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나게 기발한 세계관에 반전까지! 이건 뭐, 안 읽으면 손해다 감상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대신의 삶 (작가: Mano,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4월, 조회 48

담백하고 덤덤한 어조로 몰입감 있게 서사를 쌓아서 끝까지 몰입하게 하는 소설 <대신의 삶>. 감정이든 문장이든 많이 덜어내며 쓴 글이라 생각했고, 바로 그 덜어냄의 미학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설정 역시 흥미롭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찬스’가 생겼다. 죽어버린 자식 대신 늙은 어미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CEO나 정치인 혹은 스타 대신 일반인이 1대 1로 ‘목숨’을 교환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대신해서 날 죽이고 그 사람을 살려주세요”라는 광기에 가까운 소원을 들어준 건 다름 아닌 ‘검은색 큐브’다. 1년 전 별안간 세계 각 도시의 상공에 나타난 큐브는 이렇게 말했다. 말소리가 귀를 통하여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직소통된 말은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시점부터 죽은 이를 살리고 대신 죽고 싶은 이가 있다면 저희 접수처에 대신의 삶을 접수 요청하여 주십시오. 더욱 자세한 사항은 각 정부의 행정부로 전달하겠습니다. 단, 전체 엔트로피에 생기는 영향을 막기 위해 어떤 죽음이든 같은 조건을 적용합니다. 한 사람의 목숩을 다른 한 사람의 목숨으로 1:1로 공정하게 대체해드릴 것입니다. 해당 절차는 1년 후, 단 한 번 단발성으로 실행됩니다”

 

목숨을 바꿀 수 있다는 말, 얼마나 매혹적인가. 죽은 자의 관에 산 사람을 함께 묻었던 ‘순장’ 풍습이 유행하던 시절에 그 순장 당하는 대상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 비 인간적으로 장례가 진행되기도 했던 것처럼 똑같다. 누구보다 열렬하게 ‘대신’ 죽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돈의 유혹이나 타인의 협박에 못 이겨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어 놓게 생긴 사람들이 늘어난 거다. 주인공 지민은 ‘대신의 삶’ 요청을 접수하는 상조복지부의 콜센터 계약직 직원이자, 폭력적인 전남편이 사망한 이후 ‘대신의 삶’을 시어머니로부터 강요당하는 불운한 여인이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것은 기발한 설정에 더하여 인간의 감정, 그 기묘한 사건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요인을 참 잘 다루었다는 부분이다. 자의가 아닌 것 같은 ‘대신의 삶’ 접수를 받으며 회사의 부속품처럼 살아오던 지민이 그것에 반기를 들고, 전남편의 집에서 시어머니와 마주하는 순간은 숨마저 잠시 멎게 할 만큼 몰입감이 좋았다. 또한, 거기에서 마지막까지 단숨에 달려가며 ‘반전’을 선사한 부분은 한번 더 읽기도 했다. 매력적인 설정과 탄탄한 서사, 반전까지 단편 구성에 딱 맞는 소설이었으므로 추천한다. 특히 그 반전은 ‘1:1로 공정하게 대체해드리는 것’이 단순하게 ‘목숨’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서 임팩트가 강렬했다. 여기까지만 쓰고 아껴두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을 직접 읽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사람이 다르기에 저마다 느끼는 감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나,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번호 4번과 5번의 순서가 바뀌고 4번 앞에 지민이 살짝 주저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던 지민이 대신 죽으러 가는 여인을 그냥 방임하다가 버스가 멈추자 마자 여자를 구원해낸다는 건데 이 부분의 감정이 내게는 조금 설득력이 떨어졌다. 외면하고 가려고 하다가 ‘무언가’의 계기를 통하여 자신이 무수하게 방임해 온 대신의 삶이 떠오른다면, 결정적으로 바로 그 망설이는 순간에 대신의 삶을 독촉하는 시어머니의 문자가 온다면 지민의 ‘행동’에 큰 발화점이 되지 않을까. 지민이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세팅해서, 그 ‘행동’이 방아쇠가 되고, 그 ‘행동’에서 이어진 상태로 시어머니에게까지 간다는 흐름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도 흐름상은 그렇게 구축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 더 쫄깃한 긴장감을 더하라면 순서를 바꾸고 지민에게 살짝 더 딜레마나 고민의 순간을 주어도 좋을 거 같아서 사족을 길게 달아보았다.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이후에 쓸 글이 더욱 기대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나도 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뭔가… 창작욕이 샘솟는다고 해야할까. 약간의 질투심도 있었다고 해두자. 이 말들이면 추천사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니 후루룩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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