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으로 남쪽 한 도시가 다 무너지고 전 세계 통제가 심해질 무렵 ‘생존 가능 인구’가 선정된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발된 해수는 생존 증명 팔찌를 찬 채 달려드는 방랑자, 사냥꾼을 피해 멀리 도망간다. 도망가다 한 편의점을 발견하고 총을 든 여자와 마주치는데…
여자는 해수를 어두운 방으로 데려간다. 그 방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는 여자아이 윤난, 총을 든 여자의 딸이다. 해수는 경계를 조금 허물고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해수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 그만하고 잠 좀 자라고 침대에 눕힌다. 공포의 꿈을 꾼 해수가 일어나자 밥도 차려주고 샤워도 허락해주는 난. 그런 난과 해수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총을 겨눴던 여자.
난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보조 목숨 정도로 생각하며 생존지정자가 된 후 계속 갇혀있던 난이 해수에게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정부가 생존 가능자를 서울 지정된 장소에서 보호한다는 정보 하나 가지고 떠나는 둘. 알고 있던 정보와 다른 현실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 현실 그대로 또 마주해나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가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인구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이다라는 썰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군가가 임의적으로 인구 수를 줄이려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생존자를 구별할지, 내가 생존자가 되고 내 주변사람들이 비생존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등등 읽으면서 많은 상상을 펼쳐놓았다.
그 상상 끝엔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넓게 보면 경쟁 사회의 구조가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비슷한 무리 안에 속해있을 때 무언가를 얻기 위해, 경쟁자보다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서있기 위해 스펙을 더 높게 쌓으려고 한다. 생존 팔찌를 가지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느꼈던 해수처럼 스펙이 사회의 불합리함에 맞설 수 있는 보호망이 된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막상 서울에 갔더니 소용 없었던 그 팔찌처럼 더 높이 올라갈수록 그 스펙들이 아무 쓸모 없이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런 막막함 속에 살아감에도 우리가 한 걸음 내딜 수 있는 까닭은 주변에 있는 난과 같은 친구 덕분 아닐까 싶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같이 가줄 수 있는, 더러운 상태임에도 자신의 침대를 내줄 수 있는 끝까지 갈 친구 몇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