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큰 지도 위에 그려진 세밀화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낙원과의 이별(수정 전-3월 15일 비공개) (작가: 이연인,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6월, 조회 277

1.

 작가의 말을 리뷰 쓰려고 들어와서야 읽게 되네요. 저는 단점을 잘 보지 못하는 납득이스러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쓰려던 리뷰 이외에 고쳐야 할 부분이 생각나면 적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에 단점이 있을리가 없는데)

일단 이 작품을 신나게 몰아 읽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종과 횡으로 방대한 소설이라고.

 그리고 두 번 째로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정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대하다기 보다는 세밀한 소설입니다. 물론 공지 사항에 올리신 <대원제국몰락기 – 대한제국 초기왕실 계보>를 본다면 ‘방대하다기 보다는’ 이라고 적인 제 문장에 적극적으로 반박을 하고 싶어질 듯하지만 역시나 의견을 고수해야겠습니다. 이 소설은 방대하기 보단 세밀한 소설입니다.

 

1-1.

 계보를 읽다보면 쭈욱 내려가는 스크롤만큼이나 얼마나 세세하게 인물을 설정해놓았는지 알 수 있죠.

 단순히 황제, 황후, 공주, 군주, 황군 같은 명칭이 등장해서 길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들 각각에게 어울리는 이름과 간략하게나마 어떠 어떠한 사건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적은 것만 보아도 벌써 국사라면 고개부터 흔드는 이라면 도망가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의 황제인 광서제는 원후에게서 딸을 다섯, 계후에게서 다시 딸을 셋을 낳고 이들이 다시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이러니 종적으로든 횡적으로든 아주 촘촘한 그물망처럼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계보를 모두 다 공부하고 외웠을 선우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대한제국에 본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계보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만해도 대통령들 이름과 대통령의 부인, 자식들의 이름을 대강이라도 외울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낯선 세계에 발들인 독자는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시작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종종 선우의 눈으로 선우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면 옆에서 예문소군이(이규원) 설명해줄테니까요. 그 때 따라가도 늦지 않습니다.

1-2.

 자 그럼 이제 단문응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누가 누군지 헷갈려요.” 문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종과 횡으로 세밀하게 짜여져 있는 이 세계에서는 한명이 하나의 호칭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하는 동요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그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주인공 황녀의 이름은 이진원입니다. 다만 진원은 황녀이자 친왕이기 때문에 ‘예현친왕’이란 호칭이 하사되었고, 그래서 진원의 동생들은 그녀를 ‘현왕야’ 라고 부르며 진원보다 언니는 ‘현왕’ 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녀가 운영하는 상사의 이름은 ‘현’문상사가 되겠고요.

황장녀인 첫째 딸 예영친왕 이명원의 몸이 약해 둘째이자 주인공인 진원이 황태주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맡지 않으려고 일부러 상업에 종사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계후는 자신의 장녀이자 현재 황제의 6번째 딸인 이효원을 황태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황태주는 태자랑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겠네요.

친왕이 되면 예O친왕이 되고, 그들의 남편이 되면 예O친왕공이 되니 처음에만 조금 헷갈리고 나면 나중엔 편합니다. 특히나 두번째 읽을 때는 더 매치가 잘 되고요.

간혹가다 그녀들의 아명이 나올 때가 있는데 보통은 7황녀 이소원이면 “兒(아이 아)”자를 붙여 “소아야”하고 부르는 편이니 이 역시도 외우거나 따로 기억할 필요 없이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아무리 써봤자 진원 하나에게 붙는 호칭이 너댓개 정도 되니 도입부에서는 특히 7자매가 다 모이는 5회의 경우 읽으려면 누가 누군지 따라가기만해도 벅찰 것 같긴 합니다.

작가님께서도 다 쓰고 난 뒤에 퇴고할 때 손볼 생각이시라고는 하지만, 저는 혹시라도 호칭을 줄이거나 간편하게 통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이름의 경우 그 사람을 어디까지 알고 어느 정도로 대한다 등등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목이나 이름을 중시하는 이유가 이것인데요.

가령 제 닉네임 Ello의 경우는 브릿G 이외에 어디에서도 저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오로지 유일하게 이 곳에서만 저를 Ello라 칭하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불러주시죠. 리뷰어이고, 자게에 종종 나타나는, 늑대의 프로필 사진을 쓰는 누군가 입니다.

