Η ιστορία ενός κοριτσιού που αγαπούσε ένα τέρας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닥 없는 샘물을 한 홉만 내어주시면 (작가: 김아직, 작품정보)
리뷰어: 난네코, 23년 6월, 조회 120

Η ιστορία ενός κοριτσιού που αγαπούσε ένα τέρας

괴물을 사랑한 소녀의 이야기

 

 

 

 

 

※ 본 리뷰는 김아직 작가님의 <바닥  없는 샘물을 한 홉만 내어주시면>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광기의 영웅

3. 대지의 어머니

4. 되돌려지는 시간

5. 결어

 

 

 

 

 

1. 들어가는 말

 

요즘 저는 김아직 작가님의 중단편 글을 읽고 있습니다. 제 소설, 제 논문보다 다른사람이 쓴 소설,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이 더욱 잘 읽히고 더 재미있습니다. 정작 남의 글을 읽느라 제 글을 안 쓰는게 것이 고민입니다. 하지만, 다다익선이라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쓸 글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아직 작가님께서 2023년 4월 4일에 발표한 브릿g 계약작 중단편 <바닥 없는 샘물을 한 홉만 내어주시면>은 저를 포함한 브릿g에 계신 수 많은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멋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임리프 공모전 역대 수상작 중에 하나이며, 서양 고전 문학과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고아한 문체가 매력적입니다. 또한 시간여행이라는 상당히 판타지, SF에서 볼 법한 주제를 서양 고전 문학체로 풀어낸 점에서 감탄했습니다. <초서는 모르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SF 판타지와 역사 고전을 섞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런 글은 작가가 역량이 부족할 경우 용두사미 수준의 저급한 글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아직 작가님의 글에서는 이런 역량 부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가 김아직 작가님의 모든 소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김아직 작가님은 고중세 서양 고전과 문학에 박식하며 문학 연구를 많이 하신 분입니다. 구어체와 문어체를 이용하여 어떻게 언어를 조성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209매라는 중단편으로선 다소 긴 글이지만, 버스를 타면서 핸드폰으로 읽는 동안 스크롤이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흠뻑 빠지며 읽었습니다. 주인공인 소녀 글라우케의 영민하고 생동감 넘치는 활약이 재미있었고, 인간을 초월한 신화 속 괴물 히드라가 글라우케에게 느끼는 연민과 공감, 우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각종 미디어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반인반신 영웅 헤라클레스가 가진 광기와 잔혹성에 주목한 것도 흥미로웠으며, 대지의 어머니 여신들(가이아, 레아, 데메테르)의 등장과 이들이 단순히 모성애로 가득한 자애로운 지모신(地母神)의 역할로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계절을 되감고 시간을 되돌리는, 전능함을 가진 여신으로 조형한 점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헤라클레스가 잉걸불로 지져서 괴물 글라우케를 죽인 장면을 묘사한 회화 작품을 배치한 것도 좋았습니다. 독자인 저의 빈약한 상상력을 보완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2. 광기의 영웅

 

2-1. 숭배받는 영웅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신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kles)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헤라클레스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용맹스런 신화적 인물입니다. 그는 제우스와 암피트리온(Amphitryon)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입니다. 제우스가 알크메네를 강간하고자 하나 저항을 두려워하여 남편으로 변신하여 낳은 자식이지요.

헤라클레스는 신화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될 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의 소재이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어린이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있는 영웅입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헤라클레스의 영웅숭배는 상당히 보편적 현상이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의 도리스 인들(스파르타인들의 시조)은 헤라클레스를 국조(國祖)로서 숭배하였습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6세기 독재자 피시스트라토스의 수호신이었으며, 마케도니아에서는 국조로서 숭배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도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추앙했습니다.

 

헤라클레스에 관해, 나는 그가 12신의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집트 어느 곳에서도 나는 헬라스인들이 알고 있는 또 다른 헤라클레스에 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참으로 나에게는, 헤라클레스라는 이름(τὸ ου῎νομα τοῦ Ἡρακλέος)이 헬라스로부터 이집트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이집트로부터 헬라스에, 각별하게는 그 이름을 암피트리온의 아들에게 주었던 헬라스인들에게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부모인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가 모두 혈통상 이집트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 (헤로도토스, ii.43.12)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역사(도서출판 숲, 2009).

