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하면 상투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화투패, 트럼프카드, 슬롯 머신. 쌓여가는 칩들과 오고가는 돈뭉치 속 서로가 속고 속이는 그림.
이 비건전함은 ‘교실’이라는 단어와 만나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뭐지? 학교 일진들이 교실에서 도박으로 난장판이라도 만드나? 하는. 이런 불온한 상상은 ‘내기’라는 단어 때문에 더욱 부풀어 오른다.
안다. 이렇게 극단적인 방향만을 상상하게 되는건 내가 ‘오염’되었기 때문이란걸. 다른말로 하자면 때가 탄거고.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몇몇 사회면 뉴스의 강렬함들이 하나의 편견을 만들어 냈다는 걸.
사회면에 나는 뉴스들이라 본래 자극적이고 희소성있는 것일 수 밖에 없다. 흔하고 평범한 것- 예컨대 내가 오늘 아침식사로 아메리카노 한잔에 토스트 한쪽을 먹었다던지, 옆집 김씨 아저씨가 오늘도 쾌변 배출에 성공했다던지 하는 것-들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매일 성실히 등교하고 수행평가 내고 학원가고 시험 치는 착실한 고등학생의 모습은 뉴스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가지는 힘은 강대한지라 반복해 10대 범죄 뉴스만 접한 나는, [내기+도박+교실 =10대 범죄]라는 기묘한 공식을 도출해 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했던 것이 미안할만큼, 글은 지극히 평범한 교실에서 발랄한 학생들과 함께 펼쳐진다.
처음 과제 몰아주기 제안으로 시작된 내기 도박은 생기부에 올라갈 내용이라 안된다는 의견과 함께 가라앉는다. 그러나 몇몇의 도박 열기는 피끓는 그들의 젊음과 열정, 열기를 타고 온 반으로 퍼진다.
과제 몰아주기 내기가 끝난 후, 아이들은 다음 내기 거리를 정한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고가던 끝에 아이들은 ‘이것’을 걸기로 하고, 마지막엔 내기 결과 성실히 이행한다. 무엇을 걸었는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내가 흔히 말하는 ‘엄마미소’를 지으며 글을 읽은 이유는 여럿있지만 유독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곳은 학생들의 ‘다음 내기거리 정하기’ 회의 장면이었다. 여기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미덕을 마음껏 뽐낸다.
나와 다른이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 자신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요소를 추려내는 것, 여러 의견들을 자유롭게 개진하되 다수결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형편이 어렵고 소외될 수 있는 약자를 배려하는 것, 의외의 것을 받아들이는 탄력성, 가장 궁극적인 문제를 왁자지껄한 회의 속에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까지!
아이들은 누군가 소외되거나 열외되지 않도록 애쓴다. 게임 규칙을 모르는 친구를 가르쳐주고 돈이 없다는 친구를 배려한다. 그들은 스스로 룰을 정하고 마지막엔 성실히 이행한다. 마지막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꼼수를 쓴다해도 다른 친구들이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이기적으로 자기 욕심만 쫓는 아이도 없다. 상호 비방도, 무조건적 편가르기도, 말장난과 속임수도 없는 이 아이들의 회의는 여의도 어딘가의 누구들보다도 훨씬 성숙하고 아름답다.
그리하여 나는 초반 세속에 찌든 눈으로 냉큼 불온한 상상부터 펼쳤던 점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안에는, 음침한 내 예상과는 다르게, 소소한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젊은 한시절을 더욱 찬란하게 채색할 줄 아는, 어리지만 현명한, 아주 사랑스런 도박꾼들이 있었을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