진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현왕야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누님이고 누군가에게는 진려이죠. 각각에 담긴 감정과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현왕야”라고 부르면서 비꼬는 말을 한 5황녀 윤왕은 호되게 질책을 당합니다. 바로 그런거죠. ‘왕야’라는 호칭에 담기 뜻은 존경과 각별한 예의를 요합니다.

9회에서 쓰러지는 예문 소군을 보며 진원은 이렇게 외칩니다. “소군? 이규원! 규아야, 정신 차려라!” 하고 말이죠. 처음엔 대외적이고 거리감 있는 ‘소군’을 사용했다가 조금 더 다급해지자 본명인 ‘이규원’을 찾습니다. 그래도 쓰러지는 소군을 잡을 수 없으니 거리감 없는 아명인 ‘규아(兒)’를 써서 부릅니다. 일종의 점층법이죠. 이런 사소한 대화에도 호칭이 가지는 의미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호칭에 관한한 작가님이 굳건히 밀고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1-3.

  작품 속에서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나라가 있으니 바로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사미르입니다. 중동 쪽을 참조하신 것 같은데 제가 그 쪽을 잘 모르니 실제 사례를 거론하는 건 미뤄두고 작품 내에 있는 설정만 살펴보겠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꼼꼼한지 말을 잇기가 어렵네요.

간간히 등장하는 낯선 언어와 그 언어로 쓰여졌다는 시,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와 계급까지 성긴 곳이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5회에는 사미르인들의 혈통에 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딱히 스포는 아닌 것 같아서 가리진 않겠습니다.

 “그야, 술탄 가문에는 방계란 개념이 아예 없으니까요. 술탄 가문에서 자기 핏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대의 술탄뿐이에요. 술탄이 되지 못한 셰이흐 – 그러니까 술탄의 아들들은 참살하든지, 아니면 궁전 깊은 곳에 있는 ‘사자 우리’라는 독방에 가두고 여자도 만나지 못하게 해서 뿌리를 잘라버려요. 만약 선대 술탄이 오래 살아서 셰이흐가 아들을 본다면 술탄이 바뀔 때 아들들도 같이 죽여 버리고요. 즉, 아르투르인들 기준에서 우리끼리 대군이지 소군이지 하는 자들은 애초에 태어나서도 안 되는 존재들인 셈이지요. 딸들까지 죽이지는 않지만 어차피 혼인하고 나면 술탄의 혈통이 아니게 되니 더 말할 필요가 없고요.”

11회에서는 신랑의 신상과 함께 그들이 이름을 쓰는 방식이 등장하고요.

 신랑의 이름은 카밀 이븐 무시타시르 빈파이드 셰이흐, ‘무스타시르의 아들인 파이드 가의 카밀 왕자’로 풀이 할 수 있으며 사미르 인들의 전통적인 작명법상 내력 깊은 부족들은 12대 조상까지의 이름을 모조리 집어넣어 간략한 족보나 다름 없다고 합니다.

13회에서는 드디어 신랑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13회와 14회에서는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죠. 혈육이나 부부가 아닌 이상 성별이 다르면 같은 장소에 있는 것조차도 금기시하는 사미르의 관습이라던가 ‘마으무디트 타 이르 안카흐’라고 하는 의식이라던가. 이는 자이나르교(사미르 인들이 믿는 종교)의 의식으로 마자이란이 타국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이 살아가게 될 땅의 흙으로 세례를 받는 의식을 뜻합니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입고 있던 옷을 태우는 아주 경건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참담함이 느껴지는 선우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제발 호칭의 벽을 넘고 선우를 계속 봐주세요.

주인공인 진원이 마술대대에 복무하며 있었던 일이 교차 서술되면서 사미르의 전쟁 중, 후의 모습이나 그것과는 별개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 등이 끊임없이 묘사됩니다. 마치 바람에 변화하는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쉼없이 다채롭게 묘사되어서 정말 낯선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들이 읽는 책 제목이나 경전 내용까지 등장하는 걸 보고 대체 어디까지 설정을 짜놓으신건가 하는 경탄도 함께 일어나긴 했습니다.

1-4.

 사미르 뿐만이 아니죠. 대한 제국 쪽은 더 촘촘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인용해 보려고 몇 회를 뽑아 봤지만 사실 소설이 진행 되는 내내 도성의 거리를 눈으로 보며 걷는 듯 했습니다. 자경성은 일과가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였지! 싶은, 마치 동사무소의 운영시간을 알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소설 속의 한 구석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진원의 혼례식에 참석해서 산해진미를 맛본 것 같고 그렇습니다.