나는 피시스트라토스 시대의 아테네 예술에서 헤라클레스의 비상한 인기는 어느 정도 그 독재자와 그 영웅 사이의 의도적인 동일시에서 나온 것이며(둘 모두 아테나 여신의 각별한 피보호자로서 나타난다. 이 연계는 헤라클레스의 도상적 전승에서의 변화와 혁신-이 당시의 아테네의 그리고 아테네만의 예술 작품들에서 나타나고 있다-에 의해 반영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려고노력하였다.

가장 명백한 연계는 피시스트라토스가 그의 두 번째 추방 후 가짜 아테나 여신이 안내하는 전차를 타고 아테네로 귀국하는 사건에서 표현되었다(헤로도토스, i.60).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도상의 변화에 반영되거나 도상이 다음과 같이 변화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헤라클레스가 도보로 아테나의 인도를 받아 올림포스에 입성한다는 일반적인 도상에서, 이제 그 영웅이 전차를 타고 여신과 함께 나타나는 도상으로의 변화 말이다.

John Boardman, “Herakles, Peisistratos and Eleusis,” The Journal of Hellenic Studies, Vol. 95 (1975), p. 1

 

헤라클레스의 명성은 전 그리스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오네스보다는 그리스 중부나 도리에이스와 더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숭배받는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도기화(圖器畵)에 자주 등장하며 헤라클레스의 12가지 행적도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의 행보로 평가받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해낸 12가지 행적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네메아 주변 마을을 괴롭히는 사자를 죽이는 것

②티폰의 자손으로 레르나 근처 습지에 살고 있는 히드라를 처치하는 것

③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황금뿔 달린 암사슴을 잡아오는 것

④ 에리만토스 산 근처의 마을을 괴롭히는 큰 멧돼지를 잡아오는 것

⑤ 엄청난 소 떼가 있는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하루만에 청소하는 것

⑥ 아르카디아의 스팀팔로스 근처 호숫가 숲에서 페스티 새떼를 없애는 것

⑦ 크레타에서 크고 난폭한 황소를 잡아 미케네로 데려오는 것

⑧ 트라케 부리스토네스의 왕이며 아레스의 아들인 디오메데스가 기르고 있는 사람을 잡아먹는 암말을 데려오는 것

⑨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의 벨트를 가져오는 것

⑩ 서쪽 먼 곳 에리테이아로 가서 게리온이 기르는 소떼를 몰고 오는 것

⑪ 가이아가 헤라에게 결혼 선물로 준 것으로 서쪽 끝 헤스페리데스 정원에서 자라는 황금사과를 가져오는 것

⑫ 저승세계 하데스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데려오는 것

 

이외에도 헤라클레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와 함께 아르고스 호를 타고 콜키스로 원정을 갔다든가, 반인반수의 인마(人馬)족과 싸운다든가 하는 이야기, 또 부시리스 왕이 다스리는 이집트로 가서 자신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 부시리스와 그 아들을 죽이는 등 폭력적 행위와 연관된 이야기의 번안도 존재합니다.

 

 

2-2. 폭력적인 영웅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용맹한 괴력을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짐승들에게 쏟아내지 않고, 가족과 친인척에게도 발산합니다. 자신에게 악기를 가르쳐주던 스승을 때려죽이거나, 자신을 환대하는 청년을 절벽에 던져버리거나, 자신의 아이를 불 속에 던지거나 화살로 쏘아죽이며, 자신에게 술을 따르는 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죽여버리거나, 욕정에 못이겨 여자의 남자 가족들을 살해하고 그 여자를 데려오는 등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을 훨씬 더 능가하는 괴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여덟 달이 되었을 때, 여신 헤라는 어린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거대한 뱀 두 마리를 보냈지만, 헤라클레스는 일어나 두 손으로 그 뱀들을 목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전차 모는 법과 레슬링, 그리고 활 쏘는 법을 배우며 중무장하고 싸우는 기술을 연마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인 귀족 기마전사로 자랍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Orpheus)와 형제간인 리노스(Linos)에게 키타라(kithara) 연주를 배웁니다.

