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너는 왜 거기서 그러고 계십니까?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후안 유니버스) – 세탁기가 있는 반지하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보네토, 17년 6월, 조회 98

0. B의 고통

리뷰 쓰기 전에 당당하게 밝히겠다. 원래 리뷰 하나 쓸 때마다 잃는 인맥이니, 이제 더 두렵지도 않다.

 

작가님께 인간적 매력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의 작품 세계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분명 괴담을 좋아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 외의 영역에 대해서]만이다.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등골 깊은 곳에서 쫄깃한 느낌이 올라옴과 동시에 위장에서 불안감이 위산 대신 분비되고 눈썹이 찌그러들면서 눈을 가늘게 떨게 되면서 으으으 하는 소리가 입에서 막 새어나오면서 식은땀이 손바닥에서 막 배어나오는, 그런 좋지 않은 느낌을 내게 불러 일으킨다. 그래, 나는 인간이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좋다. 사람이 되어서 어찌 사람을, 사람이 되어서 어찌 그런 짓을, 원시천존께서도 코를 감싸쥐고 돌려버릴 니것들이 어찌 인두겁을 썼다 해서 사람이라 불릴 수 있을쏘냐!

괴담 아니다. 범죄물인 거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 싫다. 인간애가 실종되는 거 싫다. 그래서 나는 이분 글을 읽을 때마다 으으으 으으으를 겨울철 오한 든 노인처럼 중얼거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다 읽긴 읽었던 것이다. 재미는 있지만 재미와 고통은 또 별개의 문제 아닌가?

그런데도 이날이 왔다……

 

잊지 않겠다…를 중얼거리며, 나는 문서 편집기를 켰다. 잊지 않을 것이다……

 

아, 웬일로 중요하다 싶은 스포는 전부 접었다!

 

 

1. 고통과는 별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드디어 고시원에서 탈출하게 된 효정은 새로 방을 얻을 때, 꼭 세탁기를 장만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새로 얻게 된 방에 세탁기가 있었다. 부동산 사장이 수상하고 찝찝했지만 그 세탁기 하나만 보고 효정은 쾌재를 부르며 방을 계약한다. 그리고, 망하게 된다.

 

2. 이 아가씨, 이상하다.

그런데 망하는 과정이 영 와닿지 않는다. 자꾸만 자초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효정이 아무리 권투를 배웠다지만 이 아가씨는 지나친 감이 있다. 차라리 군대에서 막 돌아온 젊은 복학생이라면 끄덕끄덕하고 납득할 텐데. 젋은 여자분들이 이 리뷰를 보신다면 내 의견에 동조하리라 믿는다.

1) 홀로 자취하는 여자가 정말?

여자들은 집을 구할 때 제 1순위를 안전으로 둔다. 세탁기가 있건 황금이 묻혀 있건, 절대로 반지하 방, 그것도 사장이 저렇게 수상한 구는 반지하방은 얻지 않는다. 어쩌다 반지하방에서 자취하게 된 처녀들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밤길에 목적지가 같은 사람이 뒤에서 걸어와도 긴장하게 되는 것이 한국의 젊은 여자다. 1층도 꺼려하는데 누가 어떻게 보거나 창문을 뜯거나 모기장을 들어낼지 모르는 반지하방에 여자 혼자… 여기에서 나는 이미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들은 이게 뭐가 문제냐고 가끔 말한다. 창밖으로 자기 거시기를 자랑하는 미친놈들 이야기를 종종 들어봤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이해 못하면 외우라고, 아니면 니들 평생 여자 손목도 못 잡아볼 거라고 조언해 준 적 있다.

2) 바로 위층에 남자가 있으면 더 피해야지?

배달음식 시켜먹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택배물 주소도 완전히 뜯어서 노출 안되게 한 후 버린다.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전수되는 생활의 팁 중 하나가, 남자 신발 가져다 두기 / 남자 옷 잘 보이는 데에 걸어두기(군복이 좋다더라) – 이런 거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잘생겼고 못생겼고는 상관없다. 윗집에 리즈 시절의 정우성이 살고 있다고 해도 안된다. 세상에 바로 위층이래. 천장 뚫고 몰카 내려 보내는 건 아닌가? 멀쩡하게 생긴 놈들일수록 변태가 많다는데, 뭘 취향이라고 감탄하고 있는가?

3) 내 이삿짐은 니가 뭔데 도와주고 난리세요?

이쯤 되면, 보통 젊은 여자들은 남자 친척을 부른다. (직장인이라면) 회사 선배나 (학교라면) 동기, 아니면 과 오빠 이런 사람도 꺼려하는 마당에 윗집 그대는 왜? 사장을 보며 더더욱 의심해야 정상 아닌가. 이 아가씨, 너무 담대하다. 군대 다녀온 남자처럼 담대하다.

게다가 왜 방에도 들여… 안 그런다니까. 그러지 않아요.

 

난 이제 효정 씨, 당신이 무슨 일을 당해도 전혀 놀라지 않기로 했어요. 여긴 대한민국입니다. 여자가 살기에 그렇게 안전한 동네는 아니에요.

 

3. 다행히 사람이 아니고 다른 것이 공격했다.

첫날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몇 밤 자고 나면서부터 세탁기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탁기에선 그게 나온다. 그리고 효정은 이것에 대해, 친구들도 아니고 윗집 남자에게 상담 비슷한 것을 한다. 잘생겼어도 소용없고, 귀신을 보건 읽건 관심 없다. 왜? 왜 윗집 남자야? 나의 고통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진행되고, 집안에 들여서 세탁기의 비밀을 엿보는 걸 보면서 나는 두 번째로 이 생각을 떠올렸다.

 

귀신보다 윗집 남자가 더 위험하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겠어요. 혹시 저놈 마법사입니까? 막 참(charm)계 마법이라도 걸어 홀렸어요? 어떻게 여자 경계심이 이렇게 쉽게 풀리지?

 

4. 남자는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면, 달아나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다 자초한 거여…

 

5.

난 그걸 떠올렸다. 귀신도 여자인 것 같으니 확실할 것 같다.

 

6. 그리고 방 뺀다고 했을 뿐인데 너무 긴박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급했던 건 이해한다. 그랬기에 나는 덤덤한 얼굴로 마우스 휠을 굴렸다. 모든 정체가 드러났다.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복수가 진행되었다. 과연 어르신들은 나라의 기둥이시다.(?!)

귀신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은 너무 좋았다. 뒤따른 장면도.

 

7. 성식아, 행복해라

이번엔 성식이 나오자마자 터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성식군의 행복을 빌었다. (?!?!?!?)

 

8. 그래서 최후의 변

애초부터 인맥을 잃을 것을 예상하고 쓴 글이기 때문에 좀 가혹하게 비판한 감이 없지 않게 있다. 하지만 하필 보면서 제일 괴괴하게 생각한 글이 도착해버려서… 나는 이렇게 인맥을 잃고……

주요 인물의 성별들이 전부 반전되는 것이 (관장님 빼고)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여주인공에게 공감이나 이입을 할 수 없으니, 읽으면서 점점 더 난 네가 뭘 당하든 놀라지 않겠다가 되는 것이지 않나.

 

군대에서 돌아온 복학생이 자취집을 얻고,

윗집엔 예쁜 누나가 있는 거고,

전 여친에게 전화를 하고.

 

반지하도 이상하지 않고, 몰카나 이런 공포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남이 남긴 물건을 쓰는 찝찝함도 자연스럽게 털털하게 넘어가고. 그쪽이 조금 더 납득되지 않을까? 작가님께 제안해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격렬하게 석고대죄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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