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의 서간체: 디테일이 서사를 구축한다 비평

대상작품: 엘프의 사냥법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3시간 전, 조회 29

본래라면 여느 리뷰처럼 이 작품에 대한 한 줄 요약을 첨부해야겠지만……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왜냐면 이 작품은 정직한 제목, 정직한 내용 그 자체기 때문이다. 엘프의 사냥법이란 제목을 달고, 엘프의 사냥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과정이 전부다. 약간의 위트를 첨가해서.

사실상 서사랄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서사를 추구한다면 여러모로 당혹스러운 소설이다. 누군가는 이게 설정집이 아니고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설정집에서 끝나지 않는 건 이 작품이 50매 가까이 되는 분량 속에 담아낸 수많은 디테일과 그것을 담아낸 서간체라는 문학적 형식, 그리고 그를 전부 소화해낼 수 있는 작가님의 필력과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소제목으로 붙인 ‘디테일이 서사를 구축한다’라는 건 두 가지 의미로 쓴 것이다. 逐과 構築, 양쪽 모두. 디테일이 서사의 자리를 대체했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테일이 서사 그 자체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사실 나는 서사를 매우 좋아하고, 서사를 추구하는 독자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작품에 대해선 사실 별로 할 말이 없긴 하다. 비문학 리뷰하는 것이 까다롭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심경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적어도 어떠한 디테일들을 잡고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조금 말해보고자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엘프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하나, 고풍스러운 말투와 함께 고풍스러운 인삿말로 시작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독자를 향해 이 작품의 무게감을 예고하고 암시한다. 이후 ‘교양 있는 엘프’를 언급하며 적절한 속어들을 알려주는데, 사냥은 뵐 일이 있다, 마중하러 나간다, 곰을 선생으로 부르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속어가 만들어진 이유는 직접 단어를 언급하면 귀가 밝고 영민한 동물들이 듣기 때문이다.

또한 엘프는 귀가 기므로 활을 쏠 때 귀가 잘려나갈 것을 염려해 오른귀를 접어두며, 사냥할 때 쓰는 활은 장궁(주목나무)과 단궁(떡갈나무)이 있다. 단궁은 무려 일곱 발을 연속으로 박을 수 있다. 또한 한 방에 잡는 것을 최고로 여김은, 더 고통을 주지 않는 자비로움이 그 이유며, 단순한 재미로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사냥법이라고 해서 단순히 ‘우린 이렇게 잡아요’라고 끝내는 것이 아닌, 사냥과 관련한 엘프의 문화 전반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글 읽을 줄 모르는 인간 사냥꾼 로버트에게 보내는 편지로 다루는 게 본 작품의 내용 전부인 것이다.(로버트에겐 인간 아내가 있으므로 인간 아내가 읽어줄 것이다)

어찌보면 단순 비문학 내지는 설정집으로 읽어도 무관할 수 있으나, 이 작품이 가지는 디테일, 문체, 구조의 삼박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상상’한다는 건, 우리가 몰입할 수 있단 뜻이다.(그리고 몰입과 상상은 소설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난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중후한 음성의 엘프 중년이 껄껄 웃기도 하며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물론 실제 상황에 좀 더 몰입하면 인간 아내의 음성을 상상해야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 소설이 3인칭으로 쓰였다면 지나치게 객관적이라 정보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 커서 몰입하기 힘들었을 테고, 서간체가 아니라 평문 내지는 설명문으로 쓰였다면 상상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을 것이다. 고풍스럽지 않고 경박하거나 지나치게 무미건조했다면? 적당히 상상하고 적당히 몰입할 수 있겠지만, 설정과 디테일의 매력이 증폭되진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전반적으로 자기 강점에 대해 잘 이해했고, 자기 강점을 잘 살려서 쓴 강점만 두드러지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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