그런데 어린 헤라클레스가 제대로 배우지 않자 키타라 스승 리노스가 제대로 열심히 배우지 않는다고, 키타라로 헤라클레스를 때립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분격하여 스승 리노스를 바로 그 키타라로 때려죽입니다. 친생추정의 원칙에 따라 헤라클레스의 아버지인 암피트뤼온은 헤라클레스가 또 다시 스승을 때려죽일까봐 두려워서 그를 소 떼를 지키는 목동으로 보내버립니다.

목동으로서 야만의 상태에서 자라오던 헤라클레스가 지도력과 전투력을 인정받게 된 것은 테바이와의 관계에서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헤라클레스는 테바이인들이 공물을 바치던 미뉘아이 족의 왕 에르기노스의 전령들을 폭행하고 귀와 코와 손을 잘라 노끈으로 그들의 목에 묶은 다음 그것을 공물로 에르기노스와 미뉘아이 족에게 갖다주라 한다. 이에 분개한 에르기노스가 쳐들어오자 아테나 여신에게서 무구를 받아 전투를 이끌고 에르기노스를 죽이고 미뉘아이 족을 패퇴시킨다. 이제 미뉘아이 족은 테바이에게 공물을 그 전의 두 배로 바치게 된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크레온(Creon)에게서 그의 장녀 메가라(Megara)를 승리의 상으로 받아 가정을 꾸리고 테리마코스, 크레온티아데스, 데이코온 3명의 아이를 낳는다.

보통의 옛날 이야기가 그렇듯‘헤라클레스가 결혼을 한 후 한 번씩 원정을 나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며 평화시에는 사자와 멧돼지를 사냥하면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더래요’에 머물었다면 헤라클레스 신화는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편안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고 폭력과 광기의 악순환으로 끝없이 내몰린다는데 신화의 참 의미가 있다. 신화는 어리석은 듯 하지만 세계와 우주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폭력의 본질은 광기에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광기를 부르고 광기는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야 말로 자신의 하체를 먹으면서 식욕을 채우는 괴물과 같다. 맘껏 배가 부른 순간 존재가 사라지는것이다. 헤라클레스는 거칠지만 공동체에 꼭 필요한 전사이자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고 결혼을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삶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공동체의 생활에 안착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미뉘아이족과의 전투가 끝난 뒤 헤라의 질투로 미쳐 메가라가 낳아준 자기 자식들을 이피클레스의 두 아이와 함께 불 속에 던져 살해한다(Apollodoros 2. 4. 12).

김봉률(2011).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전쟁신경증. 영어영문학, 57(5), 889-910.

 

이처럼 헤라클레스는 숭배받는 영웅이면서 동시에 잔혹한 광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폭력성은 이종살해와 동종살해를 막론하고 외부로 발산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가족까지도 살해하는 광기로 결국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자신이 타자에게 행한 폭력이 여러 겹의 과정을 거친 결과 결국 그 자신까지도 희생됩니다. 그는 신이나 영웅으로 숭상하기엔 선하지 아니하며, 싸이코패스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 비도덕적이고 잔인합니다.

 

 

 

 

3. 대지의 어머니

 

 

3-1. 데메테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땅, 곡식,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은 데메테르입니다. 데메테르의 이름은 땅을 의미하는 de(ge)와 어머니를 뜻하는 meter가 결합하였습니다. 어원을 보기만 하여도 데메테르가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곡모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데메테르의 여러 직능에 관련된 별명 역시 농경과 관련된 여신임을 잘 드러내줍니다. Ploutoditeira(부유함을 주는 자), Karpophoros(열매맺는 자), Malophoros(사과맺는 자), Thermasia(따뜻함), Khthonia(땅밑의), nisidora(선물주는 이), Khloi(푸른이), Epogmie(쟁기) 등이 그녀의 별명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암퇘지를 제물로 드렸다는 것 역시 농업의 풍요 의식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데메테르 여신은 청동기 시대까지는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데메테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등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호메로스 서사시에는 육류나 어류에 비해 곡물에 관한 묘사는 드물게 나옵니다. 그러다 헤시오도스의 노동과 나날에서는 데메테르의 지위가 격상되어 있습니다. 헤시오도스는 동생에게 ‘열심히 일하면 데메테르가 너의 창고를 곡식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고 말합니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생활의 비중보다 정주와 농경의 사회로 나아가면서 땅의 어머니 여신은 크게 존숭됩니다. 아버지가 없이 유목적인 단계의 생활양식에서 농경과 결혼을 중시하게 되어 어머니(여성)에게 권위와 힘을 부여하는 생활양식으로 변한 것입니다. 때문에, 곡식과 풍요의 여신이자 대지의 어머니인 ‘위대한 어머니’ 데메테르의 지위는 크게 높아집니다.

