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서!
저는 남이 쓴 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렇다~저렇다~맞다! 아니다를 자신있게 주장할 만큼 잘난 사람이 못됩니다. 시청자와 독자로서의 제 수준은 기껏해야 평균 이하(누군가의 창작물을 접해도 그것에 숨겨진 의도를 해석하는 일을 저는 정말 전문적으로 못해요)입니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주신 다면 많이 고마울 것 같아요.
소설 ‘사랑으로 극복하면 되잖아.’는 대체역사물입니다. 대체역사물이란 참 매력적인 소재이죠.
‘역사에 If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통념을 보란 듯이 비틀어버리고 그 간격에 작가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가상의 역사를 현실에서 제법 있을 법하게 전개해나가는 과정은 독자된 입장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소설에는 한국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로 한국인도 없습니다.
존재하는 건 식민지 조선. 그리고 식민지 출신의 조선인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현실과는 다르게 소설에서의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결국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마리코는 여자 고등학생입니다.
약간 소심한 성격인 그녀는 친일집안(여기서 친일이란 게 흔히 우리가 아는 일본제국 시절의 적극적인 일본 부역자를 뜻하는 친일파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일본을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인지는 작중에서 소개되지 않습니다)에서 자란 조선인입니다. 그녀는 유일한 조선 출신으로서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고 또 사랑하는 일본인 남자친구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조선인 차별과 혐일사상, 식민지인의 피해의식, 일본인 역차별 등 여러 갈등과 목소리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녀는 이러한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어느 지시를 내려받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녀가 부여받은 임무는 축제준비 상황의 점검입니다.
학교 축제가 열리기 전 각 동아리의 출품물을 사전에 파악하는 흔한 작업이죠.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임무에 불과합니다.
그녀의 임무의 실상은 동아리의 뒷조사. 구체적으로는 동아리에 소속된 조선인 학생들을 캐내어 조직적인 혐일 활동의 배후인 조선인 비밀학생회. ‘의열 클럽’의 배후를 파악해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누군가에 의해서 설치된 대자보였습니다.
대자보의 내용은 명확하게 소개되지 않습니다만, 일본인의 시점에서 혐일적인 내용이 다분했을 걸로 추측이 가능하죠.
평소 자기주장이 분명하지 않은 그녀는 결국 선생님과 학생회장의 구슬림을 이기지 못하고 임무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곤 그녀의 남자친구 나오키와 함께 동아리들을 살피러 갑니다.
동아리들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나오키의 제안으로 프라모델 동아리에 방문하는데요. 이곳에서 우리는 작중 일본의 역사를 조금이나 엿볼 수가 있습니다.
“야마토와 엔터프라이즈는 강철의 의형제라고 불리며, 함께 추축과 공산권에 맞서 싸운 일미 혈맹의 상징과도 같으니까요.”
프라모델 제작 동아리 부장 니시오카의 말의 일부입니다.
이럴수가! 일본이 미국과 함께 추축국에 맞섰다니요?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일본은 러시아제국으로부터 압승을 거두어 두둑한 전쟁배상금을 따낸 모양입니다. 일본은 아마 전쟁에서 발을 뺐고 중일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며 이후 연합국에 가담하여 나치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 맞섰을 것이며 종전 후에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자유진영에 편입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승자의 선택!
일본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반도의 해방이 이루어질 리 있을까요?
미국의 입장에서도 굳이 한반도를 해방시켜 우군인 일본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게 없었을 테니 식민지 해방의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처우는 일본의 입맛에 맞게 좋게좋게 넘어갔을 공산이 큽니다. 정말이지 한국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국 아니, 조선은 일본과 합병된 상태로 70여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가진 모든 자원… 그러니까 인적 재원과 역량 등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낼름 삼켜버린 채 말이죠.
소니는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우수한 품질의 스마트폰은 미국과도 당당히 경쟁할 정도이죠. 그러나 한국의 삼성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메신저 Line은 있습니다. 하지만 추측하건데 Line을 개발한 회사는 네이버가 아닐 것이며 그런 이름의 회사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프라모델 동아리에는 조선인 학생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조선 학생들에게 본질적으로 실력과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동아리 부장 니시오카는 당연하듯이 얘기합니다. 그는 18인치 대함포와 66mm장갑판을 자랑하는 야마토 전함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전자제품들을 열거하며 일본인의 역량을 자랑합니다. 급기야는 소니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흔들어보이며 말합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뭘 만들었죠?”하고 말이죠.
