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매의 케미는 옳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어디서든 불꽃은 다시 (작가: 삶이황천길,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23년 2월, 조회 55

타임 리프는 참 매력적인 소재이면서도 이제는 ‘살인자를 소재로 한 스릴러’ 마냥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힘든, 맛있어 보이는데 왠지 손이 가지는 않는 소재가 된 느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소설은 어떤 소재로 무슨 주제 의식을 갖던 간에 찰진 내용물과 애정이 가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면 보지 않을 수 없죠.

제게는 이 작품이 그렇게 다가왔기에 브릿G의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짧은 단편이고 흔한 주제인 무한 리프 시츄에이션도 아닙니다만, 왠지 제 주변에도 있을 것 같은 맛깔나는 자매의 현실 케미가 작품 전체에 가득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않아서 언니를 그리는 주인공의 슬픈 결말을 이미 알 수 있음에도 읽는 내내 잔잔한 유쾌함을 줍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좀비 아포칼립스물 특유의 블랙 코미디 감성을 좋아합니다. 당장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보이는 인간다움 같다고나 할까요? 쉼 없이 멍청한 짓을 하고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다가도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모습은 고구마라 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그런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니가 죽기 전으로 돌아간 시점에서의 동생의 행동은 사실 그리 현실 지향적이지는 않습니다. 흔히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언니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내용을 예측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만, 작가님은 의외로 여느 날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자매의 하루를 담담하게 보여주시면서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꺼내서 품어보는 동생의 애틋함을 그려주셨습니다.

저는 남자이고 외아들이라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이 작품에서의 언니는 대부분의 여성 독자분들께서 ‘우리 언니네’라고 하실 거 같은 극한의 리얼리티를 가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매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평범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당연함 속에서 반짝이는 가족의 정을 단편 속에 알차게 채워 넣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툭툭 던지고 받는 대화 속에서 운명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한 몫이었던 언니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고 그것은 후회보다 소중한 기억이 되어 가슴에 담아두게 됩니다.

가족이란 게 참 그렇습니다.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부터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다가 결혼 같은 이벤트로 곁을 떠나면 비어버린 그 몫은 잘 채워지지 않지요.

이 작품에서는 하루의 짧은 시간을 통해 언니가 가졌던 직장인으로서의 고뇌와 그것을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알게 된 주인공이 언니에 대한 보물 같은 기억을 하나 더 가슴에 채워 넣으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읽었다 하여 오늘 갑자기 집에 가서 형제, 자매를 끌어안고 그동안 못 했던 애정 고백을 하는 독자분들은 아마도 안 계시겠지만, 그래도 옷을 대충 던져 놓고 씻지도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봐도 예전보다는 덜 한심해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웃으며 해 보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런 힘을 가진 좋은 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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