부분’은 염지아가 시체를 묻다 말고 정신을 차렸을 때, 19년의 세월이 사라졌다는 건 깨닫는 순간부터다.

나는 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소설의 ‘오프닝’에 배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바로 이 후킹 포인트가 <궁금해서> 였는데… 기대를 배반하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염지아의 추적은 너무 뒤에 나오기에, 그 사이에 이미 흥미를 잃었다.  이 사건이 나온 뒤에 풀어가는 방식에서도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게 단점이었다. 염지아의 동생으로 나오는 병준은 꼭 같이 갔어야만 했을까… 병준이란 캐릭터가 없어도 괜찮았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고, 그 외에도 덜어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인물들이 몇 더 있었다. (굳이 열거하진 않겠다) 너무 인물이 많다 보니까 있는 인물끼리의 감정선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서 갑자기 분위기 무엇? 갑자기 이 사건 무엇? 스러운 게 너무 많았다.

즉, 사건, 상황, 인물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 욕망, 결핍, 관계성에 대한 깊이감은 떨어졌다.

 

넷째, 앞서 대중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시도가 좋았다고 했다. 허나 ‘광주’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아쉬웠다. 

5월의 광주가 되었건 또 다른 사건이 되었건 대중이 모두 다 아는, 슬픔의 역사를 대함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단지 그 사건을 소재로 소비해서는 안 되며, 꼭 그 사건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고, 그 사건이 의미 있게 다뤄져야 한다.

소설 전체를 다 읽고 난 뒤에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이 광주를 이용했다고 봤다.

염지아와 혜수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강강만 반복되는 사건사고, 인물 군상이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독자가 ‘연민’을 갖게끔 지아(+혜수)에게 주어진 일종의 방패막이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겪고 피해자가 되었지만, 제대로 보살펴지지 않은 존재로 이 주인공을 그리려고 했다면 그 사건이 꼭 5월의 광주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이건 작가의 윤리의식이랑 연결된다. 나는 실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이러한 방식으로 소모되는 것을 경계하며, 더구나 지명까지 명확하게 말하는 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심도 깊은 고민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라면 광주라는 지명과 그 사건을 여실히 드러내려고 하기 보다 그 사건을 연상케 하는 가상의 지명, 가상의 마을을 살리는 편이 좋다.

소재를 위한 소재, 시선을 끌기 위한 노림수가 보여서 불편했다. 이다지도 어두운 비극을 다루려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정도의 심도 깊은 고민은 필요했지 않았을까. 나는 좀 서글펐다. 담아내는 건 좋다, 얕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나이브한 방식의 이용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리뷰가 참 길어졌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시간도 힘들었지만 이 리뷰를 정리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느와르, 광인, 라이벌, 악인, 악의, 폭력, 범죄, 추적, 미스터리, 이중인격, 실종, 트라우마…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다. 이 소설에는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모두 들어 있다. 설정적인 측면이나 캐릭터 요소, 공간적 배경, 사건과 반전까지 매력적인 요소가 참 많다. 앞서 4가지 장점을 말했던 것처럼 어째서 출간계약을 맺게 되었는지 딱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참 힘들었던 이유를 4가지나 풀었지만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물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결핍, 트라우마, 욕망, 서글픈 비극의 잔재, 애도하지 못한 애도를 깊이감 있게 다뤘어야 하는데 그 자리를 소재와 폭력적인 사건사고가 채웠다.

강하기만 한 폭력이 횡행하는 현장에서 어지럽게 서 있다가 풀려난 기분으로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리뷰어 활동을 하는 동안에 이만큼 긴 리뷰를 쓴 적은 없었다.

기나긴 소설을 완결 짓는 것, 여러 인물들과 사건을 엮어가면서 엔딩을 향해 달린 끝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게 작가에게 있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여정인지 알고 있다. 물론, ‘잘 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거다. 내가 작가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마지막까지 달려온 독자의 입장으로 그의 고충을 어림짐작 해 볼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맨 마지막 장면을 쓰기 위하여 이 많은 것들을 기획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인물이 탄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장점 역시 확실한 이 소설… 이 기나긴 리뷰를 읽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다 읽지 않아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1부] 집으로 돌아오는 길(1)에서부터 소설 읽기 시작해도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면 어쩌면 나보다는 좀 더 흥미롭게 읽을지도 모르겠다. 결말까지 다 읽고 난 뒤에 남겨두었던 1부 내용들을 읽는다면 조금 덜 힘들지도. 아니다, 그대의 마음대로 해도 좋다. 나는 이 소설 하나로 참 많은 걸 배웠다. 때론 유려하게 잘 쓴 소설보다 힘겨운 소설이 더 글쓰기에 있어 영양가 풍부한 자양분이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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