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과 회식으로 점철된 회사생활에 지친 ‘나’는, 회식 후 늦은 귀갓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호랑이와 마주친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호랑이는 ‘나’와 같은 층에서 내리고, 옆집 번호키를 누른 후 들어간다. 술김에 잘못 봤다고 생각한 ‘나’는, 그러나 다음날 출근길에도 호랑이를 마주친다.
나의 옆집에 호랑이가 산다. 그렇다고 말을 하거나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호랑이. 러시아에서 살던 산이 개발되어 이 곳까지 쫓기듯 내려온 진짜 호랑이다. 말 도 안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그런 건 아랑곳 없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이 작품은 담담하면서도 소소한 웃음기를 머금은 어조로 이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시치미 뚝 떼고 들려준다. 큰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 속에 이질적인 존재를 끼워 넣어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의 부당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호랑이가 사과의 의미로 준, 금덩이들이 든 복주머니로 인해 거절할 용기를 얻은 ‘나’는 야근과 회식에서 벗어나,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만끽하게 된다. 말 그대로 호랑이 힘이 솟아난다.
일상을 깨뜨리는 이질적 존재들이 그러하듯, 호랑이도 ‘나’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곤 홀연히 떠난다. 아쉬움은 남지만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모두 제자리를 찾는 걸까. 자신의 집으로, 달콤한 기억으로 흘러드는 걸까.
마지막 문장에서 일종의 쓸쓸한 체념의 심상이 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호랑이와의 짧은 추억은 달콤한 기억이 되고, 그리고 ‘나’의 삶은 이미 변화했으니까.
제자리를 찾은 건 단지 호랑이만이 아닐 것이다. 그로 인해 ‘나’의 삶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