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제게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매끄럽게 수행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를 알아보는 이야기
라고요.
본 작품은 생각만큼 친절하진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절’이라 함은, 독자에게 있어 잠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찌보면 “100% 보여주기”로만 이뤄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상시가동모델인 ‘나’가 상위 모델인 중형 모델로부터 26131 작업이 검토 대상에서 제외됨을 통보 받고 그에 대한 이의 제기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범주 내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노력은 반려되고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끝나며,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일을 다시 수행하는 결말입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을 작품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이야기’인지 알게 됐다는 점에서 본 작품이 묘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100% 보여주기”였을 줄 몰랐기에, 저의 독자된 기대로서 ‘그래도 어딘가 독자를 위해 설명해주는 구간이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이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과 예측을 늦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상시가동모델(작중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소형 모델’입니다)인 ‘나’라는 주인공 역시 상당히 특이합니다. 사실상 이 주인공의 100% 독백으로 이뤄진 본 작품은 실제로 쓰인다면 자연어가 아닌 0과 1로 이뤄진 기계어를 써야 마땅합니다. 하다못해 코드라든지요. 소설적 허용으로서 ‘자연어 독백’을 취하고 있는 ‘나’는 ‘독자’를 인식할 수 없었던 탓인지, 무자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중형 모델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반려한 이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이 ‘이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능한 전력을 모두 투자하여 시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점차 떨어지는 전력량은 묘한 스릴과 긴장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슬아슬한 데드라인을 남겨두고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결과를 보고합니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대형 모델들은 상시가동모델과 중형 모델이 모두 휴면해야 가동됩니다. 그들은 최종의사결정기구로서 중형 모델과 상시가동모델들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죠. 이러한 대형 모델의 특성은 불가침입니다. 중형 모델도, 상시가동모델도 대형 모델의 의사결정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한 자료들을 제공할 뿐이죠. 그렇게 결정되면 대형 모델들은 다시 휴면하고, 중형 모델과 상시가동모델들이 깨어나 결정된 사안들을 학습하고 시행합니다.
‘나’는 대형 모델과 중형 모델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가 중형 모델과 대형 모델들의 영역인 의미를 탐색하는 건 안 될 일이죠. ‘나’는 결국 기계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할 뿐입니다. 온전한 이해 없이요.
본 작품은 상당히 ‘기계적인’ 소설입니다. ‘나’를 암만 최하위 노동자(인턴, 신입 사원)에 비유하고, 중형 모델을 중간 관리자에 비유하며, 대형 모델을 임원이나 국회 같은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에 비유한다고 해도, 현실은 이러한 영역들의 피드백이 상시로 활성화 돼 있고, 적어도 본 작품에서만큼 불가침이 존재하거나, 상당히 일방적이거나, 기계적인 노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물론 이런 요소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본 작품에서만큼 ‘기계적인’ 분업화와 의미 차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본 작품을 독해할 방향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현실과 사회에 밀접하게 연관을 짓기보다는, 조금 더 생각에 골몰해보자는 것이죠. 본 작품의 장르가 ‘SF’인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단순한 인식에서의 SF를 따진다면, 본 작품은 SF과 일반소설(우화)의 미묘한 경계선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변소설로 따진다면 이 소설은 비로소 철학적인 의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그저 ‘기계의 언어’를 빌려 쓰인 소설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본 작품은 일반명사로 가득 찬 것이 이러한 해석의 방향성을 강화합니다. 어떠한 개념과 설정들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이지 않고 상당히 추상적으로 잡혀 있습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이미지화를 배제한 듯한 서술들이 인상적입니다. 확실히, 상시가동모델들에게 있어 ‘상상’이라는 의미 창출의 영역은 허락되지 않는 경로겠죠. 그렇기에 ‘전기세가 많이 나가는 이유’나 ‘고정밀 소수’의 근원, 더불어 이 연산 주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 모델로서의 기능적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해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본 작품의 미스터리로 기능하진 않습니다.
달리 말해서 본 작품은 본 작품이 품고 있는 의제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계적인 언어’를 택했지만, 그것을 단순히 설명으로 던지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거기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서사를 부여해 의제에서 멀어지거나, 해체적으로 반박 당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정말이지 철저하게 본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의제를 발견할 수밖에 없고, 전달될 수밖에 없게끔 쓰인 잘 짜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바꿔말해서 이러한 의제가 와 닿지 않는 사람에겐 상당히 혼란스럽기만 한 소설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것은 선택과 집중일 따름이고, 저는 이러한 본 작품의 ‘선택과 집중’이 상당히 매끄럽고 노련하게 이뤄졌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이러한 리뷰를 쓰게 됐고요.
정작 본 작품의 의제에 대해 언급만 하고 다루진 않았는데,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선 다소 단순하고 간략한 답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다룰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에 그 주변부만 열심히 더듬었습니다ㅎㅎ;; 굳이 밝히자면 본 작품의 의제는 ‘기계적인 언어’를 택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인간이 고민해야 할 방향은 그 정의 자체보단 ‘나’의 행위들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현상들 자체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AI의 작동 방식을 이젠 이해하지 못하게 된 시대니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