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초단거리의 매력!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백엽집 (작가: Qaz, 작품정보)
리뷰어: Mast, 22년 11월, 조회 30

엽편소설이란 단편소설보다 짧은 글을 뜻하며 통상적으로는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20매 또는 A4용지 1매 분량이라고 합니다. 부끄럽게도 전 엽편 소설이란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 검색창에 ‘엽편’이라고 자판을 두들겼고 결과적으로 엽편소설에 대한 정의와 기준을 획득했으니 개이득이라고 해야 할까요?

 

백엽집(풀어서 백업용 엽편 모음집)의 제1화 ‘수신’을 읽었을 때… 아니 봤을 때 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달랑 3줄 짜리 소설이라니!

엽편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던 제 눈으로 훅 들어온 지저분한 노이즈같은 1화의 충격은 뭐랄까요. 운전중에 하마터면 충돌사고를 낼 뻔한 순간에 습관적으로 제가 안전벨트를 차고 있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처럼 같다고나 할까요? 제 과장적 표현이 썩 나쁘지 않으신 분들은 백엽집을 읽으러 오세요!

2화 천상의 아름다움.

아름다워지길 소원한 연인이 그 소원과 같이 말도 안되는 미모를 손에 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거대해집니다. 그 끝에 그녀는 아마도 비인류적인 아름다움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목격할 인류는 어디에도 없겠죠.

그녀의 남자친구조차요.

 

‘천상의 아름다움’을 읽고서 문득 생각난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투명 드래곤’이라고 아시나요? 그 소설의 어느 구절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투명 드래곤의 미모가 굉장히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말이죠. 하지만 투명 드래곤은 ‘투명’드래곤입니다. 끝내주게 미모가 뛰어난 드래곤이지만 투명한 나머지 그 아름다움을 목격해 줄 존재가 없다면 그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4화 침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도적 프로크루스테스(저는 다마스테스로 배웠습니다)의 침대에 관한 엽편 소설입니다. 자신의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 죽이고 반대로 키가 작으면 몸을 늘려 죽인다는 엽기적인 살인마이죠. 주인공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누웠지만 그의 체격은 침대와 정확히 일치했고 그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살해합니다. 단순히 체격이 비슷해서 살아남았다는 뜻이 아닌 영웅과 대적자는 결국 한 끗 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글이었습니다.

 

5화 광속표류

광속여행 중 사고로 인해서 여행을 멈추지 않게 된 우주선에 대한 글입니다.

우주선은 멈출 수 있습니다만 강제정지된 우주선의 바깥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천문학적인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세상입니다. ‘무언가’가 도사릴 수도 있는 우주입니다.

아, 무섭습니다. 코즈믹 호러에요.

 

6화 시뮬레이션 게임

현실을 대체하게 된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글입니다. 처음에는 즐거웠던 게임이었지만 그 게임을 너무 오래 한 나머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자 사람들은 싫어도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게임은 현실이 됩니다. 이를 얹잖게 생각한 신은 새로운 ‘가상 시뮬레이션 게임’을 고안하고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고 이문이 얽히고 그만두지 못하게 되고 다시 현실이 됩니다. 엎치락 뒤치락 돌고 도는 쳇바퀴 같은 이런 구조의 글을 전 정말로 사랑합니다.

 

9화 마임맨

공포소설입니다. 뛰어난 수준을 가진 팬터마임 예술가. 공연자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진 현실속에서 그는 승승장구합니다. 그로서는 노숙을 하다가 객사까지 하는 팬터마임 공연자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가히 최고이니깐요. 그의 실력은 수준급입니다. 어찌나 수준급인지 연기와 실제를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릅니다. 그리하여 공연자는 정말로 자신의 연기를 실제라고 착각을 하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그는 자신이 만든 가상의 벽으로부터 나갈 수 없게 됩니다. 심각한 PTSD에 걸려 자신이 현재 전쟁터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거리에서 몸이 굳어버린 전직 군인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신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며 저 불쌍한 마임맨에게 벌어진 ‘사고’는 어쩌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실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3화 안경

TMI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죠.

투 머치 인포메이션 즉, 너무 많은 정보를 상대에게 제공함으로써 분위기가 싸하게 식을 때 종종 사용한 줄임말입니다. ‘13화 안경’만큼이나 이 말이 어울릴 소설을 저는 아직까지 읽어보지(제 식견이 짧아서요) 못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게 된 경위.

안경과 같은 일상적인 도구에 그런 엄청난 사연이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현실 주변에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

마치 주인공처럼요.

 

17화 악마와의 거래

제 기준에선 대단히 코믹한 소설입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신에게 나타난 악마가 제의하는 수상한 거래. 내 영혼을(심지어는 당장 제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수명이 다하면 영혼을 가져간다는 것 뿐으로 현생은 제 것입니다) 대가로 누구든지 단 한 명을 되살려준다는 달콤한 제안!

주인공은 자신의 결정을 악마에게 전합니다. 근시안적인 사고에 갇힌 저와 같은 보통사람들은 장담컨대 생각지도 못한 결정을 말이죠.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제안이 아닌가요? 누구든 한명. 정말 인류의 역사상 누구든지 단 한 명을 제 영혼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저는 왜 해보지 못한 걸까요?

