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앓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늘 죄책감이 듭니다. 제가 건강하다는 사실이 죄스럽습니다. 건강 자체도 그렇지만, 건강함으로 인해 비롯된 제반 고민들, 일상들, 모든 요소들이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 하나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난 뭐가 아쉬워서 끼니를 거르고, 잠을 설치고… 이러한 이입이야말로 불행의 재생산이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증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성의 덮개로 눌러둔 마음의 기저에는 늘 부끄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변주머니로 시작하여, 짧은 글에서 연이어 닿게 되는 병마, 죽음은 스산할 정도로 독자와 거리가 가까우며 압축적입니다. 이 소설은 마치 독자기 병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똑똑히 환기하라는 듯이 들이닥칩니다. 절망에서 시작해 더 큰 절망으로, 보다 큰 절망으로 우하향 하다니. 여기에 귀속된 존재이자, 독자와 소통하는 존재인 화자가 이렇게나 무력하다니.
앞으로 귤, 오렌지. 소화기관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과일을 볼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 나고, 한 번씩 생각에 잠기게 될 거 같습니다. 만약 그 과일들을 먹지 못할 정도로 죄스런 마음이 앞선다면, 저도 혀나 장에 영구적인 상처를 입은 것과 같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고 그저 그 신맛이나 단맛을 조금 더 새로이 음미해보는 선에서 그칠 거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읽게 된 불행에 죄책감을 느끼는 마음이 돌연 건강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채로 그렇게 된다는 점이 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