몇몇 회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그대로 삭제해버렸으니 궁금하시면 어서 호칭의 벽을 넘고 75회를 향해 같이 달려주세요.

 (궁궐 조감도를 이미지로 넣고 싶었는데! 실패 했습니다. 그렇게 아주 넓은 궁궐을 거니는 기분인데 말이죠.)

 

2.

 은원을 품은 채 맺어진 한쌍의 천일일화!

작품 소개에서 일부 발췌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작품을 몇 편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75회까지 감상한 것으로만 봤을 때 전개가 빠르진 않습니다. 비단 13회에 남주가 처음 등장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13회까지 남주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아주 다채롭게 차려진 한식상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저야 호칭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요. 외웠다거나 한 번에 익숙해졌다는 건 아니고 처음엔 그저 주인공만 잘 따라가자는 마음으로 졸졸 따라가다보니 다시 읽을 땐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호칭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발 디디고 그들의 문화나 환경을 살피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질 않으니 씹고 뜯고 맛보고 하느라 선우가 등장했을 때는 헉!하고 한 방 먹은 기분이었어요. 남주가 이제 나온건가(동공지진) 했으니 말 다했죠. 뭘 먹어도 맛있고, 눈도 즐겁고 뜻밖의 위꼴을 몇 번 당했으나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면, 맛있게 먹어서 배가 부른데 여전히 맛있는 음식이 계속 다양하게 나오는 기분입니다. 저는 이제 선우와 진원의 꽁냥거림이 보고 싶습니다.

박대받는 황녀라 고를 신랑감의 후보가 없다는 애매한 이유로 가례도감도 설치하지 않은 진원 대신에 6황녀 효원이 과하게 대접받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심보가 베베 꼬입니다. 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또 이것도 하고 또 저것도 하는데 왜 그것 때문에 진원이 선우를 만날 수가 없어! 라는 안타까운 심정만 남아 있습니다. 고작 서신을 주고 받으며 규원이 전해주는 소식들로 만족할 진원이 아닌데 말이죠.

선우의 면신연도 진원의 돈을 쓰는 것이니 돈 걱정 없이, 술도 선우가 마실 것이니 술 걱정도 없이 즐겁게만 봤습니다만 선우가 새로운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이래서는 효원 때문에 바쁜 진원보다 더 바빠지게 생겨서 조급합니다. 이제는 천일일화스럽게 그들의 은원의 실타래도 슬슬 풀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효원이 나빴네요. 무조건 효원이 잘못했어요.)

 

3.

 다 적지는 못했지만 종교적인 부분이나 신력에 대한 것, 신들의 가호나 특이 사항들도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큰 줄거리로 있을 때는 몰랐는데 리뷰를 쓰기 위해 조각을 내어보니 작은 조각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다시 기워야 할지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방대하다고 적었다가 다시 세밀하다고 고쳐 적게 되었네요.

신력도 있으면서 그걸 자유자재로 어떤 식으로 다룬다거나 아주 강하다거나 하지 않고 몸을 보호하는 식으로만 제한을 둔 설정도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상업 쪽에 재능이 있지만 글씨는 악필이라거나 하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에서 더욱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작품에 비해 부족한 리뷰라 쓰면서도 고민이 많이 됩니다. 과연 등록을 해야하는가. 그래도 며칠이 걸렸으니 감상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과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이 많은 회차 중에 어떤 내용을 뽑아내야 하나 싶었는데 그래도 손을 대기 시작하니 끝은 보게 되네요.

  태국에서 새벽사원을 간 적이 있어요. 배를 타고 들어갈 때 해가 쨍-하고 비추니 사원 벽의 타일과 금박이 반짝이며 빛을 내는데 굉장히 눈이 부시고 시끄러운 기분이었어요. 와글와글하고 타일 하나 하나가 햇빛이랑 말을 하는 것 같았죠. 해가 뜨던 동쪽의 모든 벽이 다시 태양에게 빛을 돌려주던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연인님의 <낙원과의 이별>이 제게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낯선 세계, 그곳에서는 사원의 첨탑이, 불상이, 계단과 모든 손톱만한 보석들이 태양에게 말을 걸겠죠. 그 하나 하나를 듣는 기분으로, 그 곳에 발을 디딘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제 리뷰가 그런 사원의 광경을 보고도 “사원이 금빛으로 빛났어!!!!!!!” 라고 밖에 적지 못한 것만 같아서 조금은 슬프기도 합니다. 부디 온전히 전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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