데메테르 숭배에 대한 최초의 자료 중 하나로서, 기원전 7세기-6세기경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데메테르 송가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데메테르의 딸(코레) 페르세포네가 꽃을 따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된다. 모든 신들이 모른다고 하는 가운데 딸을 찾아 헤매던 데메테르는 헤카테 여신의 도움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로부터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된 것을 알아낸다. 식음을 전폐하며 슬피 방황하며 떠돌던 데메테르는 아테네 근교 엘레우시스에 와서 켈레오스 왕가의 환대를 받는다. 특히 이암베는 농담으로 데메테르의 마음을 풀어주어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의 실종 이래 처음으로 위로를 받고 웃는다. 또한 페르세포네가 사라진 후 처음으로 키케온(물, 보리, 민트를 섞어 만든 곡차)도 마신다. 한편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모든 초목이 시들게 되자, 급하게 된 신들의 왕 제우스의 중재로 급기야 페르세포네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이미 지하 세계에서 석류를 따먹은 페르세포네는 일 년에 일정 기간을 하데스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이 계절 변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James, A.W., “The Homeric Hymn to Demeter”, Journal of Hellenic Studies, 1976, 96, pp. 165-168; Janko, R., Homer, Hesiod, and the Hymns, Cambridge, 1982, p.183; 최혜영,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아: 데메테르, 이시스, 이난나의 비교, 서양사론, 제83집, 2004, 5쪽

 

 

3-2. 가이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초에 우주에는 카오스(Chaos) 상태, 즉 세상이 생성되기 전의 상태로서의 신화적인 무(das mythische Nichts als Zustand der Welt vor ihrer Entstehung)의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 가이아(Gaia)가 있었다고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기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가이아는 카오스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이아는 생과 사를 초월한 여성으로 인격화되어 대지의 여신, 혹은 대지 모신으로 이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아는 새로운 생명을 낳는 행위를 하고, 낳는 행위를 통하여 세상의 만물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창조적 행위를 합니다. 또 이러한 가이아의 속성은 자식들에게 전해진다. 땅, 대지의 의미와 함께 가이아의 속성은 딸 레아(Rhea)에게 전해지고, 또 레아의 딸인 헤라(Hera)에게 다시 전해짐으로써 3대에 걸쳐 유지됩니다.

 

대지의 신이 자식을 출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굉장한 대지인 가이아는 잠을 자던 중 거대한 하늘 우라노스(Uranos)를 낳았다. 이후 가이아는 혼자 스스로 바다인 폰토스(Pontos)와 산맥인 우레아(Ourea)를 낳기도 하고, 자신의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에 안기어 레아와 크로노스 등의 거인족 아이들을 낳았다(신통기, 123ff.). 가이아는 그 밖에도 폰토스, 라돈 등과 성적 결합을 통해 아이들을 낳았다. 

