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망각의 궤도 – 기억과 그림자의 미궁. 공모(비평)

대상작품: 망각의 궤도 (작가: 김서윤, 작품정보)
리뷰어: 슬픈거북이, 2시간 전, 조회 9

망각의 궤도 – 기억과 그림자의 미궁.

1.

이야기는 실내 지름 2.4미터의 작은 우주선 코쿤07호에서 시작합니다.

 

우주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사이즈.

목성 주변을 돌다 얻어맞은 운석에 얻어맞고,

그것은 그대로 주인공을 실어나르는 관짝이 되어버립니다.

 

산소는 희박하며, 찬기가 몰려오는 가운데, 남은건 고요한 우주.

주인공 안에서 들려오는 박동소리만이, 유일하게 남은 감각이 되어갑니다.

 

죽음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주인공에게 인공지능 시나프의 제안이 들려옵니다.

 

생존확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자.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장기 기억”을 소거하자고 말이죠.

 

간결하고 유혹적이며 잔혹한 제안.

주인공 승우의 영혼을 잘라, 육체를 보전하라는 이야기.

 

승우가 망설이는 그 속에서,

“살려줘.” “배고파.” 같은 고립초기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에러인지 악마의 유혹인지 모르게 주인공의 목소리가 재생된 것입니다.

 

그리고 승우는 시나프에게 하나씩 기억을 바칩니다.

‘부수적 삶’ ‘사회적 관계’ ‘가족’ ‘감정’과 ‘언어’

그리고 마지막 ‘자아’

 

승우가 그 모든 것을 바치는 그 순간.

세상이 암전됩니다.

 

사고 발생 210일.

구조대원들이 마침내 우주선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배설물로 뒤덮힌 조종석에서 벌거벗은 인간. 승우가 발견됩니다.

 

“괜찮으십니까?” 물음이 쏟아지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남은건 육신이라는 껍질 뿐.

그의 정신은 이미 기억의 저편이라는 미궁으로 넘어가버렸으니까요.

 

2.

가장 먼저 “망각의 궤도” 단편.

이야기의 구조를 먼저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리뷰를 결심한 계기가 “구조가 뚜렷하고 선명하다.” 였기 때문입니다.

 

간명하고 깔끔합니다.

사건(사고) -> 생존을 위한 무언가의 포기 (기억) -> 마지막. 역설적으로 사라진 정신.

 

혹자는 이걸 비난의 어조로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적으로 기억이 무슨 에너지를 차지하냐라던가.

생명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줄이려고라는게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

 

글쎄요. 그점은 좀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는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대목인.

 

우주선이 아니라, 육체가 아니라.

어딘가 먼 실체없는 “미궁으로” 정신이 빨려 들어갔다는 점이 있으니까요.

 

개연성을 희생한 댓가로, (등가교환이다. 연금술사.)

그보다 더 크나큰 상징 얻었으니 충분히 훌륭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구조가 크고 아름다워—!)

 

3.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을 쓰신 다른 작가님의 작품에도 자주 나옵니다.

기억 = 그림자 = 마법 =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메타포로 말이죠.

구조라는 표현을 그 때문에 붙였습니다.

작가가 작품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요.)

[ ex> 잿빛 숙청 7년 후. ]

 

그 의도가 무어든 간에 그 형태에서 비로소 독자가 (비평)_말할만한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이건 제가 정서타입의 독자가 아니라 그런면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남긴 태그인 실존주의적으로 말하자면.

리뷰어 입장에서 컵이라는 사물은 선뜻 정의내릴 수 없어도.

그것이 어떤 모양인지는 형태가 잡혔으니 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4.

저는 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기억이라는 소재에서

프로이트와 칼융을 떠올렸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가볍게 설명하자면.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하하.)

 

1)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이드(Id) – 에고(Ego) – 슈퍼에고(Superego)

이드는 가장 밑바닥의 충동입니다. 그저 욕망합니다.

에고는 현실을 다루는 조정자입니다.

이드의 충동을 처리해야 하고 / 외부 현실을 고려해야 하며 / 슈퍼에고의 도덕적 압박도 견뎌야 합니다.

슈퍼에고는 양심, 금지, 이상, 자기검열의 구조입니다.

 

2) 융의 정신 구조는 자아,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입니다.

자아는 “내가 나라고 느끼는 의식의 중심”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는 ‘나’입니다.

개인무의식 개인이 살아오면서 잊어버렸거나 억압했거나 의식에서 밀려난 경험들이 쌓인 층입니다.

집단무의식 융의 핵심입니다.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적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특정 기억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조직하고 상징화하는 ‘형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 형식이 바로 아키타입입니다.

 

더 깊게 들어가진 않겠습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 +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 + 소설 이야기에 중점하자 등의 이유로요.

 

그럼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네. 작가가 소설마다 하는 이 기억이라는 테마가,

바로 이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느꼈다는 이야기입니다.

 

5.

틀린 해석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선 3번의 이야기 처럼, 가장 가까운 형태를 골라내자면.

 

프로이트보다는 칼 융 그중에서도,

기억이라는 테마는 개인무의식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아라고 말하기엔 의식적이지 않고.

 

요즘 SF등에서 많이 이야기 되는 제행무상.

인간은 기억의 편린으로 구성된 존재라는 이야기라기엔, 내면의 탐구와 존재의 본질쪽이 부족합니다.

 

나도 모르는 나와의 교감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잿빛 7년)

칼융의 대표 아키타입인 : 내면의 쉐도우와 그리고 외면의 표층인 페르소나 간의 간극.

 

한마디로 자신 안에서와 인정과 통합이 때로는 대립이

결국은 이 작가님이 지향하는 작품들의 테마라고 감히 바라봅니다.

 

6.

작품에서 좋았던 점은 이 것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로. 껍데기만 남은 주인공 승우의 모습이,

압박에 의해 깎여나간, 딱 페르소나만 남은 인간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사회적 얼굴도 사라지고, 기억과 감정과 언어가 벗겨진 생물학적 잔존물만 남은 상태.)

 

이 작품에서 ‘기억’은 단순 기억이라기보다, 자아를 구성하는 개인적 심리 퇴적층이며,

그 중 상당 부분은 융이 말한 개인무의식에 가까운 방식으로 기능한다.

 

자아를 떠받치던 기억의 층위를 하나씩 제거함으로써

인간이 어디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결과 남는 것은 통합된 자기라기보다, 통합 이전의 텅 빈 껍질이다.

 

…이것이 과잉해석이라도 저는 좋습니다.

 

이야기의 형태가, 흐르는 결이 느껴지십니까?

특히 바깥의 미궁으로 사라졌다는 패러독스요. 구조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저는 이게 컵이 아니라. 혹여 변기일지라도. 분명 곡선이 주는 미학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뒤샹의 샘도 미학의 대상인 것 처럼요. 그렇죠?)

 

7.

이 작품은 기억 삭제를 소재로 한 생존 서사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층위를 희생하여 육체만 남기는 역설의 구조를 통해

자아와 기억, 존재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다.

 

저는 이 작품을 이상과 같이 결론합니다.

감사합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