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뉴트로가 대유행이다. 거리를 나서면 집게 핀을 한 사람들이 헤드셋을 하고 걸어가고, 슬램덩크는 이 순간 가장 핫한 만화영화다. 현실보다 현실 같은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고 선 없이 노이즈 캔슬링까지 가능한 이어폰이 출시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90년대의 지지직거리는 풍경을 불러낸다. 복고가 유행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술과 예술이 첨단을 향해 달려가는 한복판에서 투박한 질감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본능. 그러니 추억이란 세련된 그래픽보다는 8비트짜리 뭉툭한 픽셀과 거칠게 뭉개지는 저해상도 영상으로 기록되는지도 모른다. <window를 설치하세요>는 윈도우 xp 속 비밀스런 버그 혹은 이스터에그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이 마음을 형상화한다.
주인공은 오래된 xp체제로 돌아가는 pc를 구비해놓은 회사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이다. 회사가 그리 으쓱한 것도 아니요, 그런 회사가 그리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라 서툴고 피곤한 일상이다. 그때 그의 앞에 찌글찌글 조악한 선으로 이루어진 ‘졸라맨’이 나타난다. 윈도우 xp라는 한 오래된 0과 1의 세계에서조차 노이즈로서 기능하는 존재. 주인공은 이 자그맣고 삐뚤삐뚤한 픽셀 덩어리에게 애착을 갖기 시작한다. xp의 탄생과 함께 존재했다는 작은 노이즈는 주인공에 의해 ‘덤보’라는 이름을 수여받고 상호작용을 나눈다. 처음엔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하다가 제거해야 할 바이러스로 여겨졌던 ‘덤보’는 그 순간 인격을 부여받는다. 자신의 컴퓨터를 덤보가 즐거워할만한 장소로 가꾸어나갈수록 주인공도 즐겁다. 이젠 회사에 가는 이유가 생겼을 만큼.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했던가? 윈도우 xp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덤보와 주인공이 함께하는 시간도 끝을 맞는다.
소설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이미지가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로봇 R2-D2의 자그맣고 동그란 몸체다. 만들어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그리 거대하거나 복잡한 기능을 갖췄을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오랜 세월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window를 설치하세요>속 덤보의 말과 행동에 주인공 뿐 아니라 독자 역시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미소 짓고 깔깔대게 되는 까닭에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사람은 비인간을 인격화하려는 습성을 가진 탓에 조금만 사람과 닮아도 정을 붙여버린다. 일을 못하고 아무데나 꽝꽝 부딪혀대는 로봇청소기가 애틋해 별명을 붙이고 아끼다가 망가진 후에도 버리지 못한다는 사례는 셀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어떤 목적의 로봇이건 단순하고 둥근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다. 실재에 근접하나 실재는 아닌 인공물에서 오는 소위 언캐니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겠으나, 굳이 인간을 닮게 만든 인간형 로봇이 아니더라도 단순화한 외양 앞에 사람의 마음이 쉬이 녹는다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덤보에게 한 번도 묻지 않은 것이 있다. 윈도우에 내장돼있던 이스터에그라는 네가 가진 비밀스런 기능은 없어? 너는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야? 덤보와 같은 프로그램과 오래도록 잘 지내고 있다는 네티즌에게도 그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다만 덤보가 누구인지, 덤보를 키울 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그저 온전한 한 개체로 형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완벽한 엔티티’라 칭하는 덤보에게 주인공은 상냥히 답한다. 그럼 너를 만난 나는 운이 좋은 거네, 하고.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애를 써도 언젠가는 끝날 한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각자의 덤보를 마주친다. 내가 그렇듯 서툴고 삐뚜름하며, 만들어진 까닭도 따로 없는 존재. 하지만, 그래서, 완벽한 존재. 사람이 이미 지나간 세계를 그리워하는 까닭 중 하나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저물어버린 세계에서 내게 의미가 되었던 것들이 너무도 애틋하여 차마 쉬이 보낼 수 없어서.
이미 끝난 서비스를 우회해 접속하고, 아무 유용성도 알지 못할 ntt파일을 압축해 새로운 피씨에 깔아보고, 학창시절 유행한 시리즈를 다시 찾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 막막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어렵게 찾은 한 의미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애쓴다. 그러나 어느 날엔 끝내 내가 알던 익숙한 세상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의미를 두었던 모든 것, 그러니까 결국에는 나 자신도 하얀 화면의 노이즈가 사라지듯 사그라들 날이 온다. 그것은 손가락이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누르듯 무심하고 짧은 사이 이루어지며 어떤 노력을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리라. 세상의 끝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공이 슬픔에 잠겨 잠든 시간, 회사 컴퓨터의 윈도우 7체제에선 또 다른 ntt가 탄생했다. 아무리 덤보와 똑 닮은 졸라맨 모양을 하고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주인공에게 그것은 결코 이전의 덤보와 같을 수 없다. 이 사실이 조금은 야속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래도 윈도우 7의 그 작은 프로그램이 아침이 되어 출근한 이의 눈에 또다시 들어오기를, 그래서 두 존재가 서로에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고양이 모양의 엔티티 ‘유리’와 몇 년이나 함께 했다는 이름 모를 등장인물도 주인공 같은 이별을 겪으며 아파했을까. 사라질 장면과 서툴게 그린 선을 사랑하고야 마는 마음으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