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BornWriter 작가님의 글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살인자x살인자」, 그리고 「마음의 양식」이 작가님의 작품이었군요. 둘 다 잘 읽히는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적어도 눈에 걸리는 부분 없이 글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그 평가들이 「은사와 은사」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두 작품 다 가볍게 읽을 만한 작품이었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에 대한 의뢰를 받고서는, 조금 걱정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저 읽어 넘기고 싶으면 어쩌지? 저는 이런 걱정들을 한껏 껴안고는 첫 화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제가 이 작품을 모두 읽기까지의 심경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시작은
멋졌습니다. 저는 인트로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겹쳐진 차원, 다른 차원에서 찾아오는 손님, 그들을 사냥하는 매력적인 외모의 여자,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글쟁이 주인공.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 끈적한 긴장감. 저는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어뜯는 리뷰를 써달라는 작가의 의뢰 요청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도대체 뭘 물어뜯어야하지?’ 저는 생각했습니다. 양껏 드시라며 내놓은 감자탕에 뜯을 고기가 없는 기분. 아, 물론 칭찬입니다. 인트로를 넘어 초-중반 회차들까지는 분명, 그랬습니다.
고조되는 중반부
글쟁이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은사의 마지막 행적을 좇습니다. 은빛 뱀의 전설이 서린 사원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함께 두근거립니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크기의 지하 공간을 마주한 주인공. 앞으로의 내용은 인디아나 존스같은 느낌일까? 아니면 내셔널 트레져? 어떻게 흘러갈까? 기대가 커집니다.
그러다 갑자기 환영이 보이고, 은빛 뱀이 나타나고, 히로인이 등장합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주인공을 구해낸 앳돼보이는 여자. 검을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데킬라를 물처럼 마시는, 그야말로 산적 수염을 기른 모험가 아저씨가 할 법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냅니다. 어쩐지 섹시한 성질을 가진 그녀는 아담한 키에, 예쁜데다, 심지어 어립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기엔, 이런 매력적인 히로인의 등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듯 싶습니다.
히로인이 나오는 장면이 싫었습니다.
팽팽하게 당겨가다 히로인의 등장과 동시에 힘이 빠져버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트로에서 본 헉슬리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잡아끌지만 동시에 아무 데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미지의 존재를 사냥하며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섹시하고 쿨한 사람이었는데. 막상 등장한 히로인은 예쁘장하고 푼수끼 있는 싸움꾼이었습니다.
어라, 싶었습니다. 헉슬리라는 인물에 대한 예상이 빗나가서만은-물론 이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합니다만– 아닙니다. 헉슬리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선에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충실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구해준 히로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겁니다. 히로인은 데낄라를 주인공과 함께 오붓하게 즐깁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갖고 있는 신체적 불편함과 그를 얻게 된 기억 얘기까지 흘러 나름 깊은 대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다 스킨십을 주고받게 되고, 다음 화에서는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구조 자체는 어느 정도 탄탄하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아직 익숙하지 못한 듯합니다. 사실 브릿지에 게시된 작품 중 적지 않은 글의 로맨스 부분에서 이런 찝찝함을 느낍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쿨하게 보이느냐, 혹은 어딘가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을 주느냐, 아니면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해당 장면이 나왔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쿨한 걸 원했겠지만, 저는 가장 후자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 리뷰어님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듯,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의 로맨스는 그토록 극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분위기는 아닙니다. 위험한 상황의 로맨스는 애틋하고, 안타깝고, 절절한 분위기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은사와 은사」는 어떻습니까?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손님’은 히로인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교수를 물어뜯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은빛 뱀조차 지렁이에 비유됩니다. 무시무시한 걸 깨웠대서 끝판왕일 줄 알았더니..- 따라서 그 미지의 존재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협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따라서 마음이 풀어지니 애틋은 커녕 쟤네가 저기서 갑자기 왜들 저러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나는 헉슬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녀의 옷자락을 꼭 붙들었다. 그녀는 옷 늘어난다고 투덜거리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차가운 안갯속에서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사냥꾼의 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보드랍기도 했다. 누나가 키우는 고양이 발바닥이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하며 나는 그녀의 손을 쪼물딱거렸다. 그 대가로 마빡을 두 대 정도 맞았다. 이마는 금세 부어올랐다.
– 은사와 은사 6 中
이 리뷰를 읽는 분들은 제가 초-중반부를 읽고서는 떠올린 단어들을 기억하실겁니다. 끈적한 긴장감, 인디아나 존스, 내셔널 트레져. 하지만 히로인이 나타나고서는 그런 것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실패한 글쟁이 주인공의 넋두리와 로맨스만 남을 뿐입니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미묘하게 가벼워집니다. 결국 이런 걸 쓰려고 처음을 그렇게 장엄하게 시작했던가? 저는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었습니다.
미묘하게 바뀐 연출로 다시 찍는 속편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사원으로 찾아가는 장면은요.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초반부에 나왔던 겹차원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무엇보다도 은빛 뱀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은빛 뱀을 지렁이와 비견했던 히로인, 헉슬리는 그것을 처치해냅니다. 한때 한 마을의 전설의 주인공이었던 존재. 또 셰익스피어 교수를 두동강 낸 것이라 추정됨으로써 주인공을 멕시코까지 오게 한 존재를 정말로 어렵지 않게 해치워버립니다. 어차피 주인공은 안 죽으니까. 하고 보는 테이큰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면, 조금 이해가 되시려나요?
그 후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은 독자에게 다시금 새로운 가설을 안겨주지만, 글쎄요. 긴박감도 흥미로움도 처음만 못합니다. 아마 앞에서 늘어져버린 텐션과 큰 상관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그런 겁니다. 축구 경기를 보고 있어요. 관객석에 한 선수의 여자친구가 경기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선수가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어디갔나 했더니 아니 글쎄 여자친구가 땀 닦아주고 부채질 해주는 걸 받고 있지 뭡니까. 관중은 축구 경기를 보고 싶어 아우성치는데, 중계 카메라마저 그 둘을 비추며 아름다운 커플이네요. 따위의 멘트를 치며 후반전을 도무지 시작하질 않아요. 그 광경을 보던 어떤 관중은 나가버리고, 어떤 관중은 이미 전반을 본 경기니 그래도 후반까지 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남아있게 됩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고 열기가 다 식은 후, 그제서야 다시 후반전을 재개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전반전의 긴장과 열기가 금세 다시 살아날까요? 저는 어려울 거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장면. 말이 쉽지 어려운 이야기라는 건 압니다. 시작이 좋아서 더욱 안타까웠던 작품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흥미를 유발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초-중반 뿐입니다. 뒤로 갈수록 끗발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뒷심을 키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초중반부의 그 흡인력을 마지막까지 갖고간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금 일찍 작성할 걸 그랬습니다. 쟁쟁한 작가님들의 리뷰로 리뷰란이 채워지는 걸 보고 있자니 조만간 제가 덧붙일 말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급히 작성 버튼을 누릅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