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피해의식과 광증에 사로잡히는 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심리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하고, 인물을 둘러싼 가정 환경이 지닌 차별적이고 고압적인 위계질서와 무기력할 정도로 만연한 폭력성은 스토리에 서스펜스를 부여합니다. 고전을 비트는 방식 역시 세련됩니다.
물론 소설의 첫 문단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충분히 드러내고, 문장 자체도 강렬합니다. 다만 초반부 세준 입장서 서술되는 개략적인 가정사 대목을 온전히 집중해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플롯 기교가 없는 직선적 스토리 전개도 다소 단조롭습니다. 그래도 이로 인해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깔끔해지는 건 장점입니다.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심은 그걸 부여하는 비극적 사건이 수습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때 극대화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직전에 이야기가 끝난 게 아쉽습니다.
서사적으로 누군가 죽어야 이야기가 완결된다면 그냥 죽이는 게 낫다고 믿습니다. 특히 호러에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