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지금 제목에 꽂혀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묵호’의 ‘꽃’ 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부분을 리뷰를 쓰려고 들어왔다가 이연인님의 리뷰 제목을 봐버렸기 때문이죠. 이래서 다른 분의 리뷰는 미리 읽지 않는 편인데, 제목까지 가릴 수는 없군요.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로맨스를 지향하시니 ‘꽃’일까요. 그렇지만 솔이는 ‘꽃’이라기엔 음, 제가 식물에 대한 지식이 짧아 어떤 꽃에 비유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고하지도 무리짓지도 억세지도 않습니다. 아주 적당한 나이의 적당한 외모와 적당하게 일처리를 잘하는 소같은 아가씨…! 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묵호에게는, 묵호에게만은 꽃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현 도련님에게도, 태출에게도?
어쨌거나 아직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왜 ‘꽃’인지는 서서히 알려주시겠죠.
2.
우리 솔이는 꽃이라기 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는 동물 쪽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땡볕에서 밭 일도 하고, 도련님의 서책을 베껴 쓰는 일도 하고, 자수도 놓고 말이죠. 솜씨가 좋다보니 잔치집마다 불려 다니면서 전도 부칩니다. 사람 찾는 일, 막동이의 팽이를 찾아주는 일 그리고 솔이와 우리끼리 아는 비밀이지만 비둘기에게 반짝이는 돌을 찾아주는 일이나 개구리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합니다.
이렇게 솔이가 바쁘게 움직여 주니 작품도 한결 풍성해 집니다. 일단 4화까지 보시면 무슨 소린지 감이 잡히실겁니다. 아주 우당탕탕 하고, 와르르 하고, 꺄아아 하고, 이랴 투다다다다 합니다.
심지어 남주와 여주는 첫만남에 화살이 빗발치고 검은 도포가 검은 밤하늘을 덮으며 바로 흑마를 타고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칩니다. 이러니 한 순간도 평온히 조용하게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솔이가 그나마 안정을 찾고 조용히 있을 때는 현이 도련님과 함께 있을 때입니다. 솔이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온갖 일을 배우며 능력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며, 묵호는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안고 있고 차사라는 또다른 인물을 만들어 어떤 세력의 배후를 쫒는 비밀스러운 인물이죠. 그에 반해 현은 아직 어떤 단서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무보다는 문에 능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내보이는 걸 꺼리는 것으로 보아 어떤 귀한 집 자제거나 세자의 배다른 형제라거나 그런 지위의 인물이 아닐까하고 막연하게 추측 중입니다.
자고로 여자 주인공의 주변에는 빠지지 않는 가문의 자제들 중에 문에 능한 인물과 무에 능한 인물이 치열한 싸움을 벌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을 치열하게 만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여자 주인공에게 어필하는가를 보는 재미, 편갈라 이쪽과 저쪽을 응원하는 재미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앞으로는 현에게 좀 더 힘을 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
이 소설만의 장점을 대라고 한다면 저는 생동감있는 전개와 롤러코스터에라도 올라 탄 것 같은 거침없는 질주본능, 그런 역동성을 꼽고 싶습니다.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차사님(수명을 다하면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그 저승사자 맞습니다!)이 사람이 아니라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해야될 말은 기어이 다 내뱉고 마는 솔이가 주인공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죠. 5회에서는 심지어 차사를 상대로 패악질을 부리기도 합니다.
“나! 여기서 죽으면 곧장 처녀귀신 행이니까!”
“있는 패악 없는 패악 다 부려서 여길 전국 팔도에서 제일 유명한 귀곡산으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 어떤 무당이 오건 스님이 오건 절대 안 잡혀줄 테니까! 염라대왕님이 직접 신장들 보내서 잡으러 오면 그 때 못이기는 척 따라가서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고 까발릴 거야! 뭐가 그리 바쁘신지 쪼끄맣고 살도 없는 여자애 하나 안도와줘서 짐승 밥 만들고, 애는 비명횡사에 짐승은 입맛만 버리게 만들었다고! 생사를 관장한다는 신이 직무태만 아니냐고 박박 우길거니까 각오해요! 하하하! 그 때 후회해봐야 소용 없을거라고!”
마지막에는 삿대질까지 하고 있었다.
네, 우리 솔이가 이런 아이입니다. 어쩐지 흐믓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참새를 돕는 것 하나도 간단하고 수월하게 끝내지를 않습니다. 미끄러지고 다치고, 항상 어딘가를 다치고 또 다치네요. 그래서 차사님도 눈을 못떼는 걸 수도 있습니다. 손이 많이가는 아가씨에요. 그런 주제에 오지랖은 또 얼마나 넓은지 모든 사람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고 다니고, 사람 뿐만이 아닌 동물 친구들의 부탁도 다 들어주고 다닙니다.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솔이라고 해도 차사님의 일에 선뜻 손을 뻗친건 쉽게 이해가 안되서 앞 뒤로 돌려가며 읽어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막동이와 을순이가 엮였던 사건에 책임감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네요.
그렇지만 책임감만으로 덤비기엔 워낙 큰일이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가면서도 꼭 자신이 해야했겠다는 건 아무래도 전국을 들썩이던 차사님을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싶은 치기어린 마음과 스스로 깨닫지 못했어도 차사님에게 기울어진 마음이 뒤섞여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지 싶어요.
차사님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파보겠다고 한 부분에 좀 더 동기를 부여해주시면 어떨까 건의 드려봅니다.
4.
장점을 하나만 꼽을 수는 없죠. 두번째 장점은 바로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숨어있다는 겁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로 생각하는 차사님을 돈으로 움직이려 했다는 것도 우스운데, 그 금액이 턱도 없이 작은데다 그걸 또 흥정을 하고 있어요. (차사님은 한 술 더 떠서 받아 가시겠답니다. 글쎄.) 대체 솔이의 자신감이란 어디까지 뻗어있는 걸까요. 차사님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도 수금 얘길 꺼낸다거나, 저승사자에게 애 받아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거나! 세상에.
저승사자가 애 받으면 큰일납니다. 정신차리고 솔이도 그 생각을 한 모양이더군요.
상당히 위급한 상황과 생사가 달린 고비가 몇 번이고 나오는데도 크게 긴장이 되지 않는 건 이렇게 큰고비가 나타날 때마다 천성적으로 여유로운 솔이의 웃음 포인트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한 방 맞은 것처럼 크게 웃음이 터지곤 합니다.
일단 “안녕하세요!”란 인사로 차사인 묵호와 민훈인 묵호를 두 번이나 당황하게 만들고 독자를 웃음 구덩이로 밀어 넣었으니 솔이의 센스는 인정합니다. (게다가 대나무 으악! 에서 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숨죽여 웃는 분들 많을 거예요.)
5.
차사가 셋씩 움직인다고 믿는 믿음에 따라 잘 생긴 차사가 셋이나 등장했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승사자는 생사를 관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명이 다한 이를 저승에 인도하기만 하지요. 하긴, 차사도 인간이었던지라 (강림이) 실수도 하고, 대접을 잘 받으면 수명을 고쳐주기도 하죠.
얼마 전에 꿈처럼 제목과 약간의 정보만 가지고 펼친 제 상상은 작품과의 간극이 있긴 합니다. 이렇게 전통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던 제가 ‘차사’란 단어만 가지고 했던 상상과는 너무 다르게 가볍고 빠르고 경쾌한 작품이라 처음부터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목부터 가능성 없는 현이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더 감사하고 재밌게 볼 것 같습니다. 남은 3분의 2도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