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등골브레이커의 은유로 읽었어요. 현실적으로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희생 위에서 젊은 시절을 흥청망청 보내고, 성공한 다음에 효도할께요 하다가, 성공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그게 의도적인 것인지는 의문이에요. 아마도 어떤 고착상태와 딜레마를 묘사하고 싶었던거 같은데 정작 그 부분은 잘 와닿지 않네요.
작품의 내적 논리에서 주인공이 시간정지를 이용해 성공을 거두는데, 에스컬레이터에 낀 엄마를 구출하는건 납득하지 못한다는 부분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시간정지를 풀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vs 영원히 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산다. 이 두 선택지만 주어졌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게 이 소설에서 제시한 무서움이고 이렇게만 보면 무서운 상황이긴 한데 작품을 끝까지 읽었을때 이 두 선택지가 막 무섭고 어찌할바를 모르겠고 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게 느껴져요.
전자의 경우 이미 주인공이 시간정지를 통해 공무원 시험도 합격했잖아요?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물리적으로 부수는 방법도 있을수 있겠고요, 일단 엄마를 살린 다음에 주변 사람들을 설득한다거나요 그래서 와닿지 않는거 같아요.
후자의 경우 이미 만화카페에서 실컷 노는걸 너무 즐겁게 묘사했죠. 그래서 이게 그렇게 나쁜 선택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시간을 멈춰놓고 놀면 되잖아요?
얍삽이에 대한 어떤 응징이나 업보가 이뤄진다는 암시가 없기에 왜 이번에도 얍삽이를 쓰지 않는거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 연료게이지를 보여주는 작업이 좀 더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얍삽이를 쓴 자에게 응징을. 인과응보 권선징악 같은 고리타분하지만 잘 먹히는 장치를 가져와도 괜찮고요. 그러니까 주인공 마음속의 목소리 같은거요. 이렇게 치트를 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건 이상해요. 이걸 주인공 마음속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묘사를 넣는다면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될거 같아요. 주인공 마음이 아니라면 하니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거나, 도깨비의 외형이 악마의 외형으로 바뀐다거나. 클래식하지만 도움이 되는 연출 방법이죠.
아니면 시간을 멈추는 대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줘도 괜찮겠죠. 냉장고에 묵은 음식을 바칠때마다 그 음식이 묵은 기간만큼 멈출수 있다거나요. 냉장고가 점점 비어가는걸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물론 파티는 언젠가 끝나고 영원한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처한 운명의 선택을 영원히 미룰수 없다는걸 직감적으로는 알죠.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받아들일수 없는건 아니지만요, 명시적인 연료게이지 역할을 할 장치가 하나쯤 있으면 더 쉽게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갈수 있을거 같아요. 그래서 조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