반면에 레아는 크로노스에 안김으로써(신통기, 453, 634) 올림포스의 여섯 신인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를 낳았다. 헤라는 제우스의 폭력에 이은 결혼이라는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아레스, 헤베, 일리티야, 에리스를 낳았다. 헤라의 남편 제우스의 여성편력은 헤라를 분노케 하였고, 헤라는 제우스와의 사랑의 교합 없이 (신통기, 927)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가이아와 헤라는 남성 신과의 성적인 결합 없이 자력으로 자식을 낳는 단성의 생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남성 신의 도움으로 자식을 생산하는 양성의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레아의 경우에는 남성 신의 도움이 있어야만 생산할 수 있는 양성에 의한 생산성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 중요한 가계를 형성하는 우라노스와의 결합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신들과도 결합을 하면서 왕성한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레아와 헤라는 각각 하나의 남성 신과 관계를 맺으며 자식을 생산해내는데, 헤라의 남편 제우스는 35명 이상의 여신 및 요정들과 성적 결합을 하여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이러한 차이는 ‘신화적인 무’에서 우주와 신들을 창조해야하는 가이아의 경우 그녀가 우주 창조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주도에 의하여 생산 활동을 하여야한다면, 레아와 헤라의 경우는 기존의 질서체계에 편입되어 생산 활동을 하는 부수적인 존재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해경(2008).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타난 자연관과 농경문화. 독일언어문학, 0(42), 213-232.

 

이를 통해 여성의 생산성이 대지의 생산성으로 비견되며 식물의 성장주기와 관련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과정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다시금 씨앗이 싹터 성장하고 결실을 맺은 다음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가는 곡식의 순환과정과 대비됩니다. 반면에 가이아-레아-헤라로 이어지는 여성 신들 사이에는 갈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신은 2대와 3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것은 대지의 생명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영원한 생산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되돌려지는 시간

 

소녀 글라우케를 아고리(소년)인 줄로 알고 남색 취향을 가진 귀족이 글라우케를 취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글라우케는 도망쳐서 히드라(티폰과 에키드나의 딸인 아홉 뱀의 머리를 가진 괴물)가 살고 있는 바닥이 없는 샘(아미모네 샘)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히드라를 조우합니다. 글라우케는 반인반신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며 공주나 귀족, 요정이나 여신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소녀일 뿐이지요. 하지만 지혜를 가진 소녀였습니다. 남색 귀족이 보낸 노예장의 추격을 피하면서 글라우케는 꾀를 발휘합니다. 글라우케는 히드라에게 바닥이 없는 샘물을 한 홉만 주신다면 바닥없는 마음을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상수리나무 열매 하나만 한 거짓말이라도 한다면 목숨을 빼앗는 히드라에게서 글라우케는 안식과 행복을 찾게 됩니다. 

포세이돈의 저주로 바닥없는 샘에 묶여있는 히드라에게도 글라우케의 존재는 행복과 안식 그 자체였습니다. 히드라와 글라우케는 서로에게 우정, 사랑, 연민, 존중이 섞인 필리아적인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라우케는 히드라를 포세이돈의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바닥없는 샘물 밖으로 나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듣게됩니다.

그런데, 글라우케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됩니다. 영웅 헤라클레스가 괴물 히드라를 처단한다는 소식을 듣게됩니다. 글라우케는 괴물 히드라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바닥없는 샘물로 향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더 빨랐습니다. 잉걸불로 히드라의 뱀 머리를 지져서 태워버리고 히드라의 머리를 베어버린 뒤였습니다.

글라우케는 큰 상실감에 빠졌지만, 주저앉아서 울고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히드라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신들이 알아챘을까요? 대지의 여신 가아아와 그녀의 딸 레아가 글라우케 앞에 현현합니다. 글라우케는 여신들에게 간청합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요.

가이아의 손녀이자 레아의 딸인 데메테르 여신이 페르세포네(하데스의 아내, 지하세계의 여왕, 데메테르의 딸)를 만나지 못하게 하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순환을 막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여신들은 글라우케의 간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만나지 못하여 시간이 흐르지 못하게 됩니다.

글라우케는 바닥없는 샘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괴물 히드라가 살아있습니다. 글라우케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고, 헤라클레스를 속이기로 합니다. 그렇게 글라우케의 지혜로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죽였다고 착각하게 되었고, 포세이돈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조건(제우스의 핏줄을 속여라)을 충족합니다.

 

 

 

 

5. 결어

 

다 쓰고보니 리뷰글의 분량이 원고지 63매나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제가 길게 쓸 정도로 <바닥없는 샘물을 한 홉만 내어주시면>은 정말 재미있고 훌륭한 중단편 소설입니다. 다들 일독해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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