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형 하드보일드란 무엇인가
하드보일드(Hard-boiled)라는 단어는 원래 ‘계란이 완숙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그것이 문학 용어로 전용되면서 ‘비정·냉혹’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특히 사회적인 사건을 건조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묘사하는 것. 자극적인 감정묘사를 배제하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것. 그것이 하드보일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왔는가.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의 저자 김봉석은 그 기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드보일드는 세계에 대한 절망에서 출발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했다. 전세계가 휘말려들어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미증유의 전쟁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회의를 부추겼다. 또한 장밋빛 미래만이 약속되었을 것만 같던 자본주의의 모순이 격발하면서 대공황이 일어나자 희망은 점점 희박해졌다. 인간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절망, 결국은 그런 회의와 절망이 하드보일드를 낳았다.
그러면 한국형 하드보일드는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절망’이 가장 선명하게 들이닥친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 소설은 그 시점을 IMF 직후로 지목한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인에게 1차 세계대전에 비견할 만한 충격이었다. 평생 직장이라는 신화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믿음이 통째로 흔들렸다. 자본주의가 약속한 미래가 얼마나 허망하게 증발할 수 있는지를, 한국 사회 전체가 하루아침에, 동시에 목격했다. 경식이 무심하게 내뱉는 “IMF에 그룹 풍비박산 나기 전까지”라는 대사 한 줄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절망의 시대 위에 서 있다. 영도와 경식은 ‘본부’라는 과거 조직에서 이미 떠났고, 지은은 가족과 제도로부터 스스로 이탈했으며, 집회 현장은 구호를 외칠 의욕따위 없다. 모두가 무언가를 잃은 이후의 시간을,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다운 건조한 눈초리로 응시한다. 이 소설이 ‘한국형 하드보일드’일 수 있는 근거다.
2. 장소적 선택 — ‘부산 정서’와 버려진 경기도
하드보일드는 배경을 꽤나 가린다. 아무 도시나 되는 것이 아니다. 하드보일드의 무대는 화려함과 부패가 공존하고, 시스템 바깥의 인간들이 서성이는 공간이어야 한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그 공간은 한동안 부산이었다. 영화 <친구>를 필두로,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쏟아진 이른바 ‘폭력배’ 소재의 하드보일드적 영화들은 으레 부산을 배경으로 삼거나 부산 출신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상도라는 극보수적인 지역색과 두드러지는 사투리, 항구 도시 특유의 거칠고 남성적인 질감, 중앙에서 비껴선 변방의 정서, 골목과 바다가 공존하는 지형. 이것들이 한국형 하드보일드의 공간적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소설도 그 계보 위에 선다. 영도와 경식은 부산 출신이고, 경식의 말투에는 서울말에 미처 녹아들지 못한 부산 사투리가 섞여 있다. ‘행님’이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 어중간한 억양 속에, 고향을 떠나 서울 근교에서 자리를 잡은 한 남자의 내력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자가 위치한 현 시점(2026년)을 고려하여 잘 설계된 지점은, 부산의 정서를 가져오되 장소로서의 부산은 포기했다는 데 있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경기도다. 페인트가 벗겨진 아파트 외벽, 꺼진 가로등, 꽁초 가득한 현관 입구, 삐뚤어진 가설 무대. 소설이 그려내는 장소들은 하나같이 관리되지 않고 버려진 공간들이다. IMF 이후 전국적으로 번진 방치와 낙후의 풍경이, 부산 출신 인물들을 통해 하드보일드의 무대가 된다. 부산이라는 뿌리를 가진 인간들이, 서울 변두리의 버려진 땅을 걷는다. 그 조합이 이 소설 특유의 공간감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3. 캐릭터와 스토리상의 특징
1) 영도 — 말 없는 하드보일드 주인공의 교과서
소설은 영도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는 그가 왜 은단을 먹는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지은을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는지 직접 듣지 못한다. 대신 행동과 소품으로 모든 것이 전달된다. 은단통을 엄지로 여는 습관, 씹는 타이밍, 알갱이 수의 변화. 그 디테일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감정선이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고모부가 한 앉으라는 말에 다시 앉는 장면, 고모부가 발목을 잡는 손에 결국 ‘집에 가 계세요’ 한마디로 수락하는 장면, 경식이 괜찮겠냐고 걱정하는 말에 “갈게”라는 한 마디로 위험을 무릅쓰는 장면. 영도는 전형적인 ‘과묵한 해결사’지만, 그 과묵함 속에서 가족이나 동료를 완전히 내치지 못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보인다.
2) 고모부 — 애원하는 자의 두 얼굴
뿔테안경에 포마드로 넘긴 머리, 헐렁한 양복. 고모부는 첫 등장부터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는 영도에게 딸을 찾아달라고 애원하고, 다방에서 발목을 붙잡고, 목소리를 높인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다.
그러나 그의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균열이 보인다. “성인인게 뭐가 중요해”라는 말(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착한 애가 마귀가 씐 것”이라는 단정(뭐 그것도 어찌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딸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처음부터 ‘세뇌’와 ‘소굴’로 규정하는 시선. 그것은 부성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통제의 언어이기도 하다. 고모부는 딸이 위험에 처했다고 믿지만, 실은 딸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소설은 (아직-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있다 하셨으니) 그것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서는 영도의 시선을 통해 독자 스스로 느끼게 한다.
