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슬’이 소속된 우주관리국 연구팀은 넷상에서 떠도는 괴담인 ‘전단지 괴담’의 조사를 맡게 된다. ‘전단지 괴담’이란 RK-01-116 구역의 어느 벽면에 붙은, 사람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전단지에 관한 도시괴담이다. 한편, 설란은 동거인 시서와 정치적 견해차로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선다. 그 후 어찌 된 일인지 시서와 연락이 되지 않고 그를 찾을 수도 없다. 그즈음 여기저기서 설란의 상황과 비슷한 기묘한 실종사건들이 발생하고 ‘슬’은 이 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SF는 현재를 비추는 데에 매우 탁월하고 용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배경 안에 가공의 설정이나 소재를 얹어서 현재를 풍자하고 반추하는 이 장르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극히 현재를 지향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SF의 특성을 매우 명료하게 실천하고 있다. SF적인 소재가 서사적인 사건으로까지 나아가지 않고 단순한 해프닝 정도에서 멈춰버린 게 아쉽지만, 발상만으로도 충분한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인간의 뇌에 들어간 내장칩이 일괄 업그레이드되면서 ‘헤이트 이레이저’ 즉,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들(사람, 사물, 감각 등)을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기능이 탑재되고, 이로 인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혐오감을 주는 광고물, 아픔을 느끼게 하는 상처가 감각기관에 포착되지 않도록 일괄 차단된다. 그리고 이는 날이 갈수록 지나치게 편협적이고 극단적으로 변모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SF적인 우화다.
세계화는 붕괴하고, 지엽적인 블록이 올라가며, 철의 장막이 다시금 내려올 자리를 찾고 있는 지금, 다양성과 상대성이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는 지금, 이 소설은 ‘헤이트 이레이저’라는 매우 직관적인 은유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염려하고 있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도 여전히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사람들. 이 작품은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심각한 오류로 상정한다. 혐오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고 무작정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폭력적인 사람들. 실재하는 전단지가 보이지 않는 괴담. 바야흐로 괴담 권하는 사회다.