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은 아니고 어느 중세풍 판타지 세계에는 용이 진짜로 살았답니다. 왕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밖, 어느 귀족의 으리으리한 성도 아닌 그보다 더 밖이요!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이런 놀라울 데가!
그리고 그 용은 배가 고팠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요. 당연하고 말고요. 지고하시고 강대하신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이자, 경외와 타고의 묵시자께 어찌 감히 속것들이나 느낄 법한 단어를 붙였다며 불경을 꾸짖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그런데 올바른 적생자가 있다면 올바르지 않은 적생자도 있는 걸까요? 서자나?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용은 배가 고팠고, 사냥에 성공해서 거처로 돌아왔답니다.
우리가 잘 알게 될 피어클리벤 가의 여덟 번째 따님과 함께요.
아마 제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이 세계의 누군가는 들어줄 거란 확신이 있습니다. 헛소리라고 무시하고 떠나는 이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게 아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겠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은 더 얘기해 보라거나 어디서 들었냐며 진위를 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사자인 아가씨라면 ‘함께 왔다’는 표현을 지적할지도 모르시겠군요!
이 세계에선 모두가 말하고, 그걸 듣는 이가 있어서 대화도, 토론도, 교섭도, 계약도 성립합니다. 거짓말 같아요. 힘 있는 용병과 돈 있는 부자와 권력을 가진 귀족이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은 어딘가에 적히고 새겨져 대대손손 이어지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을 두고 모두라고 부르는 건 너무 편협한 일이죠. 《피어클리벤의 금화》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천대받고 유랑하는 이민족, 까마득한 기간 잊힌 무녀와 심지어 인간이 아닌 고블린도 진지한 대화의 상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 그 안에 담긴 생각, 거기까지 이어진 지식이 얼마나 놀라운지는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세계 밖에 있는 독자도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할진대 이동도 쉽지 않은 캐릭터들이 뭘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코웃음 칠 수 있습니다. 그저 똑똑한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해줄 장치에 불과하다면서요. 하지만요, 이 작품 내에서 지성이란 그저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대해 논의할 줄 아는 힘 같습니다. 그게 정말 눈부셔요.
지식이 알려준 과거의 길을, 그 지식을 전수해준 이들이 원하듯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손가락질받지 않을 길을요. 하지만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난해도 귀족이라며 품위를 지켰다간 초라한 장례식을 끝내 치를 수도 있을 겁니다. 애지중지 품에만 싸고돈 나머지 혼자서는 우뚝 서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렸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귀 기울여 보세요. 다른 삶을 살아온, 다른 역사 끝에 선 이가 하는 말에.
어쩌면 오랫동안 고심해온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