3) 지은 — 구원받을 피해자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은 지은이 ‘구출’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노래하고, 관객을 이끌고, 스스로 움직인다. 밤무대 의상의 반짝이, 붉은 큐빅 귀걸이. 영도가 처음 그녀를 포착하는 순간의 묘사는 피해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영도는 그것을 목격하고, 접근을 포기한다. 영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은에게 필요한 것은 구출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걸.
4) 경식 — 사투리로 완성된 조력자
제일 잘 만들어진 ‘전형적’ 캐릭터라 본다.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정보통 경식은 짧게 등장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라색 더블 마이에 포마드 올빽머리 그리고 양손 가득 반지는 누가봐도 한국 90년대 말 특유의 ‘건달 스타일’이다. 더 정확히는, 조직에서 나와 반쯤 양지로 올라온 남자의 복장이다.
‘보라색’ 더블 브레스트 정장은 당시 유흥업계나 ‘조직’ 주변부에 있던 남자들이 즐겨 입던 옷이다. 정장이니까 ‘사업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색깔과 핏이 일반 직장인과는 다르다. 제도권에 완전히 편입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바깥에 있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를 옷이 대신 말해준다. 노타이에 카라만 다른 셔츠도 마찬가지다. 격식을 갖추는 척하면서 실은 자기 세계의 문법으로 입는 것이다. 양손 가득 낀 반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당시 반지는 힘과 과시의 언어였다. 많이 낄수록 ‘나는 이쪽 사람’이라는 신호였고(실제로 그걸로 한대 맞으면 더 아프기도 하고…), 동시에 ‘나는 돈이 있다’는 광고이기도 했다.
종합하면 경식은 조직의 방식으로 돈을 벌고, 조직의 미감으로 차려입었지만, 부동산이라는 합법의 외피를 두른 남자다. 그 복장 하나가 그의 출신, 현재 위치, 그리고 영도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한 번에 보여준다.
4. 잘된 부분
1) 대사와 의성어의 현장감
작가님의 특징은 다른 리뷰어분도 말하셨지만, 대사에서 현장감이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나 또한 대사와 의성어에 공을 들이고, 자주 나오게 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 부분은 매우 마음에 든다.(얘들아 제발 말좀 해… 비명좀 더 질러봐…)
인물들의 말은 구어체로 살아 움직이고, “와드득”이라는 의성어 하나가 은단 씹는 소리를 넘어 영도의 긴장과 감정까지 전달한다. 대사를 자주, 그리고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경식의 서울말 섞인 부산 사투리는 억지스럽지 않고, 영도와의 관계, 위계 차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선배님 미안합니데이”, “영도 형님, 그기 가실겁니까?”라는 대사가 경식이라는 인물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사투리를 단순한 지역색이 아닌 캐릭터의 표현법으로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하드보일드 특유의 건조한 대화체와 잘 어울리면서 동시에 ‘한국적 하드보일드’ 배경을 잘 살린다는 점이 돋보인다. (덕분에 읽다가 잠시 배경을 부산으로 착각했다)
2) 소품의 서사화
겔로퍼, 삐삐, 다방, 동전 넣는 공중전화. 이 모든 것은 시대 배경이면서 동시에 캐릭터의 일부로 기능한다. 특히 은단은 전통적인 서양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담배 대신 쥔 무언가이자, 주인공의 긴장과 감정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씹는 알의 수가 늘어날수록 독자는 영도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3) 결말의 자제력
영도는 개입하지 않고, 지은은 구출되지 않으며, 아무도 극적으로 대면하지 않는다(아 물론 나중에 구출작전도 다루실 의향이 있다고 했지만).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야말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위 말하는 ‘해결사 장르’의 문법을 의도적으로 배반한 것인데, 그게 또 설득력 있게 작동한다.
5. 아쉬운 부분
소설을 읽을 때 두번째로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가독성이다.
가독성이 좀 아쉽다. 현재 소설은 대사와 일반 문장이 구분 없이 쭉 이어지는 구조라, 인물이 말하는 순간과 서술자가 묘사하는 순간이 시각적으로 잘 분리되지 않으니, 현장감 넘치는 대사들이 문단 속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어… 물론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정말로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때 서로 용도가 다른 부분은 분리를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굳이 하나 더 찾자면 고모부의 캐릭터가 살짝 약하다. 의뢰인으로서는 충분하지만, 그가 딸을 찾는 것이 진짜 부성애인지 아니면 통제욕인지를 더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지은이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 유추하기에는 고모부가 말하는 ‘사이비’, ‘마귀소굴’, ‘대학가더니 이상한데 빠진 거 같아’, 그리고 선교회가 찍힌 사진 정도 뿐이라, 사알짝 아쉽다. 두어줄 정도 고모부의 하소연으로 풀어놔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을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 IMF 이후의 영도도 그렇게 재개발 집회 현장 앞에 서 있다. 세상이 약속을 저버린 자리에서, 혼자 올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으로.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님의 도전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