 

19화 레일리 산란

레일리 산란이라는 과학 법칙을 활용한 달콤 풋풋한 로맨스 소설입니다. 과거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이과와 문과의 편가르기가 유행을 탄 적이 있죠. 저는 이번 편의 소설이 이과적 감성 소설인지 아니면 문과의 그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네요.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그게 무엇이 됐든 상대의 마음을 훔쳐낼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요?

 

20화 구형해안

구형에 대한 말장난 소설입니다. 체감상으로는 이번 편의 내용이 가장 짧은 것 같군요.

 

22화 노동의 시대

효율적인 의미에서 더 이상 노동이 필요없게 된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고지능 로봇은 인류에게 빈부격차의 수단을 제공합니다. 10년을 기준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주제가 바뀌며 그 주제에 따라서 저번 주기의 부자가 이번 주기의 빈자가 될 수 있고 심지어는 아예 모든 인류가 극빈자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고도 어설프면서 동시에 나름 평등하다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제 취미는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다음 종목이 만약에 영화 포스터 모으기라면 전 부자가 될 거에요!

 

23화 정신생명체

개인의 창작물을 정신생명체 즉,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는 세계관에 관한 글입니다.

근데 그 기준이 여간 빡센게 아닌데요. 생명체의 기준은 최소 20자로 원고지 두 줄 분량부터거든요. 연재를 중단하거나 원고를 삭제한 글쟁이들은 모두 감옥으로 수감되는 비정한 이 세계에서도 작가들은 펜과 종이도 없이 머릿속으로 창작의 끈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이미 수도 없이 많은 글자를 날려버린 저는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라면 최소 300년 이상은 수감되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형기가 몇 년이나 남으셨나요?

 

25화 천년병.

항생제와 백신, 의료검진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거나 쉽게 암에 걸려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화학물질인 식품첨가물 때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완전한 사실(저도 사실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은 아닐겁니다.

첨가물의 공포보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건 과거의 평균수명이 현대의 수명에 비해서 낮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대 수명은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훗날에는 정말로 우리는 노화마저 이겨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릅니다. 천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200년, 혹 300년과 같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길이의 수명을 살게 된 인간이 갖게 될 질병을 말입니다. 저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질환이 생길 것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육체를 아무리 갈아 치운들 우리의 정신은 기계처럼 수리나 보수가 가능한 물리적인 제품이 아니니깐요.

정말 그럴듯해서 무서운 소설이었습니다.

 

26화 선배가 짜증나는 후배 이야기

썰렁하는 농담을 하는 선배와 그런 선배에게 진저리를 치는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우리는 간혹 이상한 ‘운’과 부딪치고는 합니다. 한 달 동안 공들인 과제물보다 있는 줄도 모르고 후다닥, 졸린 머리를 싸매가며 해치운 전공과제가 더 높은 점수를 맞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몇 번이고 있으니깐요.

열심히 준비한 회심의 농담보다도 지나가듯 무심코 툭 던진 생각 한 줄이 사람의 가슴 속에 보다 깊고 넓은 파문을 일으키는 법입니다.

 

27화 몸짱머신

단순히 착용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를 몸짱으로 만들어준다는 기적의 수트를 개발하는 소설입니다. 열심히 처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군살이 붙기는커녕 근육이 비대해지고 조각같은 몸매를 갖게 된 인류는 자연스럽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러면서 또 열심히 처먹어들 대니 식량자원은 금세 바닥이 납니다. 그렇게 인구수가 과거 전성기의 절반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식량과 인구수의 균형은 유지가 됩니다.

저는 이것은 진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의 등장으로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진화를 이뤄낸 구세대와는 다른 인위적 선택을 통해서 신인류로의 진화.

트렌디하네요.

 

36화 OTT의 미래

OTT란 Over the Top의 줌말로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그 기세가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만 한때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과 공포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던 언택트의 시대는 다른말로 OTT 서비스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과거 오프라인 대여점 시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볼거리가 증가한 요즘, 저는 창작자의 진정한 적은 불법다운로드 이상으로 영화요약 유튜브채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작품의 줄거리만 요약해주는 채널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입니다. 제목부터 버젓이 결말이 포함되었음을 알리는 그들은 정말로 악질이에요. 그러나 영화 한 편에 2시간을 온전히 쓰기에는 여유시간이 남아돌지 않는 요즘. 결말포함 영화 채널의 구독자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까닭은 어쩌면 퇴근 후 잠들기까지의 몇 시간을 그나마 가성비 있게 쓰고 싶은 직장인들의 애환 어린 수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영화 요약 영상과 배속기능이 유료화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미래에서도 영화 요약 채널의 인기가 지금과 같을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소설 백엽편의 리뷰였습니다.

소설의 길이가 워낙 짧다보니 글에 대한 리뷰가 소설의 길이를 넘어버리는군요. 보통은 이런 주제로 장편에서 많게는 시리즈물까지 쓸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핵심만을 떠서 알기 쉽게 풀어내는 Qaz님의 엽편소설은 극단적인 다이어트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중 유독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글을 위주로 리뷰를 써봤습니다. 이러한 제 취향에 겹치지 않은 다른 글들에 호기심이 생긴 여러분은 어서 빨리 이 소설을 읽으러 손가락을 움직이시는편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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