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은 케이스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떠오르는 사건이 몇 가지 있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피해자의 탄원과 국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처를 통하여 형량을 감경해주는 사법부의 행보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의 리스크를 고려하여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건 알겠지만, 그건 피해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 때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를 합당한 선의 처벌이라고 볼 것인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겠지만, 국민 여론마저 지나친 선처라고 간주하는 형량은 피해자에겐 합당한 처벌이 될 수 없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소설에서는 사적제재를 선택한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인권단체로 위장하여 동은에게 접근, 법적으로 최고형을 구형받을 수 있게 덫을 놓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은에게 7년 형을 선고했던 판사의 딸이 새로운 피해자로 전락한다. 무고한 피해자가 생긴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기서 또 생각해볼 거리가 하나 있다. 판사의 가족이 범죄 피해자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은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유아퇴행이 온 판사의 딸과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모두 얻은 기존의 피해자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얻었다. 가해자도 동일하다. 그러나 처벌의 수위는 다르다. 나는 형량이 이렇게 차이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동은은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그것과는 논외로 이 처벌에 판사의 복수심이 들어가있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보이스피싱 범죄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도 한 판사가 사기를 당해서라던가? 자기들 일이 되면 사적 감정을 섞어 처벌 수위를 높이면서 왜 다른 피해자들의 복수심은 반영하지 않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구성이나 사건 전개 방식이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