참 열 받는 장면 아닌가요?
그 스마트폰을 개발한 핵심 인재들은 조선… 아니 한국인들 같은데! 하고 소설에 대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싶습니다만 그래봐야 제 목소리가 전달될 리가 없죠.
주인공은 그런 니시오카에게 아무런 반론을 하지 못합니다. 이곳의 소니에도 수많은 조선인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회를 빼앗기고 존재조차 부정당한 그림자 속의 존재들에 불과합니다.
주인공은 이어서 영화 동아리에 방문합니다. 그곳에는 조선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부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우타다 리츠가 존재했습니다.
그녀는 명목상으로는 동아리의 부부장이자 영화의 각본가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동아리 내에서 실질적으로 부장과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를 당한다고 여겨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적개심은 사실 불합리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일본에게 악감정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모든 일본인을 미워해도 좋을 면죄부가 될 순 없으니까요.
주인공이 얘기를 나누어본 영화 동아리의 부장 요시노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주인공이 요시노를 붙잡고 캐묻듯이 이것저것을 묻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얘는 왜 엄한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달려드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라면 나한테 왜 그런걸 묻는냐고 짜증을 냈을 법한 상황에서도 요시노 부장은 그녀의 물음에 최대한 답해주고자 성심성의껏 노력하는 인성을 가졌습니다.
그는 우타다 리츠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사실 부장과 감독 역시 자신이 아닌 그녀가 되는 게맞다고 순순히 인정할 만큼 나름의 자기 객관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이면서 조선인이라는 한계는 엄연히 존재했고 그런 우타다를 부장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선배와 지시를 따르지 않는 후배들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절충안으로 부장 겸 감독은 요시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타다는 각본가와 부부장이 된 것이었죠.
주인공은 그런 우타다에게 자신이 영화 제작 동아리에 찾아온 진짜 목적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대자보 사건 이후로의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경계 그리고 비밀 학생회 ‘의열클럽’에 관하여 혹시 그녀가 아는 것이 있는 지에 관하여 숨김 없이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말합니다.
우타다의 대답에 따라서 학생회를 배반할 수 있다고 말이죠.
우타다는 과연 의열클럽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요? 주인공은 그녀를 통해서 혐일 활동을 주도하는 배후세력에 다가갈 수 있을까요? 혹시 소설보다 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래서 이 소설에 흥미가 동한 분들이 계신다면 부디 본편을 읽어주세요!
소설 ‘사랑으로 극복하면 되잖아.’의 세계관은 참 흥미롭습니다. 사실 이러한 세계관의 소설을 저는 다양하게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비슷한 세계관의 창작물로는 장동건 배우님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정도 있을까요?
아무래도 해방되지 못한 식민지 한국이란 소재는 그 자체만로도 재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재료인 것 같습니다. 함부로 건드려 일을 벌렸다가는 혐일이다! 혐한이다! 와 같이 양쪽진영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기 십상이니깐요.
울며 겨자먹기로 임무를 떠안은 주인공은 동아리와 교내 조선인 학생들을 조사하면서 그간 그녀가 눈을 돌려온 여러 갈등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조선 학생들을 표적으로 괴롭히는 ‘헌터활동’, 정부주도적인 조선의 문화보존과 차별금지 정책 등으로 인한 역차별 불만, 조선귀족이라는 비아냥 그리고 조선인에 대한 은근한 뒷담화까지 말이죠. 주인공은 혼란스러워 합니다만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학생회에서의 그녀의 입지는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합니다. 그런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나오키.
언젠가는 최고의 마리코를 그리고 싶다는 자기 확신이 부족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런 그녀를 위해, 사랑을 위해서 나란히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를 택합니다.
앞으로의 현실은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해방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가야 합니다. 식민지 조선, 아니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는 자에게 대가로 따라오는 반발과 괴롭힘을 사랑으로 이겨내려 합니다.
주인공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과연 언제까지 그 마음과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무리 결심이 굳은들 이들은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니깐요.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정제되지 않은 미숙함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거치게 될 다양한 경험은 주인공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본래에 속해있던 영역으로 매순간 이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것입니다.
사랑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가 어쩐지 불안한 까닭입니다.
모쪼록 이 어린 연인이 앞으로도 자신들의 앞에 산적해 올 다양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설‘사랑으로 극복하면 되잖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