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얄미워… 이렇게나 잘 쓴 동양풍 로맨스라니!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사랑군 (작가: 한정우기,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2월, 조회 189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말하자면, 이 소설 <사랑군>은 오랜만에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단숨에 다 읽자마자 친구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추천사’를 전했으며, 링크를 공유했다.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빨라서다. 나는 말랑말랑한 멜로보다는 ‘극적인’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며, 운명이 서로를 갈라놓는 ‘동양풍’ 판타지면 더더욱 좋다. 이 소설 <사랑군>은 실로 간만에 나의 그러한 ‘욕망’을 충족했다. 소설 <궁에는 개꽃이 산다>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그 작품이 2007년에 출간됐고, 내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것만 생각해봐도 실로 간만이다.

너무도 답답해서 내가 직접 쓸까 하다가 그마저도 쉽지 않아 묵혀두던 중에 마음을 달랜 거라곤 드라마 뿐이었다. 운명의 회오리 속에서 고통받는 연인을 다룬 중국드라마 <삼리삼생 십리도화>, 중국드라마 <보보경심>과 그것을 리메이크한 <보보경심 려>를 보며 잠시 허기를 충족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운명’이 갈라놓은 두 연인과 서로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었는데, 일부는 충족됐지만, 과정과 결말에서 아쉬운 지점이 분명했다.

사설은 이쯤하고, 소설 <사랑군> 소개를 하자면 저승의 경계와 맞닿아 있어 인간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다리, 단교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여인과 그런 그녀를 사모하는 뱀 요괴가 주인공이다. 인간을 사랑해선 안 된다는 금기를 넘어 속절없이 여인에게 빠져드는 뱀 요괴의 심경을 절절하면서도 아리땁게 담아낸 ‘문장력’이 압권이다.

단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만 그쳤다면 지금처럼 홀릭하진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 둘 사이에는 300년 전의 ‘과거’가 있었다. 소정이라는 이름의 백사와 그녀의 연인 허선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그들은 운명의 방해로 갈라서야만 했고, 기이하게도 뱀 요괴가 사모하게 된 인간 여인의 이름 역시 소정이다. 300년 전의 그 뱀 요괴일 리 없지만, 기이한 ‘과거’를 갖고 있는 듯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간 여인과 ‘무언가 중요한 기억을 잃은 거 같다는’ 뱀 요괴의 사랑, 결말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단숨에 읽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설명과 장면, 대사를 적재 적소에 넣는다는 점에 있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배경이라 자칫하면 세계관만 설명하다가 재미 없게 끝날 수도 있을 것을, 이 소설은 기가 막히게 그 세상을 눈 앞에 ‘가져와 보여’준다. 꼭 설명이 필요한 순간에 기가 막히게 들어오는 타이밍이라니… 소설 읽으면서 오랜만에 반성했다. 브릿G 글을 리뷰하다 보면 독자가 아닌, 창작자의 시선을 갖고 소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경우 얄밉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나의 과제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장면을 구성하면서 세계관 설명을 껴넣을까 하는 것인데 이 소설이 이미 잘하고 있어서다. 허나, 동시에 ‘오히려’ 고맙다.

이 소설이 잘 해낸 덕분에 나 역시 참고할 ‘교재’가 생긴 셈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잘 쓴 글을 보면 질투하다 끝났는데 이제는 탄성을 내지르며, 어떤 부분이 특히 좋았는가 생각하는 형태로 생각을 바꾸었다. 동양풍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 소설의 첫 문단만 읽어봐도 알 테다. 저 미려한 심리 묘사와 눈 앞에 보이는 듯한 장면 묘사 그리고 목이 마를 때만 등장하는 세계관 설명이라니! 문장이 담백해서 몰입감이 더 살아났다. 대사도 말맛이 살아 있었지만, 특히 뱀요괴 시점에서 토로하는 말이 좋았다.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 나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 아, 이 욕심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여기는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장면’이 매혹적이었다.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라는 선덕여왕 속 미실의 대사를 좋아하는데 딱 그런 사랑 같다고 해야 할까. 사랑이 어찌 다 말랑말랑하기만 할까. 아귀처럼 입을 쩍- 벌리고 모든 걸 아낌없이 집어 삼켜버리는 괴물과도 같은 면모가 있는 것 역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상을 뒤흔들고, 내 마음과 심장을 볼모로 삼아버리니 말이다.

감탄하며, 질투하며 읽은 이 로맨스 소설 <사랑군>. 소설이란 취향의 영역이기에 나만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읽어보길 바란다. 취향을 떠나 잘 쓴 소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뜻깊다. 마지막 엔딩의 여운 역시 긴 편인데, 아쉬웠던 점을 하나만 고르라면 분량이 짧은 게 아쉬웠다. 뒷이야기가 더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했다. 뒷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또 어떠한 내용이 될까. 동력이 생겼으니 나 역시 쓰고 싶었던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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