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장르는 오랜 기간 여러 팬들의 지지를 받아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 절대 권력 아래 지배받는 꿈도 희망도 없는 사회 구조를 기반으로 묘사되는 디스토피아 장르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반복 재생산되곤 해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주제다. 법위에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들이 등장하는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전쟁에 패배한 인간이 기계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매트릭스, 건카타 액션으로 유명한 이퀄리브리엄은 약물로 감정을 배제해서 민중을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디스토피아를 테마로 한 유명작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꿈도 희망도 없는 억압된 사회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반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디스토피아 장르는 얼핏 비슷비슷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수 작품들이 본인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채 굉장히 독창적인 내용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현재의 체제와는 전혀 다른 상상 속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고 마치 시뮬레이션처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하다 보니 작가 고유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서 그렇게 느껴지는듯 하다.
본 작품 – 콘크리트 역시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도 핵전쟁 이후로 유추되는 세상 속 사회는 이미 콘크리트 돔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닫힌 사회이며 닫힌 사회가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모두가 통제당하고 억압받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작품의 진행 구조 자체는 기존의 여러 작품들에서 봐왔던 형태를 무리 없이 따라가고 있다. 지배층에 붙어있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대항 측으로 돌아서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미 클리셰처럼 오랫동안 쓰임 당해온 내러티브다.
독특한 것은 작가의 글쓰기 방법인데 마치 주제 사라마구(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러하듯 말 따옴표를 거의 쓰지 않는 형태의 대화 묘사가 섞여있다는 점이다.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주로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대화를 문단속 문장에 포함시켜버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들을 독파할 때도 이러한 방식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해당 글쓰기 방법의 장점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작가의 역량에 따라서 대화의 주체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발생하는데 고의적으로 이러한 교란을 초래했다면 무슨 이유에서인지도 궁금하고. 어쨌든 빠른 진행 자체는 특징으로 생각된다. 대화 몇 마디에 페이지를 몇 장이나 소모하는 일 없이 문단 하나로 휘리릭 넘어가는 부분은 꽤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요소들로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집어넣은듯한 여타 작품들의 오마주다. 기준선 테스트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떠올리게 하고, 불임 사회에서 임신한다는 설정은 칠드런 오브 맨이 떠오른다. 오마주라고 생각한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닌 그저 글의 일부 챕터를 꾸며주는 역할이나 극의 장치적 요소로 그치기 때문이다. 작가의 취향이 살짝 엿보인달까.
전반적으로 작가가 본인의 문장에 심취해 글을 써 내려간 부분들이 종종 보인다. 좀 더 간결해야 할 부분도 현학적이거나 비유적인 요소들이 살짝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에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인듯한데 적당히 압축할 부분은 압축하고 들어낼 부분은 덜어내는 것이 더 전달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게 미력하나마 본인의 의견이지만,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이래라 저래라 할수는 없으니 그냥 본인의 헛소리 중 하나로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반대로 이러한 문장들 덕분에 극의 비참함이나 갈등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들이 잘 드러나는 편이다. 일장일단이 있다.
다만 그러한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나 후반부 행동에 있어서의 당위성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딱 이거다 하고 내놓기가 애매하다는 것은 글을 읽은 본인의 미숙함 탓일 수도 있고, 그저 작품의 힘이 조금 약해서 일수도 있겠다. 작가만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고, 주인공의 행보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면이 있지만 글의 전개 방식이 심플함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구성 요소들이 조금 어지러워 힘이 빠지는 측면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글을 다 읽고 보니 작가의 작품이 상당수 있던데 한번 다른 작품들도 도전해 봐야겠다는 말로 맺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