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두의 업보인데 터전을 버려야 하는 것은 어떤 누군가에게만 생기는 일인 걸까?
Mano, <아틀란티스의 여행자>
0. 수몰 아포칼립스
Mano 작가의 아틀란티스의 여행자는 ‘수몰 아포칼립스’라는 보편적인 이미지에 기대지 않는 탁월한 기후 픽션(Cli-fi)이다. 원고지 160매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분량 속에서, 작가는 두 소녀의 예민한 감성과 내일을 향하는 희망, 그리고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요한 문제인 환경오염을 모두 다뤄낸다. 이 소설을 채우는 것은 날카로운 시선과 몽환적인 배경, 그리고 필사적인 인물들의 감정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틀란티스의 여행자>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이야기한다면 스포일러를 하는 건 불가피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스포일러를 전제하고 리뷰를 작성하겠다.
1. 소금기둥이 되는 꿈, 남겨진 소녀 한 명
주인공 선안은 대피령으로 인해 이재민 거주 구역에서 살다가, “그냥 가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시작하여, “두고 나온 것을 버려두고 새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기에, “살아온 곳을 소금기둥이 되도록 놔둘” 수 없었기에 자신의 수몰된 고향으로 향한다. 재앙이 벌어진지 반 년 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소녀, 진안을 만난다.
선안은 우리와 똑같은 일상을 지내다가, 갑작스러운 기후 재앙으로 인해 비일상으로 초대된 청춘의 전형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주로 이야기하는 기후 위기의 설득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선안은 대학도 갈 수 있었던 가능성의 청소년이며, 사랑하고 싫어하던 고향에서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보편적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아직 펼쳐지 못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조금 지긋지긋한 현실, 그렇지만 아름다웠던 과거. 재앙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간다. 이것은 경험한 당사자가 아니라면 좀처럼 쉽게 감각하지 못하며, 소설 속에서도 이는 명시된다.
줄곧 좋아해 온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잠겨버린 아틀란티스에 초대받아 바다의 꿈을 꾸는 어느 아이에 대한 노래였다. 곡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러나 잠겨가는 우리 지역을 소개하며 그 곡을 배경음악으로 썼던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잘 차려입은 방송인들의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그 한숨 섞인 말들을 생각하면.
Mano, <아틀란티스의 여행자>
정황상 BoA의 ‘아틀란티스 소녀’로 보이는 그 ‘노래’는 방송인들에게 비극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노래로 사용된다. 뉴스를 접하는 일반인들은, 안전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몰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다만 동정하며 그 노래와 함께 비극적인 장면을 추억할 것이다. 스크린 속에 있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소설에서는 ‘소금기둥이 되는 꿈’으로 형상화되는-을 알지 못한 채.
이 감정적인 힘이 소설 속에서 의미는 크다. 소설은 계속해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며,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노 작가는 소설 내에서 수해의 지긋지긋함과 환경 파괴의 영향을 묘사하며, 선안의 목소리로는 “어떠한 상징도 되고 싶지 않은”, 영웅도 비관주의자도 아닌, 그저 일반인 한 명의 목소리를 내어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 메시지는 이렇다:사랑하는 장소가 소금기둥이 되는 꿈을 그만 꾸게 해주세요.
2. Humans meet Apocalypse, Girl meets girl
환경파괴를 일삼은 인간이 재앙을 마주한 것처럼, 소녀는 소녀와 만난다. 소설의 메인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선안과 진안의 만남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클리셰로 진행된다. (둘 다 소녀이니 Girl meets girl이라 하겠다.) “연 닿으면 다 고향”이라고 말하는 진안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경 쓰지 않을 듯한 방랑자적 성격을 지닌 소녀다. 진안은 갑작스럽게 선안과 만나고, 둘의 사이는 갑작스레 동네에 닥친 경관과의 추격전을 함께 경험한 끝에 하룻밤을 같이하는 사이로 빠르게 진전된다. 그러다 둘은 “매일 아침 방파제 근방으로 가서 땅이 얼마나 잠기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과를 함께한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순간이다.
선안과 진안의 만남, 그리고 그녀들의 일상은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다. 앞선 문단에서 선안은 ‘남겨진 소녀’로 소개했다. 그녀는 외롭고, 세상이 내린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 홀로 맞선 단독자이다. 재앙을 앞둔 인간 실존 그 자체다. 그런 주인공이 반동 인물인, 비슷한 처지에 있는 10대 소녀와 만난다. 소설은 그 둘의 만남을 충분히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선안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진안을 받아들인다. 비록 그녀가 왜 자신의 고향에 왔는지는 몰라도. 진안의 진짜 목적인지는 뭔지는 몰라도. 절망 속에서 함께할 또래의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안에게는 힘이 되는 듯하다.
3. 바다에서 보내는 기도, “꿈을 잃지 않기를”
이 작품의 핵심 중 하나는 타임리프다. 진안은 사실 선안의 후손이며, 먼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다. 선안이 위험에 빠졌을 때, 진안은 다시 한 번 시간을 과거로 돌려 선안을 구한다.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여행자를 이루는 핵심 감정은 희망이다. 아무리 환경오염으로 재앙이 발생하여 사람이 죽어도, 결국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간다. 내일을 약속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설정 중에서 ‘아틀란티스’는 내일로 나아가지 못할 절망을 상징하지만, ‘시간여행’으로 인해 과거로 온 진안의 존재가 결국 ‘희망’ 그 자체가 되어 수해와 동의어인 바다마저 희망의 장소로 바꾼다. 즉, 이 소설에서 희망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며, 그 힘은 다른 사람을 향한 선함과 거의 똑같다.
<아틀란티스의 여행자>는 결국, 아틀란티스 소녀의 가사처럼 “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완성된 소설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나온 뉴스의 배경음은 선안에게 절망이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극을 액면으로만 이해하고, 동정하되 이해하려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후반부에 가서는 희망의 노래가 된다. 자신의 비극을 이해하고, 슬퍼하며, 함께 나아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결국 이 소설은 아주 절망적인 에코 아포칼립스 소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와 ‘너’가 함께하여 ‘우리’가 되는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고자 하는 희망찬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다. 아틀란티스 역시, 비극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과거 선안이 그렸던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진안이 ‘이곳은 관광지가 될 것이다’고 알려준 것과 같이. 그렇기에 이 리뷰는 이 노래의 가사로 끝맺음이 적절해보인다.
꿈을 잃지 않기를
저 하늘속에 기도할래
BoA, <아틀란티스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