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한 공포, 허수아비와 만나보시렵니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허수아비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3월, 조회 43

허수아비, 이미지부터 섬뜩하다. 뭐랄까… 서양 사람들은 삐에로를 보면 공포를 느낀다는데 나의 경우는 허수아비다. 실제로 많이 본 적도 없으면서, 영상 매체나 콘텐츠에서 외다리로 선 채 옷을 바람에 나부끼는 기묘한 형상의 그것을 접하게 되면 괜히 오싹하다. 인간을 닮았고, 먼발치에서는 인간처럼 보이나, 인간이 아닌 존재니까. 불쾌한 골짜기를 느낄 만큼 인간과 닮은 외양도 아닌데 어째서 그럴까 생각한 적 있었는데 이 소설 <허수아비>를 보며 호기심이 풀렸다.

다름 아닌, 인간의 옷을 걸치고 있어서다.

한 사람이 죽고 나면 우리는 그이를 추억하며 그가 입고, 썼던 물품을 불태운다. 특히 옷이나 구두, 가방을 태우지 않고 중고상점에 팔았거나, 훔쳐서 썼을 때 겪게 되는 에피소드는 공포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다. 옷이나 악세사리, 소품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딱 알 수 있을 만큼 취향이 깃들어서도, 사람들이 옷이나 액세서리를 자신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썼기 때문도 있을 테다.

그런데 그러한 복잡한 것들 다 접어두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만 생각해봐도 ‘의식주’의 해결이다. 패션에 별로 관심 없고, 같은 옷만 계속 입는다거나, 옷에 돈을 쓸 여유가 없어서 단벌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그 ‘단벌’을 그 옷으로 택한 이유가 있고, 저 나름의 소비 목적을 갖고 옷을 살 정도로 ‘의미’가 담긴다. 단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품에 불과했던 것이 사람의 손을 탄 순간 ‘또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 어쩌면 그래서, 옛 사람들은 오래도록 손때가 묻은 물건에 영이 깃들면 ‘도깨비’가 된다고 믿어왔던 건지도 모른다.

다시, 소설 <허수아비>로 돌아가자면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것도 ‘넋’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길게 옷에 대하여 썼던 것과 별개로 이 소설에서는 옷이 중심이 아니다. 그저 내가, 우리가 어째서 허수아비를 섬뜩하게 여기나 생각해 보다 보니 이러한 결론에 다다른 것뿐이다.

소설 <허수아비>의 주인공을 말하자면, 비가 쏟아지던 날, 카메라맨 최군과 함께 아이템을 찾아서 강진으로 향하던 김 피디다. 혼자 여행 하던 아내 은영이 산 위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져 죽은 사고 이후 주인공의 마음 한구석은 뻥 비어 있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내를 등한시 하는 동안 아내는 죽었고, 지금껏 시체마저 찾지 못해서다. 심란한 마음처럼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득달같이 비가 몰아닥쳐서 두 사람은 국도로 빠지는데, 바로 여기서 이상한 여자가 김 피디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저씨도 누구 찾아?”

대뜸 누굴 찾느냐고, 어딨는지 아니까 데려다 주겠다던 여자는 차에 시동이 안 걸린다는 최군의 외침에 놀라 달아나기 시작하고, 김 피디가 그 여자를 쫓아 달려간 끝에 도착한 ‘기묘한 공간’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음울한 표정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뒤뚱거리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들판의 둑, 김 피디는 바로 이곳에서 그들과 똑같은 표정으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아내를 본다. 아내를 불러보지만 답 없는 메아리에 당황하던 찰나, 최군이 최피디를 찾아오면 그 무수한 사람들은 모두 ‘허수아비’로 바뀐다.

– 뭔 놈의 허수아비들을 둑에다가 쭉 세웠답니까?

여기까지는 멀리서 봤으니까, 인간의 옷을 걸치고 있으니까, 비가 오는 흐린 날이니까 허수아비를 사람처럼 오인할 수 있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소설이 참, 진행될 수록 기묘하다.

최군은 프로그램 아이템으로 좋다며, 둑 위의 허수아비에 관한 인터뷰 차 바로 옆에 자리한 집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은 왜소한 노인과 만난다. 이 소설에서 그 집의 풍경과 분위기, 노인에 대하여 묘사해둔 부분이 좋았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듯 분위기를 잘 만져두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사도 잘 썼기 때문이다.

– 허수아비들을 보았소?
– 네?
– 아, 오는 길에 보지 않았소?
– 내, 보았습니다. 꽤… 인상적이더군요.
– 내 취미요. 유일한 취미. (중략) 암튼, 저 연놈들 만드는 게 꽤 재미나. 낄낄.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 이 대사를 보면서 자꾸만 허수아비가 허수아비가 아닌 이상한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김 피디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장면에서부터 뒤 이어지는 이야기는 꽤 스펙타클한데, 스포를 막기 위하여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허수아비를 만드는 노인, 허수아비에게 홀린 자, 허수아비의 비밀, 그 비밀을 쫓던 끝에 비밀에 먹히게 되는 김 피디의 에피소드가 ‘핵심’이다.

허수아비가 사실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소설에서 쓰는 장치가 ‘넋 건지기 굿’인데 굿이나 샤머니즘을 좋아하는 입장이어서 더 몰두하며 읽었다. 추측컨대 그 굿에서 발상을 차용해 온 건 맞는 거 같은데, 이 소설의 분위기에 맞게끔 살짝 변형되어서 더 흥미로웠다.

무드 형성과 재밌는 발상, 끝까지 끌고 나가는 힘, 김 피디의 말로가 흥미로웠던 이 소설. 아쉬웠던 점은 장소와 장면이 휙휙 바뀌는 편인데, 공간이나 시간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서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는 구간이 가끔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과 그 일행이 어디쯤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조금 더 적확하게 보여준다면 더욱더 매력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허나 이 자체만으로도 나는 허수아비에 ‘홀린’ 김 피디처럼 이 소설에 ‘홀렸’으니 이 리뷰를 읽고 궁금해진 당신이라면 이 소설을 한번쯤 읽어보도록. 스포가 될까봐 쓰지 않은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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